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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는 돈

feat 2024년 승전

by Emile
재산분할로 1조 3808억원,
위자료로 20억원을 각각 지급하라!


재산분할로 1조 3808억 원, 위자료로 20억 원을 각각 지급하라! 1차전에서 1.2% 승리와 98.8% 패배하였던데 비해 2차전에서는 35%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는 65%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둘 수 있는 최대 승률은 50%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전쟁의 산술적 승리의 수치는 70%가 된다. 이에 맞게 소송비용의 70%는 원고 측인 그에게 부담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재산분할 1.2%에서 35%의 증가는 29배, 위자료 1억 원에서 20억 원의 증가는 20배의 수치였으니 이는 완벽에 가까운 쿠데타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와 그의 집안이라는 견고한 제국은 이 반란에 벌써 흔들리고 있었고 수년 내로 막을 내릴 수도 있을 일이었다.


이번에도 아빠의 힘이 컸다. 이미 아빠는 3년 전 돌아가셨지만, 지금 이 쿠데타의 성공을 보고 계신다면 당신이 일으켰던 쿠데타에 못지않은 반란이라며 기뻐하였을 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쿠데타도 군대가 아니라 돈에 의한 쿠데타여야 했다. 돈에는 돈, 도박과도 같은 이 자본주의의 체제에서는 쿠데타의 방법 또한 돈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그것은 아빠가 벌인 총탄에 의한 쿠데타와 달리 돈에 의해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으며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누구도 죽이지 않는 무혈의 반란이다. 그러한 쿠데타란 거대 도박을 위해 나는 엄청난 베팅을 했으며 그것은 아빠가 목숨을 담보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남은 내 생명줄과도 같은 돈이 수반되었어야 했다. 이 승리를 위해 도대체 변호사들에게 얼마나 쥐어줘야 한다는 말인가! 그 금액이 결국 1천억 원, 2천억 원, 3천억 원? 도대체 가늠도 안 되는 금액에다가 얼토당토 하지 않은 보수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는 1차전의 승리에 도취해 나 만큼 크게 베팅을 하지 못했을게 분명했다. 반면 나는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었고 얼마가 들던 올인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들이 이기고 배기지는 못할, 영혼이라도 갈아 넣고, 신이라도 매수할 수 있는 그러한 금액을 베팅하기로 하였고, 그것이 주효했었다.


그런데 올인에는 한 가지 문제가 따랐다. 그동안 감추어 두었던 아빠의 비자금에 대하여 세상이 곧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건넨 수백억 원의 사업자금 외에도 아빠에게는 그보다 몇 배나 많은 비자금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베팅은 그 비자금을 모두 빼앗긴다고 해도 충분히 걸고도 남을 만한 게임이었다.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고 그 바자금은 이럴 때 쓰라고 딸을 위해 한사코 남겨 놓은 것이 아니었던가? 시간은 흘러서 그것들에 대해 이제 와서 관심을 갖기도 어려울 것이었다. 아무리 쿠데타와 피로 물든 돈이었다 해도, 지금은 흐르고 흘러 모든 핏기가 가신체 드넓은 바다에 도착했을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피의 흔적은 포식자들이 이미 다 뜯어먹고 단지 뼈만 남아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 이제 와서 누가 도대체 그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더 이상 먹을 것 없는 썩은 뼈를 건져 올릴 것이란 말인가?


