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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카소 Oct 09. 2022

추억은 무슨 색일까?

지난 추석, 올해 이사 계획이 있는 친정에 갔다가 창고에 보관해 오던 나의 오래된 짐과 앨범 등을 정리했다. 내가 태어난 지 백일, 돌 때 동네 사진관에서 찍었던 사진과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이 담긴 사진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교실에서 장난스럽게 찍었던 사진,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의 졸업 앨범,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 단짝과 주고받았던 편지, 대학생이 되고 끄적였던 노트 등등 빛바랜 과거의 흔적을 살펴보다가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던 다양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잔잔하게 나를 흔들었다.


특히 내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 것은 대여섯 살쯤 엄마와 찍은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 내 곁에 꼭 붙어 영원히 나를 지켜주실 거 같은, 나를 낳아주신 엄마는 13년 전에 별나라로 가셨다. 26년의 인연으로 길지 않았다. 


기억은 왜곡되고 편집된다. 그 상황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은 사진밖에 없지만, 그 사진을 보며 떠오르는 느낌이나 기억하고 있는 부분, 감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30대 초였을 젊은 엄마와 5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나. 사진 속의 엄마는 웃으면서 자신의 품에 조그만 나를 조금이라도 더 밀착해서 꼭 안으려고 하고 있었다. 머리에 앙증맞은 핀을 꽂고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은 꼬마 숙녀는 이 자세가 조금은 귀찮은 듯 카메라를 보고 있다. 엄마의 행동과 표정에서 어린 나를 그저 귀엽게만 여기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동안 나는 왜 엄마를, 날 힘들게 한 존재라고 생각했을까? 왜 안 좋았던 기억만 반복 재생하면서 엄마를 부정했을까? 내가 원하는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한 못난 엄마라고만 여겼을까?라는 물음표들,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수십 년 오해했던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사진과 종이 등 물리적인 것은 세월에 반응하여 누렇게 변화하지만, 무의식에 남아있는 감정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하려고 하면 할수록 또렷해진다.

색의 속성으로 표현한다면, 사진은 채도가 낮지만 마음에 남은 느낌은 채도가 높달까? 채도는 영어로 Colorfulness, 즉 색의 순수한 정도로 보통 색이 선명하게 느껴지면 채도가 높다고 하고, 색이 흐리게 보이면 채도가 낮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을까. 축적된 그것들은 어떤 색을 품고 있을까? 서로 어떤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이 내적 색감들이 생생할수록 자신의 일상과 정서가 풍요로워 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자신의 추억과 감정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분 좋았던 비비드 한 컬러의 추억만 있어야 할까? 아니다. 때로는 완성도 있는 멋진 작품을 위해 채도가 낮거나 어두운 색도 필요할 것이다. 


모든 부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이다


보도 새퍼의 책 '멘탈의 연금술' 내용처럼, 컬러의 세상에서도 옳고 그름은 없다. 예쁜 색과 안 예쁜 색, 단편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 내 안에 남아있는 색이라면 나라는 작품을 위해 꼭 필요했던 색일 것이다.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 색마저 내 안에 들어와서 삶이 더 의미 있어졌다고.


빛바랜 엄마와의 사진 한 장에 담긴 색을 감상하다가 엄마의 따스함에 정서적 회복을 느낀다. 오늘 내가 기억하고 싶은 엄마와의 추억은 갈색과 연보라 색이다. 30여 년 전 평범했던 어느 날, 엄마 손 잡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만난 들꽃에 감탄하고, 시장에 가서 찹쌀 도넛을 사달라고 조르던 꼬마의 하루는 채도 낮은 붉은 갈색의 따뜻함에 평화롭고 영감 가득한 은은한 연보라색이 포인트였다. 


오늘은 내 마음속 별나라에 있는 엄마의 온기를 느끼며, 더 따뜻한 마음으로 생기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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