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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May 27. 2022

뚱보균을 퍼뜨린 자를 찾아라

누군가는 책임져야한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만사에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나누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잘못을 한 죄인은 반드시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임론에 '살찐 책임'이 빠지면 서운하다.  


나만 늘 피곤하고 내 배만  유독 튀어나오고, 같이 먹어도 나만 살찌는 현실은 분명 공평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잘못을 일으킨 주범은 반드시 밝혀내 벌주는 것이 현대의학과 영양학의 미션 중 하나다.


불공정 비만이라는 악행을 저지르고 숨어있던 녀석이 결국 잡혔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여러 매체에서 이 범인 스토리를 다루는걸 보니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슈였나보다.  그 중 J일보 기사를 재밌게 읽었다. [기사]

 

내용인 즉슨 우리가 대장에서 키우는 장내 미생물은 서로다른 종류가 밸런스를 이루고 있는데 균형이 깨져 유해균이 득세하면 살찔 수 있다는 것이다.  

매우 과학적 추론으로 밝힌 뚱보균의 정체,  바로 퍼미큐테스



최근  장내세균이 우리 건강에 미친다는 연구들이 많이 나왔다.  그저 대장으로 지나가는 소화물을 공짜로 받아 먹으며 무임승차하는 것 세균인 줄 알았는데 음식물 소화를 돕고 몸의 대사에 관여하고, 만성질환을 예방하며 내 기분을 조종하는 등 건강의 숨은 조력자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몸속 당분을 발효시켜 지방을 과하게 생성시키고 식욕을 치솟게해 날씬한 나를 비만하게 만드는 것도 장내세균이라고 한다.  내가 기른것이 착한 양떼인 줄 알았는데 퍼미큐테스라는 녀석은 양의 탈을 쓴 늑대였던거다.   

긴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남들과 '똑같이' 먹는데 나만 찌게 한 원흉은 바로 장내 세균, '뚱보균'이다.

드디어 그동안 나만 살이 쪘던 미스테리가 풀렸다.

이 뚱보균만 처치하면 다시 본래 내모습(?)으로 돌아 갈 수 있다.


그런데...

이제 밝은 미래만 있을거 같지만 뭔가 찝찝하다.    

그 퍼미큐테스는 어떻게 없어버려야 하나.

애초에 내가 퍼미큐테스를 허락한 적도 없을 뿐더러 어떻게 찍어내야할지도 모른다.   


마치 해결책인듯한 이야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무기력만 자아내는 것은 내용전개에 헛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생물학의 어마어마한 전문가라서 퍼미큐테스의 존재를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잘 모르는 전문영역을 건드리지 않아도 퍼미큐테스가 죽일 놈이라는 비약적인 스토리 헛점을 금방 찾을 수 있다.  


내가 헛점이라고 여기는 것은 세가지다.  

1. 정말 똑같이 먹고 있

2. 뚱보균은 누가 배안에 집어넣었나

3. 날씬균을 사 먹으면 날씬해지나.


파헤쳐보자.


1. 똑같이 먹는데 살쪘다

살이 찌는 이유중 가장 억울해하는 대목이 바로 똑같이 먹는데 나만 찐다는 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살안찐사람이 평소에 뭐먹는지 자세히 분석하는  본적이 없다.  그냥 라면 한번 같이 먹었다고 그와 내가 늘 같은걸 먹는다고 생각하면 비약이다.  

그들 한명 한명이 매끼니 뭘 먹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적정체중을 유지하는 사람적정체중에서 벗어났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먹는 것의 평균적 구성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무리 실제 먹는 종류가 다르다는  연구 논문을 늘어놓아도 결국 똑같이 먹는데 나만 찐다는 믿음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신봉자가 있다. 이들의 확고한 신조는 '똑같이 먹고 찐다'와 '물만 먹고도 찐다'는 두 가지이다.   이들 중 하나인 내 친구가 살빼기 위해 먹은 식단이라며 나에게 보내준 사진이다.

이런 플레이를 무수히 보아왔던터라  대뜸 '저렇게 먹으니 살이찌지'라고 일갈했다. 더욱 억울해진 친구는 만두는 겨우 168그람 200칼로리거든!! 라며 바로 항변한다.    


저 만두가 10칼로리든 200칼로리든 상관없다. 첫째, 누가봐도 저건 물이 아니었고(차라리 물사진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둘째, (재료가 뭔지 알수 없이 맛만 남은 조립 가공식인)저 만두가 살 안찌는 이들이 먹는 음식도 아니었다.  


평소 살 안찐사람과 똑같이 먹었다고 믿는다면 다이어트할 때도 살 안찐사람들이 평소 먹을 것 같은 음식을 먹는것 아닌가? 그런데 마른 사람들이 저 다이어트 만두 같은 음식을 먹고 말랐나? 아니면 살뺄필요없으니 168그람대신 한 400그람으로 많이 먹으려나?


