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소호 Dec 17. 2023

만취한 포보트씨

"어제 큰일 날 뻔했다고요. 할머니가 또 나가셔서 만취해 계셨어요. 할머니 다니시는 길이 공사를 하는데, 할머니가 건너오시지를 못하고, 길 가던 사람이 우리 요양원으로 알리러 왔었다니까요."

마침 포보트씨 남편과 딸이 찾아왔길래 어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설명하는 중이었다.


포보트씨는 체구가 아주 작은 할머니다. 포보트씨는 기동력이 좋다. 자기보다 커다란 휠체어에 걸터앉아 두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못 가는 데가 없다. 매일 오후가 되면 빨간 핸드백과 음료수를 휠체어 안쪽에 챙겨 넣으며 외출 준비를 한다. 엘리베이터도 그녀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멋지게 선글라스까지 쓰고  시내로 나가 콧바람을 쐰다.  시내라지만 아주 작은 마을이라 요양원에서 5분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포보트씨가 주로 향하는 곳은 시청 옆 마트다. 마트는 그녀에게 자유를 주는 곳이다. 요양원에서 겨우 하루 한잔 얻어 마시는 와인을 이곳에서는 마음껏 사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포보트씨 남편은 그녀의 와인이 떨어질 새라 자주 사다 나르신다. 하지만 요양사를 통해 얻는 한 잔은 포보트 할머니의 성에 차지 않는다. 그나마 어떨 때는 물이 잔뜩 섞어있는 와인을 받게 되니 말이다.


어제도 포보트씨는 밖에서 술을 잔뜩 드셨다. 할머니를 찾아 나가보니, 길 가던 노인과 한 초등학생이 할머니가 움직이지 못하게 휠체어 양 옆을 지키고 있었다. 가족인가 싶었지만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포보트 씨 휠체어를 건네받고, 공사장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간이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를 무사히 건너고 안심하려는데 포보트 씨가 중심을 못 잡고 휠체어 앞으로 와락 고꾸라졌다. 노란 외투를 입은 작고 마른 포보트씨가 고꾸라지는 모습이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너무 놀라 혼이 빠진 내가 포보트 씨를 안아 일으키는 동안 지나가던 행인이 선글라스를 주어줬다.

"아우, 나 좀 도와줘. 도와줘, 끅, 도와줘..." 포보트 씨는 아픈 것도 모르고 내내 술주정을 했다. 나는 다시 넘어지실까 무서워 한 손으로 어깨를 잡고 다른 손으로 휠체어를 몰았다. 그것도 내내 뒷걸음질로 돌아왔다.


얘기를 다 들은 포보트씨 남편은 웃기만 한다. 미안하고 민망한 웃음이다. 놀란 건 나 혼자 뿐이었다. 포보트씨 딸도 다 아는 얘기를 또 듣는다는 반응이다. 원래 그러셔서 아무도 말릴 수 없다고 한다. 포보트 씨 이마에는 커다랗게 시퍼런 멍이 들었지만, 할머니는 아프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웃었다.





이전 07화 희망을 기다리는 드완 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