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춘천과 주말 강의를 병행하면서도 주 3회, 하루 2시간씩 자격증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개인 연습까지 더해지는 날이면 하루가 금세 춤으로 꽉 찬다. 본업과 집안일, 초등 3학년 아이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에 사실 그런 날은 어쩌다 한 번이다.
지난 수요일에는 춘천 수업을 마친 뒤 학원으로 이동해 3시간 넘게 춤을 췄다. 자격증반 수업 2시간, 잠깐의 휴식 후 다이어트 댄스 1시간, 그리고 교육 시작 전 30분의 연습까지, 총 3시간 30분을 춤으로 채웠다.
매 시간마다 느낀다. 자격증 교육은 취미로 즐기던 다이어트 댄스나 방송댄스 수업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세밀한 동작, 정교한 디테일, 익숙하지 않은 리듬 속에서 늘 새로운 어려움을 마주한다. 리듬감 없는 몸치는 연습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는 세계다.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하는 수업이다 보니, 선생님들께서는 다양한 장르의 댄스 기본기를 하나하나 짚어주시며 세밀하게 교정해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의 이해력은 참으로 느리다. 선생님의 동작을 눈으로 보고 그대로 따라 하려 해도, 머리는 “오른쪽으로 오른발!”을 외치는데 발은 제멋대로 “왼쪽으로 출발”하는 식이다. 결국 2시간 동안 손발의 갈 곳을 잃고 미아처럼 헤매는 날이 꽤 많았다.
스스로 마음이 꽤 단단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거울 속에서 계속 틀리는 나를 마주하다 보면 그 단단함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선생님의 “그게 아니라니까~ 다시!” 반복되는 한마디에 마음속 자존감 그래프가 눈에 띄게 하강한다.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을 때의 답답함이란, 마치 다른 사람의 몸을 잠시 빌려 쓰는 기분이 든다. 머리는 다 아는데 몸이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며 저항하는 듯하다.
지난 일요일이 그랬다.
아무리 반복해도 나만 계속 틀리는 상황이 이어지자, 짜증이 슬슬 올라왔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괜히 눈물이 났다.
‘자격증은 무슨, 취미로만 그냥 즐길 걸...’
후회가 밀려왔고,
‘내가 과연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 이게 나한테 맞는 걸까?’
의심의 목소리도 마음 깊은 곳에서 속삭였다.
남편은 “요즘 춤이 많이 늘었는데 왜 그래?”라며 위로해 줬지만, 가라앉은 마음이 쉽게 떠오르진 않았다.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 날, 수업 영상을 찍어주시는 선생님이 영상을 보내주셨다.
화면 속에는 여전히 동작을 헷갈리며 헤매는 내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왜 저렇게 어설프고 계속 틀리냐'는 질책보다 ‘그래도 꽤 열심히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춤을 배워보겠다고 애쓰는 내 모습이 보였다.
“민영, 너도 잘하고 싶지?”
누구보다 동작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 하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했던 순간들이 스쳐 갔다. 스스로를 토닥토닥해주고 싶었다.
“민영, 지금의 서툶도 사랑하자”
모든 일의 시작은 언제나 서툴고 어설프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을 견디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견디기’보다 ‘따뜻하게 바라보기’를 선택하고 싶다. 아이가 처음 한글을 배울 때, ‘리을’을 거꾸로 쓰던 그 모습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던 것처럼 말이다.
“민영, 괜찮아. 네 몸은 천천히 배우고 있어.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는 다르잖아”
“민영, 이게 지금의 네 리듬이고 몸짓이야. 너의 색깔일 수도 있고, 의식해서 노력하면 나아질 수도 있어”
춤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동시에 재밌다.
지금의 서툰 몸짓도 사랑하겠노라 다짐하니 한결 가벼워진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러니까 민영, 오늘의 서툶을 웃어넘기고 즐겁게 춤을 춰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