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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얼마나 더 맛있게 먹겠다고 전쟁씩이나?

feat 향신료 전쟁

by Emile Mar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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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는 솔직히 좀 낯섭니다. 고추장과 된장과 간장이라는 막강한 양념 천국의 나라에서 고작 후추나 시나몬, 카레 가루그다지 큰 힘을 못쓰지요. 그런 '향신료'를 가지고  "얼마나 더 맛있게 먹겠다고 전쟁씩이나?" 벌인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지요.


여기에 향신료는 수백까지가 있으나 전쟁까지 벌이며 다툰 것은 주로 '후추', '육두구', '정향'입니다. 후추는 종종 고기나 수프에 뿌려 먹기도 하여 알고는 있으나 육두구와 정향은 낯선 품목이지요. 육두구(六頭口)는 "머리가 여섯 개인 입이라는 뜻인? 정향(情香)"정나미 폴폴 나는 향기인가?"라며 궁금해지긴 합니다.


후추

먼저 후추(black pepper)는 남인도의 말라바(Malabar) 해안이 원산지인 덩굴 식물입니다. 양념으로 쓰는 것은 그 열매입니다. 과거에는 검은 황금이라고 불렸을 만큼 노다지였다네. 그래서 이거 겨우 뿌려 먹겠다고 그 인도로 가는 뱃길을 수없이 찾다가 신대륙도 발견한 것이지요.


후추의 열매는 직경 5미리로 열매 안에 한 개의 씨가 있으며, 다 익으면 어두운 붉은색을 띱니다. 이것을 향신료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 익기 전에 수확하여 건조하여 쓴다고 하지요.


육두구

육두구(肉荳蔲)는 너트메그(nutmeg)라고도 하여 사향 냄새가 나는 호두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육두는 머리 여섯(六頭)이 아니라 고기 호두(肉荳)이었네요. 인도네시아가 원산지인 짙은 잎이 달리는 상록수로, 그 씨앗으로 만든 것이 향신료로 이지요. 육두구로는 두 가지 향신료를 만드는데 씨앗 자체로 만든 것은 육두구라고 하고, 붉은빛이 도는 씨앗 덮개로 만드는 것은 메이스라고 한다네요. 독특한 매운맛과 함께 약간 달콤한 맛이 나서 특히 고기나 소시지에 어울리지요.


정향

정향(丁香, clove) 인도네시아 원산지인 상록 교목으로, 말린 꽃봉오리가 마치 못과 닮았다고 해서 정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정은 정나미(情)가 아니라 오히려 뾰족한 못(丁)이었네요


꽃이 피기 직전에 따서 말린 봉오리가 그대로 또는 가루 형태로 향신료로 쓰이는데,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특징입니다. 중국 요리 중에는 오향장육에, 서양에서는 디저트나 음료, 고기 요리나 피클, 소스를 만들 때도 사용된다지요.


그런데 이런 향신료를 진주보다 비싼 금 값을 치르고 사 먹은 이유는 유럽의 빵과 고기가 더럽게 맛없어서였나  봅니다. 게다가 요리 실력도 형편없었나 지요. 빵은 없고 고기는 잡내가 나던 최악의 상황에서, 동양의 신료 맛을 한번 본 유럽 귀족들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러라도 절대 이것을 끊을 수가 없었지요.


이 귀한 향신료를 얻기 위해서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로 반드시 향해야 했습니다. 특히 오늘날 인도네시아에 해당하는 말루쿠 제도는 '향료섬(the Spice Islands)'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향신료의 원산지여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먼 이국땅에서 박 터지게 싸웠다는 이야기가 이 책의 요지이지요.


그런데 육로로는 오스만 제국 같은 강한 적들이 통로를 움켜쥐고 있어 교역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기차는 물론 트럭도 없던 절이었고요. 그래서 주야장천 바다로 뛰어들어 길을 순전히 시행착오를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배는 그나마 있었거든요. 그리고 지구가 둥글다는 막연한 이야기를 주어 듣고 가다 보면 어디든 도착하게 될거라고 생각했지요. 지하철 2호선은 순환선이니 언젠가는 홍대입구역에 도착할거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뱃길의 개척은 참으로 눈물겨웠습니다. 바다에 나갔다 하면 웬만하면 파도에 휩쓸려 죽고, 헤매다 배고파서 죽고, 비타민 부족으로 병 걸려서 죽고,  원주민과 싸우다가 죽고, 서로 싸우다 죽고, 심지어 북쪽항로에서는 얼어 죽기까지 하는 일이 일상처럼 반복되었지요.


스쿠 다가마나, 콜럼버스나, 마젤란이나, 허드슨이나, 신항로 개척의 선구자들로 어디서 들어봤거나, 오늘날 지명으로도 쓰이는 유명한 이름들은 웬만하면 이국만리에서 제명에 못 살고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반문하며 마지막에는 객사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유럽의 대항해는 맛있는 게 워낙 없어서 떠난 맛집 투어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동양에서는 왜 이렇게 항해 같은 것을 떠나지 않고 모험심 없이 방구석에만 틀여 박혀 있었는가 했었는데, 알고 보니 맛있는 게 많거나 대장금 처럼 요리 실력이 뛰어나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지.


요상하게도 이 인기품목 향신료들은 지금의 인도네시아 곳곳의 작은 섬에서 자라나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일단 그 섬을 먼 항해를 통해 어렵사리 찾아가서, 이 향신료를 배에 가득 싣고만 돌아가기만 하, 그동안 투자했던 인력의 목숨값이며, 난파하기 십상인 배값이며, 몇 해가 걸리는 시간값과, 작위까지 주어지는 영예까지, 모든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뽕을 뽑고도 남을 장사였지요. 한마디로 모 아니면 도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투자였는데, 알고 보면 유럽의 부는 이 우연한 코인 도박에 대박이 난 것뿐이었지요.


결국은 ' 얼마나 더 맛있게 먹겠다고 전쟁씩이나' 벌였던 이유는 바로 향신료였고, 그것을 더 많이 먹겠다고 식민지를 하나둘씩 늘려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원주민을 비롯하여, 항해에서 객사한 탐험가들을 보고 있노라인간식탐의 위험성은 어마어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래서 인간은 물욕과 더불어 식탐이 강한 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단순히 "뭘 얼마나 더 맛있게 먹겠다고 전쟁씩이나" 벌이고, 얼마든지 사람을 바다에 수장까지 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엊그제 탐 무지 강한 놈이 풀려난 것을 보니, 요리할땐 , 조심 꺼진 불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요. 그러나 저러나 점심에 뭐 맛있는거 먹지요?



향신료 전쟁

한줄 서평 : 뭘 얼마나 맛있게 먹겠다고 전쟁씩이나 (2025.03)

내맘 $점 : $$$+

최광용 지음 / 한겨레엔 (2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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