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여행4 : 오페라 가르니에>

by 졸린닥훈씨

오페라 가르니에는 이번 빠리여행에서 괜히 가고 싶었던 곳이다. 다만, 이곳 투어 방문보다는 발레 공연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예매를 시도했지만 국내에서는 예매를 못했다. 모두 매진되어 공연을 보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다만, 부잉 말이 좀 일찍 현장에 가서 티켓박스 어슬렁 거리면 취소된 표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공연 두어 시간 전에 그냥 가봤다. 참고로 난 부잉 말을 비교적 잘 들으려고 한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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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서 어슬렁거리니 공연장 투어 관람은 공연이 있는 날은 안된다고 했고, 정말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안내자분께 혹시 표를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티켓박스에 가면 살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냅다 달려 티켓박스로 가서 이러저러한 말을 해보면서 부잉 말대로 티켓을 구했다. 공연 내용은 다음에 적을까 한다. 정말 빠리의 공연은 독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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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구한 후 약 1시간 뒤 입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연 시작 전 한 시간 정도 남기고 입장을 한 덕에 극장 안을 이리저리 구경할 수 있었다.


정말 극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궁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음.. 1875년에 완성된 건물이다 보니 세월에 흔적이 엄청났다. <오페라의 유령>이 이곳 가르니에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실감도 나고, 이런 곳이라면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만도 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극장에서 길을 잃어 지하를 얼결에 내려갔는데.. 시간의 흔적 때문인지 으스스한 느낌도 들어 <오페라의 유령>이 실존하지 않을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봤다. 길치다 보니 이런 행운도 따른다. 지하를 볼 기회가 생기고.. 다만, 사진은 찍지 못했다. 그냥 길이 잘못 들어 어떻게든 올라갈 생각에...


하여간 이곳은 오랜 시간이 묻어 있었고, 가르니에 극장 자체가 투어로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내부를 보면서 하게 되었다. 천정화 및 장식물들이 거침없던 나폴레옹 3세와 야망 가득했던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야심을 보는 듯도 했다. 참고로 나폴레옹 3세는 빠리 최초의 도시계획 혹은 지금의 빠리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냥 절대명령으로 빠리 개조 계획을 만들어 완성시켰다.


자유의 빠리가 사실은 절대군주의 맹폭으로 지금의 빠리도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나름 아이러니일 수도 있다. 하여간 빠리는 나폴레옹 가의 많은 유산이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신기하게 자유로 흥한 그가, 독재로 망했으니...


그건 그거고.. 나는 박스석을 구할 수 있었다. 더 좋은 자리도 있었지만 박스석에 언제 있어보나 그런 생각에 박스석을 받아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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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석에 들어가 보니 관람에는 그렇게 편리한 자리는 아니었다. 다만, 이곳이 귀족들의 사교와 교감(?)의 장소로 쓰였다는 점에서, 사실 발레 공연 감상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당시 그러니까 19세기 후반부의 이곳 가르니에는 공연 말고도 은밀한 거래가 행해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발레 공연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의 대상이 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선보인 장소가 되기도 했다.


박스석에 뒷 공간이 있는 것도 귀족 혹은 후원자들과 어린 발레리나의 교감이 필요한 장소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시대의 타락이기도 했고, 그만큼 어려웠던 어린 예술가들의 현실이기도 했다. 발레를 하기 위해서는 후원자가 필요했고, 생활고가 있던 약간의 재능이 있는 어린 여자아이들은 후원자를 찾기 위해 발레를 하기도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가르니에는 그런 역사도 가지고 있다.


뭐 사실 그게 꼭 가르니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19세기가 계몽주의 시대였지만, 중반 이후는 오히려 역설의 시대이기도 했고, 근대화와 산업화가 가속화 될 수록 인간의 탐욕과 빈부격차는 상상을 초월했던 시대였다. 물론, 지금도 과연 인간이 그때보다 더 이성적인지는 알 수가 없다.


' Edgar Degas : 에드가 드가'는 그 당시 '그' 현실을 참 많이도 직시하려 했던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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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사람 'Edvard Munch: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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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세상을 치열하게 살다 갔다. 그 당시 사회의 부조리함과 위선에 대해 치열했던 예술가였다. 운 좋게도 빠리에 있던 기간 오르세 미술관에서 뭉크 기획전을 했다. 그가 얼마나 치열했고, 민중적인 예술가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전시였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궁전의 화려함 만큼이나 여러가지 생각을 만들어 준 장소였다. 화려함 뒤에 가려진 고단함이랄까... 슬프고 어렵다..라는 감정보다는 그 당시 어린 발레리나 혹은 뛰어 놀아야할 시간에 가장이 되어버린 어린 소녀들의 고단한 삶.. 그런게 감정을 눌렀다.


그랬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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