그런 썩은 뼈는 과감히 던져주고 지금 살이 오를 데로 오른, 그러나 이번 쿠데타로 인해 옆구리에 피가 넘쳐나고 있는 이 대어가 더 중요했다. 아빠가 준 피의 사료로 잘 키워 이제 잡아먹기 딱 좋게 살이 통통하게 오른 이 물고기의 배를 갈라 절반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쿠데타가 그렇듯 절반만 가져오면 나머지 몸체는 그냥 따라오기 마련이어서 이것은 그냥 물고기를 통째로 낚는 것처럼 아주 쉬운 일이었다. 특히 피 냄새에 민감한 물고기일수록 더욱더 피를 흘려 유인한 후 작살을 한방에 꽂아 넣어 피를 흘리게만 하면, 또 다른 피맛을 갈구하는 다른 물고기들이 사정없이 달려들어 물어뜯게 되어 있으니까. 그와 그의 집안은 이미 그렇게 옆구리를 외국 거대 자본에게 물린 적이 있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다. 쿠데타를 일으키는 반란의 주역이 고작 현모양처 비련의 주인공 흉내나 내고 있다니. 그러나 이 쿠데타는 철저하게 쿠데타의 모습을 보이면 안 되었다. 그것이 아빠가 일으킨 쿠데타와 다른 점이었다. 그의 재산에는 관심이 없는 척, 그와 그의 집안이 일군 것을 빼앗는 그림으로 비취지는 것은 절대 안 되었다. 그는 유부녀와 바람이 나 조강지처의 신용카드를 빼앗고 생활비도 가져다주지 않았지만 동거녀에게는 각종 명품을 갖다 바치고 호화 파티에 그 외도녀와 동반 참석하는 파렴치한으로 자리매김해야 했다. 반면, 나는 그런 그를 가정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바라보며, 남겨진 세 자녀를 어렵게 홀로 키우느라 아등바등, 마음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큰 병을 얻어 유방마저 절제하고, 신에게 의지하며, 어쩔 수 없이 그에게 그동안 우리 아빠 덕에 잘 살게 된 것이 아니냐며 눈물로 호소하는 아침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으로 비쳐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런 것은 지금껏 어떠한 난리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쿠데타와 반란의 시기에도, 평온하고 조용한 나의 삶을 전혀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깟 카드, 생활비, 그런 것이 없다고 설마 내가 어린 자녀를 뒤로 엎고 앞으로 메고 막일에라도 나섰겠는가? 전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내 비서는 이런 혼란을 틈타 내 돈 수십억 원을 빼돌려서 물 쓰듯이 쓰고 있었다. 내가 비련의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할 동안 내가 고소할 수 없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누수쯤이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아빠가 있었고, 아빠의 유산이 언제나 영원토록 아빠를 대신해 나를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일은 아빠가 주신 그 조커 카드를 이제 쓸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잭팟을 터뜨릴 목전에 다달았다.


그러나 전혀 흔들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록 아빠가 비자금이란 조커를 남기고 돌아가시긴 했지만 아빠의 빈자리는 컸고 나는 철저히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세기의 결혼의 주인공이자 공주였던 내가, 이제 마녀 취급을 받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기의 소송을 통해서라도 차라리 그 주인공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게 될 일이었다. 이왕 마녀가 될 것이라면 신데렐라로 등장한 그의 동거녀를 철저하게 짓밟을 것이다. 독이든 사과 같은 것을 보내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 동거녀가 철저히 마녀여야 하고 나는 마녀로부터 남편을 빼앗긴 나이 든 백설공주여야 한다. 난쟁이는 수천억 원의 성공 보수를 약속하며 이미 돈으로 샀다. 다행히 세 자녀들이 편을 들어주어 이 연기에 동참해 주었다. 돈 앞에서는 내 몸으로 나은 자녀라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이쪽 세계였지만, 나의 연기를 따라 자녀들도 재산과 그의 회사에는 관심 없는 척 대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내가 평범한 가정의 주부가 아니듯이 그들도 평범한 이혼 가정의 자녀 같은 것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가 되면 아빠가 그랬듯이 그들은 합당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출발선은 처음부터 다를 것이다. 그러나 혹시 모를 마녀의 자식을 대신해 그들은 꼭 이 왕국을 물려받아야 한다. 어차피 그것은 금액의 크기가 조금 달라질 뿐 변하기 힘든 상수라는 점에서 사실 이 부모의 전쟁은 자녀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감히 정의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정의라고 포장되어 널리 유통되어야 한다. 돈이 곧 정의고 정의가 곧 돈이니까.


이제 그 큰돈으로도 그의 사랑을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랑을 빼앗을 수는 있을 것이다. 동거녀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수십억 원의 위자료를 한 번에 보내오고 사과를 하는 듯한 모양을 취했다. 벌써 돈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그는 지금껏 자신만만해했던 그의 전략과 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그의 위치가 비로소 위태로워졌음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위기감은 이제 어떤 반격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직 적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불안감. 이 쿠데타를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를 감옥에 다시 보낼 것이다. 자본주의의 최고형은 결국 생명과 같은 돈을 빼앗고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감옥에 넣는 것이 될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는 다시 내 돈을 빼앗으려고 하게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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