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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쿠빌라이 칸'과 미국의 '트럼프 칸'

feat 바다의 황제

by Emile
바다의 황제와 바다의 왕자


'바다의 황제'라고 하니까 '박명수'의 노래 '바다의 왕자'가 생각납니다. 이 제목은 그만큼 특별한 느낌은 주지 못하고 책 제목으로는 너무 평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마치 '유재석'과 '박명수'의 관계처럼 칭기즈 칸이 유재석이었다면, 박명수는 쿠빌라이 칸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한쪽 이름은 더 유명하고 한쪽은 아주 그렇지는 않지요. 다만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바다의 황제와, 바다의 왕자라는 베스트셀러와, 히트곡이 있다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뿐 만이 아닙니다. 이 책은 몽골의 황제 '쿠빌라이 칸' 이야기인데 왜 '초원의 황제'나 '사막의 황제'가 아니라 하필 제목이 '바다의 황제'인 것일까요? 몽골이 바다에 접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 몽골의 칸이 사막과 초원을 누비면 누볐지 바다를 항해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생소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이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이참에 몽골 이야기를 한번 읽어 보기로 하지요. 고려를 침공해서 쑥대밭을 만들었다는 국사 교과서의 이야기와, 뿐만 아니라 그 무지막지한 기마병으로 러시아와 중동을 혼쭐을 내주고 가로질러 서유럽까지 처 들어가 유럽인들에게도 우주인의 침공이라도 당한 듯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몽골군의 이야기는 그저 전설처럼 어딘가 읽어서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이 몽골이라는 나라는 그동안 딱히 잘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크게 없었지요.


몽골에 대하여 아는 것들


요즈음은 몽골이 한국에서 가까운 외국 여행지로 몇 번 소개되면서 꽤나 인기가 올라간 듯합니다. 그러나 그곳을 아직 방문해 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머릿속에서 강력하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몽골은 거리상으로 가깝기에 약간의 장점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심적으로는 딱히 보고 싶은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몽고반점'을 공유한 비슷한 인종이라는 것이나, 근래에 들어서는 우리나라 편의점이 몽골에도 진출할 정도로 다소 호의적인 나라가 되었다는 것 정도지요. 그러나 역시 몽골 하면 '칭기스 칸'의 나라라는 것이 손에 꼽을 만한 것일 것입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몽골 사람들은 공기 좋은 대 자연의 산과 하늘을 바라보고 자라서 시력이 엄청나게 좋다고요? 친애하는 악뮤(악동뮤지션) 남매가 어릴 적 몽고에서 자랐다는 사실 정도가 있지만 여전히 몽골에 가야 할 이유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책에서는 그 이유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외계인의 침공


앞에서도 말했듯이 '칭기즈 칸'이 몽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큰 듯합니다. 아니 이 이름은 단지 몽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존재감 없는 나라의 사람 답지 않게 전 세계적으로도 모르기가 힘든 인물이지요.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까지 공포에 떨게 했던 지구 최대의 무지막지한 정복자였으니까요. 그들의 출현은 마치 외계인의 침공 같았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투의 능력은 물론, 기마술, 궁술, 엄청난 이동 속도, 그리고 잔인함을 더해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니까요. 그들은 우주나, 미래에서 왔다기보다는 마치 과거에서 온 듯이 투박하고 야만적이었지만 분명히 "더 이상 남지 않을 때까지 물리치고 파괴하는" 전략을 고수하였기에 절대 대화로써 상대할 수 있는 지구인이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보단 빨리 도망가는 쪽을 택하는 것이 현명했을 에일리언 지구 침공자였을 것이지요.


