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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 글쓰기는 더욱 하지말아야

feat 유튜브

by Emile

책은 참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물건이다. 서점과 도서관에 가 보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넘쳐나, 나만 책을 안 읽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최근에 책을 읽었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책은 주입식 교육의 매개물로서, 일단 읽어야 하거나 나쁘기보다는 좋은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책을 선물하면 아주 싫어한다.


CEO나 임원들이 "제발 책 좀 읽고 저런 헛소리를 안 했으면"이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 중 책을 종종 읽는 비율은 열 명 중 하나도 찾기 힘들다. 간혹 책을 읽는 임원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오너가 임원들에게 책을 선물했을 경우이다. 하지만 오너는 정작 그 책을 다 읽지 않았을 확률이 아주 높고, 임원은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 책을 미련 없이 버린다.


그러므로 출세를 원한다면 입시, 고시 외에 책 읽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10%의 확률도 안 되는 것이다. 그보다는 책 읽을 시간에 윗사람과 술을 같이 마시며 비위를 맞추거나 골프를 같이 치며 무식함을 공유하는 것이 더 높은 90%의 확률로 자리를 보장한다. 더군다나 책을 읽지 않는 CEO는 겉으로는 책을 권장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보다 똑똑해져서 자기 자리를 위협하고, 고분고분 예스맨이 아닌, 책처럼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책도 읽는데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어딘가에 반드시 블랙리스트로 등재되어 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왜냐하면 글은 결국 책을 바탕으로 다소 비판적 사고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책이 용비어천가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그것을 쓰면서는 다른 책을 멀리했을 가능성이 높고, 만약 여러 책을 계속 읽었다면, 책의 사고적 교정 효과로 인하여 아첨의 표현이 보다 은유적으로 제약되었을 것이다. 책은 그런 마음에 없는 남의 이야기 그만 쓰고, 진실된 너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고 자꾸 유혹하는 불순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의 부작용을 간단하게 해결해 준 것은 유튜브다. 점점 더 책에서 해답을 찾기보다는 유튜브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수동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고 자동으로 보고 듣기만 하면 된다. 특히 책은 읽기 싫은 문장이 나와도 어느 정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를 이겨내고 다음 페이지로 가는 것이 관건인데, 유튜브는 인내심 따위란 필요하지 않다. 바로 건너뛰거나, 다른 채널로 바꾸면 된다. 유튜브를 누가 인내하며 보고 듣는가?


그러나 유튜브에서도 잠시 멈췄다가 다시 돌려 보며 생각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은 어떤 수리법이라든지, 무엇을 배우기 위한 때가 그렇다. 그 순간은 유튜브라도 몇 번을 다시 보면서도 잠시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데, 이때가 겨우 책과 비슷해지는 때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빠르게 흘러나가서 머릿속에 남아 정작 고이는 것은 없다. 유튜브를 보고 있노라면 금세 지식이 올라가고, 급기야 전문가가 다 된 양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유튜브에서 보고 들은 내용에 일시 세뇌되어 전달하고 있을 뿐, 나아진 것이나 유튜브의 내용을 뛰어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작금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혼동의 시대는 책을 읽지 않고 유튜브에 의존한 결과의 서막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책을 읽어 두껍고 단단해져 역행도 마다하지 않는 것보다, 유튜브처럼 물 흐르는 데로 순리를 따라 더 높은 자리를 거머쥘 수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다. 더군다나 머리 아프게 책을 읽지 않아도 유튜브가 다 알려주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주입해 주는 지식의 세계는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이제 그 마약을 활용해서 아무 말이나 쏟아낸다. 책이라도 읽었으면 거르고 걸러서 논리나 인내라도 있었을 텐데, 아무 말 대잔치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것을 숙주가 되어 쏟아내는 배설물이다. 틀렸거나 아니면 어떠한가?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유튜브가 틀린 것일 뿐 잘못은 없다.


그렇다고 유튜브가 나쁜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책이 처음 나왔던 시기에도 책은 유튜브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위험한 물건이었으리라. 책이 기존 지식의 독점과 관성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유튜브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책을 통해 종교와 사상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일부 책은 극단적 행동을 선동하기에 좋은 도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수많은 책이 펼쳐지고 읽고, 쓰고, 생각할 시간의 인내가 보편화되면서 균형을 이룬다. 다만 지금은 유튜브가 그 책의 초창기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순간이다. 수십만, 수백만 구독자는 책에 비하면 빠르고 쉬운 선택이라 함정이 있다. 그 사이에는 충분히 생각하고 인내할 문장의 여백이라고는 없다. 쉽게 한번 소비되면 다시 보지도 생각지도 않는다.


지금의 대세는 대혼동이고 나발이고 책이 아니라 유튜브다. 아무 말 대잔치라고 치부해도 일단 대잔치가 아니던가? 그래서 책을 읽고 더군다나 책을 쓰는 행위는 생각하다가 빠른 순리의 흐름에 뒤처져지는 자살행위에 가깝다. 빠른 물살에 둑을 쌓고 있는 짓이다. 책 읽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토 달지 말고, 유튜브처럼 빠르게 윗사람에게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야 성공할 수 있다. 다만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더 줄어든 다음 비로소 책을 읽고 뭔가를 좀 써본 사람들이 살아남는 시대가 오긴 것이다.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고 둑 위에 살아남은 사람. 생각하는 사람, 즉 호모 사피엔스가 인류의 조상으로 살아남은 이유다.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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