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은 굳이 맥박을 짚지 않아도 연서가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몸은 경직된 채였고 허벅지에 시반이 형성돼 있었다. 몸 밖으로 배설물이 나와 악취가 풍겼다. 성문은 신고를 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뒤이어 고향으로 오면서 휴대폰을 없애고 왔다는 것을 자각했다.
재빨리 밖으로 나와 신고를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뒬 때마다 복부를 퀘맨 부위가 아려왔다.
개울가를 지날 때였다.
“지성문.”
고개를 돌리자 민환이었다. 그는 머리에 피범벅이 된 기찬을 엎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우리 학생이 다쳤어. 혹시 운전 좀 부탁할 수 있어? 병원에 가야 해서.”
“그전에 신고부터 하자.”
“무슨 신고?”
“채연서가 죽었어.”
민환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마터면 엎고 있는 기찬을 놓칠 뻔했다.
“연서가 죽었다고...? 왜...?”
“나도 몰라... 연서랑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집에 갔는데, 죽어 있었어. 며칠은 된 거 같아.”
민환은 충격에 걸음을 멈췄다. 온몸이 경직되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일단 빨리 가자.”
성문이 입을 떼서야 다시 걷기 시작한 민환이었다.
***
윤수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바닥을 쓸었다. 성태와 상태도 거들었다. 형석은 자리에 앉은 채로 계속 린을 노려봤다. 린의 눈동자가 흰자위로 뒤덮였을 때, 형광등이 터진 걸 목격한 그였다. 린이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저지른 짓인 것만 같았다. 윤수가 린의 어깨를 잡고 하지 말라고 외친 것도 수상쩍었다.
“마, 언청이. 니가 기찬이 다친 게 한 거 맞제?”
“응, 맞아.”
린이 대답했다. 윤수는 바닥을 쓸 던 중 놀라 고개를 돌렸다.
형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럼 어디 내한테도 해봐라. 내 머리 위에 있는 형광등도 터트려 보라꼬, 근데, 니 10초 안에 못하면 맞을 줄 알아라. 알았나?”
형석은 진심이라는 듯 주먹을 쥐었다. 윤수가 그 앞을 막아섰다.
“하지 좀 마! 이래야 속이 시원하겠어?”
“하나, 둘, 셋...”
형석은 윤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초를 셌다.
“넷, 다섯, 여섯...”
윤수는 황급히 린을 쳐다봤다. 그녀는 가만히 앉은 채로 형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일곱, 여덟, 아홉....”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윤수가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형석이 윤수를 밀치더니 린에게 주먹을 날렸다.
빠악!
인정사정없는 폭행이었다. 린은 얼굴에 주먹을 맞아 의자와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린아!”
윤수가 황급히 린에게 달려갔다. 린은 눈이 뒤집힌 채로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급기야 거품까지 물기 시작했다.
“린..! 린아! 정신 차려봐!”
윤수는 감히 그녀를 만질 수 없었다. 덜덜 떠는 그녀를 보며 자칫 잘못 만졌다가는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윤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개새끼!”
퍽.
윤수는 주먹으로 형석의 얼굴을 때렸다. 하지만 무의미한 공격이었다. 형석은 꿈쩍하지 않은 채 발로 윤수의 배를 걷어찼다.
우당탕.
윤수가 굴러 떨어졌다. 일어나 다시 형석에게 달려갔다.
“왜 니가 먼저 시비 걸고 린한테 그래!”
윤수는 막무가내로 주먹을 휘둘렀다. 형석은 몸으로 주먹을 막아낸 다음 윤수의 목을 잡았다.
“마! 선생님도 없는데 니도 죽여줄까! 어!?”
형석은 윤수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뒤 상체에 올라탔다. 윤수의 목을 잡고 강하게 압박했다. 윤수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이를 악물고 형석을 노려봤다.
번쩍-
파팡-! 파파팡-!!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치더니, 교실에 있던 형광등이 모조리 박살 났다.
“으악!”
“악!”
성태와 상태는 깜짝 놀라 귀를 막았다.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고, 순식간에 교실이 어두워졌다. 거센 바람이 열린 창문을 통해 교실을 덮쳤다. 커튼이 기괴하게 퍼덕거렸다.
“행, 행님아 그만해라!”
성태가 목을 조르고 있던 형석의 팔을 잡았다. 형석 손을 풀자 윤수는 기침을 토했다.
윤수는 누운 채로 몸을 돌려 린을 쳐다봤다.
“린...”
린이 침을 뚝뚝 흘리며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윤수는 엉금엉금 기어갔다.
“린, 괜찮아? 응?”
윤수는 린을 여전히 만지지 못했다.
“병원에 가보자.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
윤수는 그 말을 하던 중,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린? 린....?”
린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눈도 뜬 채로 깜박이지 않았다.
“린!!!”
윤수는 목 놓아 외쳤다. 옆으로 쓰러진 린을 바로 눕혔다. 상체에 있는 단추를 풀며 고개를 돌렸다.
“빨리! 119에 신고해!”
윤수가 눈이 시뻘게진 채로 말했다. 성태와 상태는 놀라 움직이지 못했다. 형석도 마찬가지였다. 숨이 멎은 듯 움직이지 않는 린을 보고는 충격에 빠졌다.