난 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것은 다이어트 만두도 그냥 만두도 아닐거라고 본다. 아니 애초에 적정체중인 사람이 뭔가 적게 먹는다는 생각부터가 잘못이다.  내 주변의 마른사람들은 모두 풍성하게 먹는다. (물론 원래 양이 적은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평균적인 상황을 얘기하고자 한다)

더 많이 먹는게 고칼로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공도가 낮고 에너지 밀도가 낮은 신선한 자연식의 비중이 높아지면 적게 먹을 수가 없다. 배가 부르게 먹을 수 밖에 없고 영양분이 부족해지기도 어렵다.  


가공식을 매끼먹어도 살 안찐사람이 일부 있을 수 있고 살면서 한두번씩 가공식, 치팅식 안먹는 사람이 어딧겠는가.   중요한것은 가끔 있는 특이한 사람이나 일탈적인 상황이 아니라 매일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내 눈에는 살쪘다고 걱정하는 사람과 적정체중을 유지하는 사람은 분명 다르게 먹고 있다.  


2. 누군가 원치 않은 뚱보균을 내게 집어넣었다.


기사에 장내세균을 이놈 저놈 부르다보니 마치 퍼미큐테스가 의지를 가지고 내 몸에 숨어든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망치기 위해 그 놈을  내 밥위에 뿌려넣었다는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퍼미큐테스가 내 배안에서 자라게 만든 진범이 누구인지.

 

대장속 장내세균이 하는일을 보면 내 배안에서 발효를 일으키는 과정과 유사하다.  대장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김장일 수도 있다. 김장할때 배추와 양념소가 유익균의 생성시키고 그 덕분에 김치는 숙성하여 깊은 맛을 낸다. 재료 잘못쓰면 유익균의 비중이 줄어들고 김치에서 쓴맛이 나기도 한다. 하물며 김장에서도 재료를 그렇게 중요하게 따지면서 내 배 속에는 무거나 밀어 넣고 유익균이 번성하리라 기대하는 게  욕심아닌가?  내친구가 보여준 그 만두는 과연 내 배안에서 유익균인 박테로이데테스를 만들수 있겠는가.


다양한 콩류, 야채 과일을 비중있게 섭취할수록 장내세균에서 유익균인 박테로이데테스, 젖산균(Ruminococcus, E. rectale...)의 구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Healthline]  결국 내 배안의 장내세균은 평소 내가 먹은 음식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유익균 유해균의 비율도 내가 정하는 것이다.

 장내세균을 키우는 주도권은 음식을 결정하는 내가 가지고 있다. 나도 본적없는 퍼미큐테스균을 누군가 내 밥위에 뿌린다는 것 역시 말도 안되는 논리다.


퍼미큐테스를 뚱보균이라고 단정하기에 아직 좀더 검증단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여튼 뚱보균이건 건강균이건 누구를 이뻐하고 성장을 촉진시키는 주체는 인간이다. 뚱보균 기사는 이런 인간의 주도적 역할은 숨기고 마치 다른 외부의 힘에 의해 억울하게 체중을 조절당했다는 희생자플레이를 하고 있다.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은 나를 행동의 주체로 삼고 문제에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감당이 안되는 상황에서 나는 그저 희생자라고 설정하면 개선의 여지는 없다.


3. 날씬균을 먹으면 날씬해 질거다

요즘 느끼는 거지만 다이어트, 건강을 주제로하는 기사들의 한 절반은  간접광고다.

이 뚱보균 기사는 좀 다를까 싶지만 결국 기사 말미에 은근 속내를 드러낸다.

결국은 사먹으라는거?

실컷 퍼미큐테스를 공격해놓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 제시한 솔루션이 락토바실러스 복합물 먹기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해결책인가. 아무리 내 대장 전체가 퍼미큐테스로 점령당해도 식약처 인증 프로바이오틱를 먹으면 퍼미큐테스를 싹 밀어준다니... 참 간편하고도 획기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럼 프로바이오틱을 계속 먹으면 살도 빠져야 되는 거 아닌가? 왜 그런 연구 결과는 없는 건가. 있으면 보여주지 못해 안달 났을 터인데 말이다.


프로바이오틱 효과 없으니 먹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과거 인류가, 우리 선조가 어디 락토바실러스 복합물을 사먹어서 배변활동을 유지 했겠나. 애초에 유익균을 많이 생성하게 도와주는 식단이 존재하는데도 꼭 필요한 이들은 관심이 없다. 심지어 현대인이 정상생활과 병행하기 불가능한 식단이라며 선을 그어버린다.  


주변을 보면 건강과 관련한 문제의 해결책은 획기적인 상품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듯 하다. 하지만 인간의 문제가 반드시 돈주고 솔루션을 사서 해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문제가 안생기게 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뚱보균의 희생자가 되기 보다는 과일 야채로 배부르게 한상 차려 먹고 기운내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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