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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Aug 17. 2024

무기수의 딸

1995년 감옥

모든 게 달라졌다.

아빠가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그것을 퇴임이 아니라 퇴역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것은 가장 높은 계급에 오른 군인으로서의 퇴역이었으니까. 그러나 퇴역은 아름답지 않았다는 것을 예상했었어야 했다. 다른 삶도 마찬가지겠지만 군인으로서 훈련된 삶은 더 높은 계급을 향해 오르는데만 있지 그 다음을 예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가장 높은 산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었고 그곳에서 뛰어내리는, 아니 내던져지는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빠의 퇴임이 끝나자마자 사냥개들은 충분한 먹잇감을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목표물을 바꾸어 오히려 물어뜯기 시작했고, 배신자들은 아주 익숙하다는 듯 그들에게 더 높은 계급을 하사해 줄 수 있는 권력에 쉽게 돌아섰다. 그러나 그것은 남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사실 아빠가 오른 그 자리가 그렇게 차지한 자리가 아니었던가? 남을 탓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다. 왜냐하면 그 산의 정상에 있을 때는 바로 앞이 낭떠러지 절벽이라는 것을 아무도 실감하지 못하니까.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기쁨에 충만되어 하산할 때 몰아칠 눈사태와 절벽을 잊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명백하게 바보 같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더 높은 계급 대신, 새로운 목표가 된 바로 돈이 아빠와 나를 지켜주리라고 한 것이 그것이었다. 아빠는 그동안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받아 단단한 성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재벌의 안주인이 되어서 역시 그 성안에 들어갔다고 안심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성안에 포위되어 완전히 갇힌 꼴이었다. 군인으로서도 전술의 오판이었다. 문제는 갖가지 문제를 소용돌이처럼 끌고 들어오는 힘이 었다. 그것은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 박사 학위, 그리고 재벌이었던 남편도 가르쳐 주지 않은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돈을 무기로 삼은 것이 가장 바보 같았다.


금융실명제는 명목이었을 뿐, 사냥 목표물을 바꾼 검찰이 물어뜯고 더 높은 계급을 약속받은 배신자들이 돌아서자 아빠도 어쩔 수 없이 5천여 억 원의 비자금의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세기의 결혼도 결국 비자금을 위한 하나에 쇼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편이 된 그의 집안은 그러한 문제로 이제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빠는 사위의 집안에는 혜택을 주면 주었지 요구한 것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각종 이권을 쥐어줄 때는 날아갈 듯 기뻐하며 찬사를 보내고 그러면서도 한껏 눈치를 보던 그의 집안은, 이제 대놓고 여자를 집안에 잘못 들여 회사가 망하게 생겼다는 소리를 쏟아 다. 마치 지금까지 아빠의 눈치를 보느라 못했던 마음에 담았던 말을 거침없이 돌려주는 것 같았다. 이것은 아빠뿐 아니라 전적인 나의 오판이었다. 나를 지켜주리라고 생각했던 돈이 족쇄가 되고 단단한 성이 감옥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빠도 감옥에 갇혔다. 아빠에게는 포괄적 의미의 뇌물죄가 적용되어 이전에 대통령 재직 시 조성한 비자금 수수와 뇌물조성 혐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 등의 죄목으로 구속되더니, 재판에 회부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다만 돈의 힘은 그들 재벌들에게만 여전히 유효했는지, 아빠가 감옥에 갈 뇌물을 준 재벌총수 8명을 포함한 기업인 40여 명도 뇌물 공여죄로 기소당했지만 항소심에서 전원 집행유예, 무죄 선고로 석방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들의 성은 단단했고 아빠의 진지는 물렁했다. 아빠는 결국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에 2천7백여 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고 계급 대신 돈을 두 번째 목표로 삼았던 전쟁에서 결국 참패했다.


그러나 돈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돈은 거대한 허리케인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돈 문제 때문에 아빠가 수십 년 지난 12월, 5월에 벌인 쿠데타의 성공이 모두 반란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빠는 반란군의 수괴이자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로 그동안 쌓아온 돈뿐만 아니라 최고의 계급, 전우, 사냥개 그리고 건강 모두를 잃고 말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아빠를 불과 2년 만에 감옥에서 꺼내준 것은 아빠가 한동안 그토록 죽이려 까지 했지만 끝내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아빠가 믿고 돈을 맡겼던 아빠의 동생이며 사돈은 등을 돌렸다. 아빠는 추징금을 다 내지 않고 일부는 남겨 놓았는데 그렇게 해 놓아 소송까지 하며 그것을 아빠의 동생과 사돈에게 내게끔 했다. 돈이 아니라 배신의 대가를 물게 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또 다른 사돈인 이제 나와 그의 집안에는 그렇게 까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아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자리만은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 한 것 같다.


모든 목표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며, 특히 그 공든탑의 주축이었던 아빠가 무너지며 혼란스러운 나날이 계속되었지만 두 딸과 장차 그를 이어 이 마지막 남은 의 후계자가 될 아들까지 키우면서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아빠는 힘과 돈이 없으니 건강도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것 같았고 나도 일부는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이 수십 년 전 그 세상의 난리에 대한 대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에 비해 나에게는 아직 갚지 않은 더 혹독한 빚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그때에도 여전히 짐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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