쿠빌라이 칸


'쿠빌라이 칸'은 그런 몽골의 존재감을 드러낸 '칭기스 칸'의 손자입니다. 아들도 아니고 손자가 왜 갑자기 그 두 번째 이름으로 등장하였을까요? 그는 이 '에일리언' 치고는 좀 더 외계인 답지 않았는가 봅니다. 그는 처음부터 이 대 몽골 에일리언 제국의 왕이라 할 수 있는'칸'에 예정된 인물은 전혀 아니었지요. 그보다는 몽골의 기질을 그대로 이어 밭은 그의 형 '뭉케'가 더 '칸'에 어울렸습니다. 그의 아버지 '툴루이'는 '칭기스 칸'의 막내아들로서 형제들보다 더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더 많은 적을 죽여 형들을 능가하려는 듯, 가장 사납고,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정복자로 유명했습니다. 즉 그의 아버지와 형 까지는 계속 이 지구를 침공하는 에일리언이었지요. 그러나 '쿠빌라이'는 이러한 아버지나 형제들과는 달리 몽골에서 가장 '칸'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칭기스 칸'으로부터 "진짜 몽골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지요. 몽골식 보다는 북 중국 쪽에 살면서 중국식 교육을 받았고, 외모는 불그스름한 대신 가무잡잡했으며, 어쩔 수 없이 형제들과 전투에 참여했으나, 과체중과 통풍을 핑계 대며 빠지기도 할 정도로 몽골식 기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몽골인 답지 않은 그의 정치적 감각과 행정가적인 기술이 빛을 발하는 때가 마침내 도래하게 됩니다. 마침내 조금은 지구인 다운 우주인이 뜻하지 않게 왕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의 숨겨진 엄청난 능력은 지구인과 비슷하게 사고했다는 것이 아니라 형 '뭉케'나 다른 형제들에 비해 명이 꽤 길었다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형이 죽자 그는 재빠르게 기회를 살려 몽골의 칸으로 등극하게 되지요. 그 이후 그는 그의 어머니 '소라콕타니'의 네 아들 중 누구 보다 오래 살아남아서 이 칸의 자리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긴 명줄의 힘은 그의 할아버지 '칭기즈 칸' 조차 이루지 못했던 중국을 통일하고 대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시간을 그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몇 살까지 살았냐고요? 약 78세까지 산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의 수명 치고, 특히 전투가 빈번했던 몽골인의 삶 치고는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은 셈입니다. 심지어는 그는 후계로 지명된 그의 아들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고, 그래서 그의 후계는 손자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왜 바다의 황제일까?


그렇다면 '쿠빌라이 칸'은 왜 갑자기 초원과 사막의 황제에서 '바다의 황제'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전혀 몽골적이지 않은 그의 사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몽골의 내부적 갈등은 항상 그것에 있었습니다. 몽골의 초원과 사막에서의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쪽과, 보다 개방적이고 한편으로는 보다 중국적이며 글로벌 적인 쪽으로 나뉘었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쿠빌라이는 몽골 최초로 중국식 연호와, 국호를 도입하고 결국 송나라를 멸망시켜, 중국 본토의 땅을 차지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최초의 통일 중국 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러나 몽골 형제 중에는 그러한 팽창과 글로벌화를 좋아하지 않는 쪽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그들은 몽골의 땅과, 방식에 머물기를 주장하고 이 민족들은 그저 약탈의 수단일 뿐, 그들을 직접 다스리거나, 심지어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 의견 충돌은 이 제국이 끊임없이 내전에 휩싸이게 되는 역사를 만들어 갔지요.


'쿠빌라이 칸'이 중국식 문화를 받아들이고, 다국적 인종의 사람들을 등용하고, 심지어 불교, 이슬람, 크리스트 등 여러 종교마저 인정한 것뿐만 아니라, 그중 가장 몽골적이지 않는 것은 초원과 사막이 아니라, 바로 배를 타고 강과 바다로 나간 것이었습니다. 몽골은 배를 큰 수레 정도로 여겼나 봅니다. 그런데 수레는 여성의 이동 수단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에는 절대 남자가 탈 것이 아니라고 여겼었지요. 따라서 육상에서 천하무적 몽골인의 약점은 의외로 물에 있었습니다. 남쪽으로 물러난 송나라도 결국 이 물에 의지해 나라를 지키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왜냐하면 원과, 남송 사이에는 바다와 같은 큰 장강이 가로지르고 있었기에, 몽골군은 매번 장강의 송나라 수군에 가로막혀 공격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남쪽 바다를 통해 공격한 다는 것은 몽골인에게는 더욱더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몽골군의 약점은 고려를 침공해 왔을 때도 드러납니다. 강화도 앞바다를 건너지 못해 처음에 고려를 정복하지 못하고 물러났기 때문입니다. 훗날에는 이를 보강해 고려를 무릎 꿇리긴 했지만 여전히 바다는 쉽지 않은 무대였습니다. 일본 원정을 위하여는 이 고려의 배 기술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바다에 참패하여 정복에 실패하지요. 전쟁에서의 패배가 아니 거친 바다와 태풍이라는 자연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었는데 일본은 운이 좋았지요. 이렇게 그들에게 초원과 사막은 익숙한 것이었지만 강과 바다는 낯선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다이비엣(베트남)과 참파(미얀마) 원정에도 나섰지만 뜻을 다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쿠빌라이 칸'은 포기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통해 꾸준히 바다를 배워갑니다. 그의 유연한 사고는 결국 이 초원과 사막의 황제에게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강과 바다로 가는 길을 내어주게 됩니다.