“빨리 교무실에 가서 신고하라니깐!!”
윤수의 외침에 아이들이 정신을 차렸다.
“사, 상태야 빨리 가자.”
“응!”
쌍둥이들이 황급히 교실을 나갔다. 윤수는 린의 고개를 옆으로 돌린 뒤 손가락으로 이물질을 빼냈다. 거품을 모두 걷어 낸 뒤 인공호흡을 했다. 그리고 맥박에 맞춰 가슴을 빠르게 펌프질을 했다. 성문에게 배운 심폐소생술이었다. 60번 가슴을 압박한 뒤, 다시 인공호흡을 했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윤수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
성문은 민환을 읍내 병원까지 데려다줬다. 민환이 기찬을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동안, 성문은 멍하니 운전석에 대기했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성문이 죽은 채연서를 살피지 않은 것은 원인이 무엇인들 내 책임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로 인해 중구는 범죄자로 전락했고, 채연서는 고통에 얼어 죽고 말았다. 그녀가 어떻게 죽었다 한들, 자신이 영향을 미쳤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도로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구급차 한 대가 성문의 차량 뒤를 빠르게 지나갔다. 성문은 주먹으로 핸들을 내리쳤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를 수 있을까. 민환의 말대로, 선생님의 말대로 이사를 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일까? 그건 윤수의 말대로 회피가 아닌가?
성문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차량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조수석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민환이었다. 성문이 입을 뗐다.
“애는 어떻게 됐어?”
“수술 중이야. 머리에 유리가 30조각 이상이나 박혔대.”
“...어쩌다 그런 거야?”
“몰라, 애들이 불러 가보니까 천장에 있던 형광등이 터졌더라고.”
민환이 조수석에 앉자 성문이 앞을 바라봤다. 둘은 한참이나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연서한테 사과하려고 갔던 거라고?”
성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죽은 거야...?”
“일부러 확인 안 했어.”
“왜?”
“그냥,.. 내 책임인 거 같아서.”
민환은 성문을 한 번 쳐다본 뒤 앞을 봤다. 성문이 찹찹한 얼굴로 입을 뗐다.
“저기 그때 말야. 중구가 나 죽이려 했을 때. 그때, 우리 집에 왜 온 거야? 나한테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었어?”
그때 민환이 집에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성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환이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연서에게 사과하라고. 니가 최소한 인간이면 연서에게 사과하고 가라고 말하려고 했었어. 그런데 이제 소용없네.”
민환은 우습다며 피식 웃었다.
“어떠냐? 니가 괴롭힌 애들이 파괴된 모습을 보니까. 한 놈은 깜빵 가고, 한 년은 죽고, 나는 내가 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떠냐? 지금도 그때처럼 재미있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민환의 눈빛에는 더는 증오가 서려있지 않았다. 공허함과 허탈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이 말이 너한테 어떤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지금으로서는 나도 이 말 밖에 할 수가 없네. 미안하다.”
민환이 냉소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하... 나도 내 인생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싸워보는 건데. 니가 죽도록 괴롭혔을 때, 정말 죽을 생각으로 싸워보는 건데. 그러면 적어도 이렇게 살진 않았을 거 같은데, 중구도 연서도...”
“미안하다.”
“그래서 언제 이사 갈 거야? 나는 바로 갔으면 하는데.”
성문을 쳐다보는 민환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도 빠르게 가고 싶은데,”
“싶은데?”
“고민이 많아. 윤수 때문에.”
민환은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발! 니 아들이 뭔데? 왜 이사 가지 않겠데?”
성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수도 이제 내가 저지른 일 다 알아. 너, 연서, 중구 괴롭힌 거. 거기다 이제 린 엄마까지 죽었다는 걸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초등학생 5학년이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강제로 데려가면 되잖아?”
“그게 아니라, 도망치는 거 같아서. 그게 싫은 거야. 윤수는.”
“도망치는 거 같아서?”
민환은 어이가 없다며 이어 말했다.
“그럼 내가 윤수한테 똑똑히 얘기해 줄게. 너하고 너네 아빠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내 쫓기는 거라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이 마을에서 버려진 거라고. 그럼 되겠어?”
“......”
성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민환이 성문을 일별 하며 말했다.
“린은 이제부터 내가 키울 거야. 양녀로 삼든 뭘 하든 채연서 대신 내가 키울 거니까, 윤수한테 전해. 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그러니까 선생님이 멀리멀리 사라지라고 했다고.”
민환은 조수석 문을 열고는 멈칫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윤수 너와 다르 게 좋은 놈인 거 같더라. 그래서 배려하는 거니까, 내가 또 윤수 상처 주지 않게 너도 잘 대처해. 그게 네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야.”
민환이 조수석에서 내린 뒤 문을 닫았다. 동시에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병원 입구에서 멈춰 서더니 뒷문이 열렸다. 성문과 민환은 동시에 그 구급차를 바라봤다.
먼저 윤수가 앉아 있는 게 보였고, 운반구에 린이 실려 나오고 있었다. 성문과 민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왜 구급차에서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