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일인칭 단수 -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원숭이와 호랑이
일본에는 원숭이는 살지만 왜 호랑이는 없을까? 한국에는 호랑이는 있지만 왜 원숭이는 살지 않을까? 불현듯 이번 이야기를 읽고는 이런 의문에 빠지게 된다. 설마 아닐 수도 있기에 찾아보니 정말 그렇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분포한 적이 없으며 화석 기록도 없단다. 반면 한국에는 20~30만 년 전에는 원숭이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극심한 추위와 가뭄 등 기후의 열악함을 이기지 못한 데다, 호랑이 같은 천적에 먹혀 멸종되었다고 한다. 그 기후와 풍토에서 적응해 살아남은 인간의 기준으로도 한국은 호랑이를 일본은 원숭이를 더 닮았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호랑이와 원숭이와 비슷해서 서로의 생존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음을 짐작해 본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호랑이 이야기가, 일본에는 원숭이 이야기가 더 많이 전해 내려와 그것과 친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망한 원숭이
그런 일본 작가답게 이번에 '하루키'는 심지어 '원숭이'와 통역도 없이 직접 대화를 한다. 지난 글 중에 '구라'력이 출중하여 '하구라 하루키'라고 놀렸던 일을 기억하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구라'도 아니고 아주 대놓고 말하는 원숭이를 등장시킨다. 심지어 '하루키'의 등도 밀어주고, 맥주도 같이 마시고, 알바하며 팁도 받아가는, I ♡ NY 티셔츠를 입고 있는 요망한 원숭이다. 이 원숭이는 '하루키'와 말이 통해서 요망할 뿐만 아니라, 사모하는 여자 사람의 이름을 훔치기도 해서 더욱 망찍하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애정하는 여자의 이름이 쓰여 있는 물건을 훔쳐서 그 이름을 연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원숭이라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변태 같기도 하고, 그 외에는 어떠한 피해나 흔적도 남기지 않으므로, 누구나 사랑했던 사람 이름 몇 개쯤은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숭이는 아니지 않은가?
하루키의 수작질
다만 이 원숭이로부터 이름이 써진 물건을 잃어버린 여자는 가끔 자신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적 깜빡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데 전화번호나 주소라면 모를까 침해도 아니고 자신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과연 잘 있을까? 그런 일은 기억하기에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일본 사람은 이름이 우리보다 길어서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건 아무래도 '하루키'의 원숭이 같은 수작질일 확률이 높다고 단정한다. 다만 그 헛소리가 내심 진지하고 아귀가 잘 맞아, 호랑이가 원숭이를 보고도 혼이 나간 것처럼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이름의 대가
원숭이도 애정하는 이름 몇 개는-여기서는 무려 일곱개+하나더다-심지어 훔쳐서라도 간직하고 살아가는데, 인간으로서 그런 이름은 과거에 몇 개 있는 것 같았다가도 점점 더 줄어들어 이젠 거의 남아있지 않거나 희미해서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슬퍼진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렇게 사랑하는 이름 몇 개를 기억하고 간직하며 견디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름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대가로 인간은 단지 몇 푼씩을 돼지 저금통에 더 쌓아온 것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 당신 이름도 그렇게 팔아서 소고기도 아닌 겨우 돼지고기 사 먹었겠지. 원숭이 만도 못한. 호랑이도 돼지 못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