우리는 해체된 리듬 속에서 살아간다.
출근 시간은 여전하지만, 평생직장은 없다.
시험은 있지만, 그것이 인생을 결정해주지 않는다.
연애는 있지만, 결혼은 없다.
노력은 강요되지만, 결과는 보장되지 않는다.
모든 사회적 리듬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리듬을 흉내 내야 한다.
“따라가라”, “노력해라”, “성장해라”는 말은 계속되지만,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와 닮아 있다.
1920년대 전후의 유럽 청년들이 그러했듯,
이 시대의 청년들도 자기 자리를 상실한 채,
무너진 구조 위에서 혼자 살아남기를 강요받는다.
그러나 과거의 잃어버린 세대는
명확히 ‘전쟁’이라는 단절을 겪었다.
현재의 세대는 그렇지 않다.
단절은 보이지 않게, 일상 속에서 은밀히 발생한다.
취업시장, 연애시장, 부동산시장.
선택받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곳.
누구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흐름.
이것이 바로 리듬 없는 사회다.
경쟁은 남아 있고, 질서는 사라졌으며,
자유는 주어졌지만, 방향은 없다.
무엇보다 잔인한 것은 ‘기회의 신화’다.
기회는 있다고 말하지만,
그 기회에 도달하는 사다리는
이미 사라졌거나
누군가의 기득권 아래에 감춰져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측정당하며,
해체된 구조를 복원하려 애쓴다.
이루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무엇을 이루어야 할지는 배운 적이 없다.
지금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달리는 중이다.
이 시대의 병은 피로가 아니다. 방향 감각의 상실이다.
리듬이 사라진 사회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젊은 세대는 ‘우울한 개인’이 되거나,
‘광적인 생산자’가 되거나,
둘 다가 되어간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요약된다.
“당신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왜 자유롭지 않습니까?”
자유의 탈을 쓴 강요.
기회의 이름을 한 구조화된 복종.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민낯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