몽골은 오늘날의 미국, 다국적 기업


'쿠빌라이 칸'의 위대한 업적은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페르시아에 이르는 대 제국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대제국을 잇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크로드를 통해서 힘겹게 가는 초원과 사막의 길이 아니라 마침내 바닷길을 개척해 해상무역을 이룩했다는 것이지요. 아직 유럽의 바다를 통한 탐험이 시작되기 한참 이전, 몽골은 이미 영국이나,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같은 글로벌 해상무역 국가의 중심에 있었고, 온갖 문물과 기술자들이 몰려드는 오늘날 마치 미국 같은 나라였습니다. 이 제국은 단순히 몽골인으로만 이루어진 체계가 아닌, 각국 출신을 관리로 중용했고, 중국의 앞선 문화를 차용했으며, 불교, 이슬람, 크리스트, 등 모든 종교를 아울렀습니다. 중동으로부터 뛰어난 기술자들을 데려와 공성전을 위한 무기와, 해상전을 위한 큰 배를 만들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안정된 무역과 수입을 확보하였지요. 이는 현재의 미국을 연상케 합니다. 기존 몽골의 사고가 에일리언 같은 지구의 약탈 경제에 기반을 두었다면 '쿠빌라이 칸'은 상업과 경작을 통한 생산과 무역을 육성하여 자급적인 경제적 기반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마치 다국적 기업과 같은 모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큰 땅떵이를 둔 나라 답지 않게 마치 애플과 테슬라처럼 기민하게 움직이고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며 혁신과 문물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사후, 그리고 원 제국의 멸망 후 이렇게 힘들게 구축한 거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허무하게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 이후의 명, 청 왕조는 이 '쿠빌라이 칸'의 해상 네트워크를 폐쇄하고 문을 닫아 거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그 네트워크는 결국 잊혀 가고 연안의 작은 항로로 정체되다가 몇 세대가 지난 후 유럽이 차지하며, 결국 그 항로를 통해 전 세계가 제국주의의 침공을 받는 통로로 변모하게 되지요. 만약 중국이 그 해상 네트워크의 지위를 잃지 않았으면 오늘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럽과 아시아의 운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아시아에 의하여 오히려 유럽이 식민지가 되어 지배를 받고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몽골 제국은 가장 압도적으로 크고 강한 제국이었고 '쿠빌라이 칸'의 몽골은 마치 지구정복의 사명을 받은 우주인들처럼 그 당시 전 세계 곳곳을 휩쓸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홍해와 지중해를 넘어 이집트를 공격하였지요. 교황과 협력하여 아프리카 대륙을 넘고, 결국 유럽 조차도 그다음은 차지할 계획이었습니다. 아마도 항해가 계속되었다면 아메리카 대륙도 발견하고도 남을 투지였지요. 그들의 활동 반경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기에도 참으로 광범위하였습니다.


