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이혼한다. 원고가 피고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한다.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했다. 금액으로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있었던 이혼 소송 중 최고의 액수일 것이라 이 전쟁에서 자칫 성공한 것처럼 오해를 살 수도 있으나, 법원에서 인정한 금액의 1.2%란 비율로 볼 때 98.8% 패배한 것이 분명했다. 34년 동안 세 아이를 키우며 기여한 내조의 대가가 1.2%에 불과하다는 실망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조 따위 같은 것만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 대신 아빠가 그동안 외조한 기여를 따지면 당연히 98.8%는 그의 몫이 아니라 나의 몫이어야 했다. 그것을 그와 그의 집안이 일구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으니 기가 찼다. 아빠가 아니었으면 그 따위 재산 따위 한 순간에 빼앗겨 지금 사라지고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들은 오히려 나에게 보험료를 지불했어야 했다. 수많은 기업들이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기여금을 내고, 보호비를 내고 있을 때 그들은 그것을 고스란히 면제받았다. 바로 내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밉보여 회사를 손두리째 빼앗기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들은 그것에서 고스란히 자유로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바로 내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에게 고작 1.2%를 기여했다고? 내가, 그리고 아빠가 아니었다면 지금 존재하지도 않고, 자취도 없이 사라졌을 그 돈들에 대하여, 그것은 그가 물려받은 것이라 나눌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이 하염없이 가소로웠다. 그것을 지켜준 것이 누구인데 이제 와서 그 따위 말을 지껄이다니!
이런 말이 목구멍에 차올라 곧 넘칠 듯이 넘실거려 숨이 막혀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아빠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결국 전사하셨다. 무기도 돈도 모두 빼앗기고 백기 투항을 한 상태였기에 이것을 군인다운 전사라고 불러야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면 복권을 통해서 상처는 차츰 치유되었고 꽤 우호적인 모습이기까지 보임으로서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원수가 된 아빠의 옛 친구라고불리는 자는 끝까지 반란군의 수괴 같은 모습으로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았지만, 아빠는 몸이 상하기 시작하자 이것이 곧 하늘의 심판이라고 체념하였는지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집안에도 꽤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반란의 숨은 공모자이자 단물을 흠뻑 빤 궁극의 수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는 나와 아빠에게 엎드려 감사하기는커녕 동거녀와 함께 쿠데타를 모의하고 뻔뻔스럽게도 먼저 공격을 가해왔다. 이혼을 요구한 것도 그가 먼저였고. 심지어 소송도 먼저 벌였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쿠데타라는 말을 붙이기에 딱이었다. 그 꼴을 아빠는 말년에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마치 지난날 당신이 일으킨 쿠데타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직시하라는 듯이. 그것은 마치 불륜을 일으킨 자가 뻔뻔스럽게 조강지처의 자리를 요구하고 동거녀가 본처의 자리를 차지한 것과 진배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정적을 살해하고 그 유산을 가로채었듯이 이제 그와 그 동거녀가 똑 같이 나를 죽이려 하고 내가 그에게 안겨주고 지켜준 유산을 가로채려 하고 있다. 그런데 쿠데타를 당하는 내가 왜 잠자코 있어야 하는가? 반란의 수괴는 그의 동거녀인데 내가 왜 총과 같은 카드를 빼앗기고 내 쫓겨나야 하는가?
그러나 법은 자주 옮고 그름을 떠나 진실을 외면한다. '멍청한 변호사들 같으니라고!' 상대는 그들의 장점을 제일 잘 알고 나의 단점도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돈이었다. 결국 이것은 돈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었다. 현대전을 무기전이라고 하는가? 그런데 무기는 곧 돈이었다. 그럼으로 현대전은 곧 돈의 싸움이었고 그 현대전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돈이 걸린 소송에서 돈의 위력은 곧 법이었다. 그런 전쟁에서 미사일을 무한대로 퍼 붓는 적과 소총 한 자루로 사우고 있는 꼴이라니. 재벌과의 싸움은 그래서 무의미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긴 전례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더 나가봤자 망신만 당하고 결국 자리는 빼앗길 것이라고. 벌써 그들은 나의 목표도 그들과 다르지 않게 곧 돈이라는 것을 알고 서서히 목줄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금이 아닌 돈의 문제에서 그들은 나보다 실전 전투 경험이 탁월했다. 카드를 끊더니 이제 방을 빼라 하고 우선 돈부터 조여올 것이다.
쿠데타를 일으켜본, 내가 직접은 아니고 그것은 아빠의 몫이었지만,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은 결국 모든 것을 앗아 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이는 그냥 6백억원의 돈을 가지고 맘 편히 살면 어떻겠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어불성설인 이야기다. 그것을 그대로 주고 순순히 떠나는 전쟁과 반란이 어디 있는가? 절대 아빠는 그러하지 않았고 살아 계셨어도 그렇지 아니할 것이다. 전쟁에 나섰다는 이유만으로, 쿠데타의 반대편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 설사 그것이 옮은 명분을 가지고 시작했다 해도, 그들은 모든 것을 짓밟고 빼앗으려 할 것이 자명하다. 그것이 쿠데타의 본성이고 반란의 본질이다. 결국은 죽이는 것.
그래서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역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한다. 쿠데타로 태어나, 반란군 수괴의 딸이 되었던 마당에 못할 것이 무엇인가? 어차피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목숨 따위는 부지하기 힘들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최후를 맞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돈이 되었건 자식이 되었건 이름이 되었건 모든 것이다. 이것은 어차피 올인을 건 도박판이니까. 그런 면에서 아빠는 결국 기회의 때를 놓친 것일 수도 있다. 쿠데타는 그것을 되돌리거나 만회할 기회를 놓치면 결국 하늘의 심판과 직접 마주하게 될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준다. 다만 눈먼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러나 눈을 질끈 감고 이제는 눈에는 눈, 돈에는 돈, 결국 돈의 전쟁에서는 돈 밖에 없다. 거액의 성공 보수를 제시하면 이 전쟁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가 들어도 좋다. 돈은 또한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할 테니까.
그는 감옥에 한번 다녀오고도 동거녀에 눈이 멀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그의 최대 약점이었다. 그것을 정조준하기로 한다. 그가 군인이 아닌 허술한 로맨시스트라는 것이 이렇게 다행일 줄 몰랐다. 반면에 나는 평온하고 조용한 삶을 살아왔기에 단 한방르로 그를 깨끗이 보내버릴 수 있는 저격수여야 했다. 이 쿠데타가 만일 성공하면 그의 돈을 빼앗을, 아니 아빠에게 내야 했던 돈을 돌려받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갖가지 문제와 뒤 봐주기에도 불구하고 내버려두었고 미뤄왔던 보험료와 보호비를 이자까지 붙여 청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를 다시 감옥에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