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첫 번째 집
나의 첫 번째 집
나의 첫 번째 집은 2016년 10월, 빌라 전세로 시작한 신혼집이었다.
처음엔 층고 높은 복층집을 보고 한눈에 반해 계약했는데,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그저 위험할 뿐이었다.
건물 외관은 프로방스 느낌의 화이트 도장에
1층엔 예쁜 커피숍이 있어 낭만적이라 생각했지만,
출산을 하고 보니 낭만 따위 하등 쓸모가 없었다.
우리 집은 3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에 유아차를 1층에 둘 수도 없고,
돌쟁이 아이를 안고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욕이 늘었다.
층고가 높아 겨울 난방비로만 35만 원이 나왔지만
집이 추워 온수매트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약기간 2년을 채우고 이사를 결정했다. 아주 쉬운 결정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전주는 신도심 건설이 한창이었다.
혁신도시, 에코시티 등을 필두로 대규모 분양과 건설이 이어졌다.
구도심 구축과 신도심 신축 가격이 비슷했다.
특히 혁신도시는 전주 외곽에 위치해 있고 도심 전체에 건물을 올리던 때라
누가 굳이 거기 들어가 사냐는 인식이 팽배했고
베드타운, 유령도시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스산한 공사판 사이에 우뚝 서있는 아파트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사방이 공실이고 먼지가 흩날리지만,
넓은 도로와 잘 정돈된 구획, 쾌적한 공원과 대형 도서관, 체육센터 등이 계획되어
도시가 완성되면 근사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딱 왔다.
전주 토박이 남편이 기세등등하게 여기가 전주 최고 주거지라며 소개해준
구도심 구축들을 몇 군데 보았는데도 이상하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하여 '같은 돈이면 구축을 살바에 신축을 사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매수했다.
기존 전세보증금에 야금야금 도아둔 쌈짓돈을 보태고
주택금융공사 디딤돌 대출을 최대로 활용해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 너무 좋잖아!
결혼을 하고 아파트 생활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지은 지 3년 차 신축 아파트.
공용현관 입구부터 새삥(feat.지코)의 냄새가 났다.
겨울에 무리하게 난방을 하지 않아도 따뜻했고, 남서향집이라 정오부터 햇빛이 집안 깊숙하게 쏟아졌다.
무엇보다 유아차를 밀고 우리 집 문을 열고 나가 다시 집 앞까지 걸어올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옆동에는 가정 어린이집이 있었는데 도어 투 도어 5분 컷.
날씨가 험할 땐 지하로 걸어가도 되니 얼마나 편하던지!
잘 꾸며진 놀이터나 분수대는 아이가 좋아해 하루에 꼭 한 번씩은 들려 시간을 보냈다.
전주 구도심 좋은 주거지에 사는 지인들이 집에 놀러 오면
'아이고 여기는 완성되려면 한참을 걸리겠네' 했지만, 나는 불편한 게 없었다.
길 하나 건너면 소아과와 약국이 있고, 그 블록엔 파리바게트, 동네 마트와 반찬가게가 있었다.
앞으로 한참 남았는데도 아이가 다닐 초등학교도 코앞이라 든든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우리 너무 좋은 곳으로 이사 왔잖아 하며 살았다.
그리고 내 근거 없는 느낌적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이사 후 3년이 지날 때쯤, 저수지를 품은 공원이 근사하게 정돈되었고
여기저기 공사 중이었던 아파트들의 준공이 완료되고, 학교와 유치원도 정비를 마치고,
상가도 하나둘 차기 시작하더니 꽤나 괜찮은 주거지로 완성되었고
가격이 비슷하던 신도심과 구도심의 매매가는 한참 벌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땐 집값을 모르던 때다. 이 집이 얼마라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던 시절.
집값은 잔금을 치르고 나서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불현듯 이사를 결심했다.
집값이 막 오르려던 타이밍이었다.
그것도 코앞 한 블록 건너에 있는 아파트 단지로 말이다.
첫 집을 계약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