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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사과

by 송아론

성문은 중구가 민환과 이야기하는 동안 복부에 꽂힌 식칼을 빼기 시작했다. 배를 꿀렁거려 칼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사악- 살이 째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성문은 침음을 삼키며 배 근육에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했다.


땡그랑.


이내 식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중구는 민환과 대화를 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성문은 허리 뒤로 묶인 손으로 칼을 쥐었다. 모든 감각을 손가락에 집중해 손목에 결박된 끈을 썰었다. 불안정한 자세로 손가락에서 쥐가 났지만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중구는 민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결박을 풀 기회는 지금 밖에 없었다.


툭.


이내 손에 묶여있던 끈이 끊어졌다. 성문은 중구를 슬쩍 쳐다본 뒤에 재빨리 발에 묶인 끈도 잘랐다. 끈을 절단하는 데 걸린 시간은 3초면 족했다. 중구는 천장을 쳐다보고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성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환이 ‘어?’하며 그 모습을 쳐다봤다. 성문은 칼을 들고 있는 중구에게 달려들었다. 뒤에서 태클을 걸었다. 중구가 무방비로 고꾸라졌다. 넘어지며 과도를 놓쳤다. 성문은 그 위에 올라타 중구의 오른팔을 꺾었다.


“개새끼야!”


“아악...”


“니가 날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중구가 왼팔을 파닥이자, 성문은 식칼로 그의 손등을 찍었다.


푸욱-!


“아아악!!!”


“성문아!”


중구가 괴성을 지르자 민환이 소리쳤다.


“최민환 경찰에 신고해!”


“신고...?”


“빨리 신고하라고!”


성문의 복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윤수는 눈이 수건에 가려진 채로, 아버지가 박중구를 제압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건 민환뿐이었다.


“최민환, 신고하라니깐?”


“하지만...”


“시발.”


성문은 박중구 손등에 꽂혀있던 칼을 빼냈다.


“아악...!”


박중구가 신음을 터트렸다.


“최민환 신고 안 하면 이새끼 여기서 죽어. 중구 죽는 꼴 보고 싶어?”


성문이 박중구 목에 칼을 갖다 댔다. 이건 협박이 아니었다. 성문은 부상당했다. 윤수는 결박당한 채다. 중구는 성문을 죽이려 한다. 성문이든 중구든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고를 하면 누구도 죽지 않고 이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다.


“알았어...”


민환은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112에 신고를 했다. 부상자가 있으니 구급차도 불러달라고 했다. 성문은 경찰이 올 때까지 박중구를 끝까지 제압했다. 얼마 후,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이 들이닥쳤다. 성문은 그제야 됐다며 복부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


박중구는 경찰차에 이송되었다. 성문과 윤수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윤수는 입안을 치료하고, 성문은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도 장기에 손상은 없었다. 약 40 바늘을 꿰맨 뒤에야 수술이 끝났다.


성문과 윤수는 나란히 2인 병실에 입원을 했다. 윤수가 먼저 병실에서 성문을 기다렸다. 성문이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들어왔다. 윤수는 벽에 기댄 채로 앉아 있었고, 성문은 절뚝이며 매트 위로 올라갔다.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갈랐다.


“입은 어때? 괜찮아?”


성문이 말했다. 윤수는 시선을 내리 깐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윤수의 얼굴에 피멍이 물들어있었다. 성문은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복부에서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미안하다. 다 아빠 책임이야.”


“박중구 아저씨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글쎄. 아마 구속되고 감옥에 갈 거야.”


“이번일 때문에요?”


“아니, 이 전에도 걔가 잘못한 게 있어. 내일 경찰서에 가서 진술할 생각이야.”


박중구가 몇 주 전 마을 여자를 강간하고 살인한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저씨가 다른 잘못을 한 게 뭔데요?”


“너는 몰라도 되는 일이야.”


“또 숨기시는 거예요?”


“우리랑 관련 없는 일이라서 그래.”


윤수는 입을 닫았다.


“민환이가 너한테 학교에서 손찌검한 거 말이다.”


“박중구 아저씨도 똑같은 거였네요.”


윤수가 말을 가로챘다.


“저는 그 아저씨가 왜 도사견으로 절 물게 만든 건가 했는데 선생님이랑 똑같은 이유였어요. 제가 그날, 린의 집에 갔기 때문이 아니라고요.”


윤수가 성문을 쳐다봤다.


“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게 재밌는 일이었어요?”


“…….”


성문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설마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짓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제가 저번에 아빠한테 엄마가 왜 죽었냐고 했던 말 기억하시죠?”


성문이 윤수를 쳐다봤다.


“그때 아빠가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사람의 믿음을 배반하는 짓을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어요. 언젠간 나에게 다시 되돌아오게 돼 있다고요.”


윤수는 침을 삼킨 뒤 말을 이었다.


“아빠는 그때도 그걸 모르고 있다가 엄마를 죽이더니, 이번에는 저를 죽일 뻔했네요.”


성문은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잠입 수사였지만, 사람의 마음을 배반해 행동대장 김철호가 아내를 죽이게 만들었다. 김철호는 조직에서도 누구보다 자신을 따랐던 사람이다. 가끔은 그가 정말 나를 친형처럼 생각하는 듯 해 괴로웠던 적도 있었다. 그런 그를 배반하자 아내를 죽였다. 그리고 초, 중, 고, 동안 학창 시절 박중구의 마음을 파괴시켜 윤수를 죽일 뻔했다. 모두 맞는 말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할 말이 없구나... 미안하다. 아빠가 회복되면 이사 가자.”