마르코폴로


이러한 일들을 기록하여 남긴 이들이 흥미롭습니다. 그중 하나가 베네치아에서 온 '마르코 폴로'라는 상인이었나 봅니다. 서양에서는 그의 이야기로 인하여 동방의 이 신비로운 제국에 대해서 흥미롭게 듣게 되었다지요. 물론 '쿠빌라이 칸'의 주변에는 마르코 말고도 서역 출신의 여러 색목인 관리와 수하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마르코 폴로는 아마 그중에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말처럼 그리 특별한 인물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몽골은 이미 유럽의 교황이나 서유럽의 왕들을 협박하거나 또는 협력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할 정도였기 때문에 이미 두려운 최강의 제국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마르코 폴로'가 남겼다는 '동방 견문론' 조차 직접 쓴 것은 아니고 감옥에서 구술한 이야기를 '루스티켈로 디 피사로'라는 사람이 적어 책으로 펴낸 것이라 하지요. 하지만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 이것입니다. 결국 남은 건 '쿠빌라이 칸'의 권력도, 부유함도, 제국도 아닌, 그 기록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실질적인 내용은 이 동방견문록의 호기심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훗날 중국에서 '원사(원나라 역사)'의 내용을 더욱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소개된 '마르코 폴로'라는 드라마의 이 '쿠빌라이 칸'의 일대기는 꽤 재미는 있지만 역사는 왜곡된 듯 보이지요.


고려와 몽골


몽골은 한때 그저 고려를 쳐들어왔었던 오랑캐 나라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상당히 흥미롭게 여겨진 부분이 바로 고려와의 역사입니다. 고려는 아주 예외적으로 '쿠빌라이 칸'의 침략을 받고도 나라를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정복국이 아닌 그의 친딸을 유일하게 시집보낸 부마국으로써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고려 충선왕은 무슨 큰 죄를 지었는지 티베트 까지 유배를 가서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송나라의 마지막 황제도 같은 유배지에서 운명하였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티베트는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쿠빌라이 칸'의 대형 유배 감옥이었으며, 일본을 정벌하려고 했던 이유는 이 섬나라를 유배지로 삼으려 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오지요.


미국과 몽골


아무리 세계 최대 최강의 제국이었지만 결국 '쿠빌라이 칸'의 사후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을 보면 모든 제국의 무상함을 느끼게도 합니다. 지난날 몽골 제국은 오늘날 미국 제국을 연상케도 합니다. '트럼프 칸'은 스스로 황상의 지위를 차처하며 마치 '쿠빌라이 칸'처럼 각국에 우방국임을 명목으로 관세라는 조공을 요구하고 있지요. 아마 몽골도 그때에는 전 세계 무역과, 부와, 여러 인종, 종교, 기술자가 모이는 오늘날의 미국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때 아무리 해상무역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해도 권력의 깊은 집중과 올바른 소리를 듣지 않고 귀에 좋은 말만 들으려 하면 모든 빵은 부패하게 됩니다.


'쿠빌라이 칸'이 결국 제국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는 결국 트럼프를 끝으로 분열하고 쇠퇴의 길을 가게 될까요? 아마 그것은 원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내부로부터의 불신으로 그러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등을 돌렸던 우방국도 언젠가는 원나라에게 그랬던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에 창을 겨누게 되겠지요. 이번 무역 협상 타결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미국 조선업을 더욱 위대하게"라고 조선 쪽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은 것은 더욱 아이러니입니다. '쿠빌라이 칸'이 고려에게 원했던 것도 수군을 위한 배의 건조와 항해의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고려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부마국 정도가 되겠지요. 왕비가 갑질도 하지만 필요하면 원군도 보내주는 그런 지위 말입니다. 그런 '쿠빌라이 칸'에게 고려가 그랬던 것처럼 무턱대고 맞서는 일은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쿠빌라이 칸'과 '트럼프'는 그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여 오직 이익을 취하려는 무식함에서 매우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관세를 통한 미국의 최대 전성기는 '트럼프 칸'이 마지막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게 될까요? (다음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마르코 폴로 이야기를 한번 써 보려고 합니다)




바다의 황제 (쿠빌라이 칸은 어떻게 유목 제국을 해양 초강국으로 변모시켰나)

한줄 서평 : 트럼프 칸은 쿠빌라이 칸의 부활일까? (2025.07)

내맘 $점 : $$$$

잭 웨더포드 지음 / 이재황 번역 / 책과 함께 (20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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