“이사요?”


“그래, 지난번에도 한번 말했잖니.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게 너에겐 좋은 영향을 줄 거 같지 않구나.”


“제가 아니라 아빠겠죠.”


윤수가 이어 말했다.


“저는 아빠가 왜 이사를 가자고 그러는지 몰랐는데, 결국은 도망치려는 거였어요. 맞죠?”


성문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뗐다.


“...너를 위해서 그런 거다.”


“아빠를 위해서겠죠! 선생님, 박중구 아저씨, 그리고 린 엄마한테 한 짓이 있으니까 도망치려 그랬던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된다면, 그렇게 해라. 너를 설득시킬 생각은 없어.”


성문은 시선을 떨궜다. 윤수가 떠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이사 안 갈 거예요.”


“뭐?”


성문의 시선이 올라갔다.


“저는 아빠처럼 도망치지 않고 싸울 거라고요. 그러니까 이사 가자는 말 하지 마세요!”


그 말은 곧 린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은 학교 아이들과의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알겠다. 일단은 천천히 생각해 보자. 아빠도 머리 좀 정리할게.”


“정리한 후에 꼭 사과하세요. 선생님이랑, 박중구 아저씨, 그리고 린 엄마한테 꼭 사과하시라고요.”


“...알았다. 그건 약속 하마.”


윤수는 옆으로 돌아누운 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성문은 윤수에게 면목이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은 누구보다도 멋진 아버지라고 자부했다. 형사 때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게 흠이긴 했지만, 항상 윤수에게 다가서려 애썼다. 윤수가 나를 싫어한다거나, 어색해한 적은 없었다. 녀석이 서울에서 같은 반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남자들과 맞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흡족했다. 형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라고 생각했다.


윤수는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형사로서의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학교에서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고 할 때면 언제나 1순위가 아버지였다. 게다가 성문은 매년마다 한 번씩 초등학교에서 직업강의를 했다. 윤수는 그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성문은 윤수가 나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이미 충만히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순간 모든 게 깨져버리고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 윤수가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말도 딱딱하고 나를 피하는 느낌을 받았다. 성문은 그것이 두려웠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아들에게 탄로 난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아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정의로운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더니 결국 이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젠 모든 게 까발려졌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성문은 혼란스러웠다.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


성문과 윤수는 주말 동안 입원을 했다. 성문은 병원에 더 있어야 하지만, 윤수 때문에 퇴원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일부터 학교 가도 괜찮겠어? 쉬어도 상관없다만,”


“갈게요.”


다시 침묵이 흘렀다. 택시는 바로 집 앞에서 멈춰 섰다. 성문은 기사에게 요금은 더블로 줬다. 기사는 금니가 보일 정도로 웃으며 인사를 했다.


“먼저 들어가 있어. 아빠는 이장님이랑 이야기하고 올게.”


“네.”


윤수는 뒤돈 채로 대답하고 문을 따고 들어갔다.


성문은 한숨을 쉰 뒤 마을 이장 집으로 걸어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복부에 통증이 가중됐다.


성문은 인상을 쓰며, 이장의 집에 당도했다. 인터폰을 누르자, 이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문이고.”


“네, 선생님. 이야기 좀 할 수 있을 까요.”


“들어와라.”


이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문을 열었다. 현관문 앞까지 걸어가자 이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오늘 병원에서 퇴원한기가?”


“네.”


이장은 들어오란 말없이 서 있었다.


“이야기는 대강 들으셨죠?”


“그래. 들었다. 중구가 니도 모자라서 아까지 죽이려 했다꼬?”


“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기고.”


“선생님은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왜 그걸 나한테 묻나?”


“판단이 서지 않아 물어보는 겁니다.”


“니 이미 지난번에 다 결정 내린 거 아이가? 중구가 경찰서에 갔으니 성공한 거 아이가?”


성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중구 징역 살 겁니다. 살인미수 뿐만 아니라, 그간 저지른 범죄도 있어서 가중처벌받게 될 거고요.”


“니 나한테 그거 통보하러 온 기가?”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럼 고마워하면 되는 기가? 배때지까지 꿰맨 몸으로 행차하셨으니?”


성문은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중구를 그렇게 만든 게 모두 저 때문입니다. 제가 중구를 괴롭히고, 그것도 모자라 인간성마저도 파괴시켜서 그런 겁니다. 모두 제 책임입니다.”


성문은 이마를 땅에 대고 넙죽 엎드렸다. 이장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 이게 얼마 만이고? 니 지금 나이가 40이니까... 20년 만에 사과받는 거제? 그쟈?”


“......”


성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이제 다 엎지라진 물이다. 니가 사과한다고 중구가 범죄를 안 저지른다는 법도 없꼬! 중구가 나중에 출소해서 니한테 복수 안 한다는 법도 없꼬! 그냥 니 안 보이는 데로 가라. 그게 너도 살고 중구도 살고 모두가 사는 해결책이다. 지금 와서 사과니 뭐니 추잡스럽기만 하고 쓸데없다 카나.”


“......”


성문은 일어선 뒤 입을 뗐다.


“저도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카라.”


이장은 문을 쾅 닫았다. 성문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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