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하아...”
성문은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했다. 방금 전 그 소리는 분명 윤수가 바깥으로 나가는 소리였다. 성문은 날숨을 뱉은 뒤, 안방 문을 열었다. 컴컴한 거실은 어둠처럼 고요했다. 성문은 바로 현관문 앞으로가, 윤수의 신발을 확인했다. 윤수의 신발이 그대로 있는 걸 본 순간,
“아빠, 거기서 뭐해요.”
성문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극도의 공포심이 만들어낸 환청이었다. 성문은 날숨을 뱉은 뒤 신발을 바깥으로 나갔다.
사방은 어둠이었다. 어둠이 모두 빛을 잡아먹고 있었다. 성문은 주위를 살피며 윤수를 찾았다. 그가 보이지 않자 집 뒤쪽을 돌아봤다. 윤수가 맨발로 걷고 있었다. 성문은 그 뒤를 쫓아갔다. 윤수는 걸으면서 상체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리만을 이용해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걸었다.
윤수가 이내 느티나무 아래에 멈춰 섰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성문은 논 밭 아래에 몸을 숨겼다.
“미안. 내가 늦었지?”
윤수가 말했다.
“성태가 죽었어. 낭떠러지에 떨어진 모양이야. 온몸이 부서졌대.”
‘누구랑 대화를 하는 거지?’
성문은 조심히 고개를 내밀어 윤수를 쳐다봤다. 윤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엔 누구를 죽일 거야? 나한테 귀띔만 해줘.”
성문은 눈을 가늘 게 떠 윤수 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찾았다. 하지만 역시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다.
“그래. 몸은 괜찮은 거지? 너무 밖에만 있어서 추운 거 아냐?”
성문은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윤수는 혼자 대화하고 있었다.
“난 다른 것보다 네가 다치지 않는 게 제일 좋아. 왜냐면,”
홱 윤수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성문은 깜짝 놀라 몸을 숙였다. 윤수가 성문이 있는 곳을 주시했다. 고개를 바로 하고 입을 뗐다.
“린, 미안한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누가 있는 거 같아.”
성문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엎드린 채로 걸어가 집 쪽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뒤에서 윤수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성문은 집 왼편으로 벽을 타고 돌아 현관문 앞에 섰다.
저벅저벅저벅.
현관문을 열려고 하자 윤수가 집 옆쪽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성문은 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빠르게 뗐다. 지금 문을 열고 닫으면 들킬게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집 뒤편으로 돌아갔다. 안방이 있는 창문 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그 사이 윤수가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성문은 창문 방충만을 열고 점프를 했다. 신발을 신은 채로 안방에 착지를 해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벌컥.
동시에 윤수가 안방 문을 열었다. 성문은 이불 밖에 얼굴만을 내놓은 채 자는 척을 했다.
“아빠.”
윤수가 성문을 불렀다.
“아빠 왜 여기 있어요?”
“......”
성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윤수가 문지방을 넘어왔다.
“아빠 자요?”
성문은 마치 뱀이 문지방을 타고 기어들어오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번뜩 눈을 떴다.
“윤수니?”
윤수의 걸음이 멈췄다.
“아빠, 왜 방문이 안 잠겨 있어요? 아까는 잠겨 있었는데.”
“응? 뭐라고?”
“왜 안 잠겨 있냐고요. 이문?”
“아까 화장실 다녀왔어. 안 자고 뭐 하니?”
“아녜요.”
뒤돌아서는 윤수였다. 성문이 쳐다보고 있자 멈칫 서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성문은 괜히 빠르게 눈을 감았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는 안방 문이었다.
***
그날 아침. 성문은 잠에서 깨 거실로 나왔다. 다락방을 올려다보며 윤수가 자고 있는 걸 확인했다. 어제 신었던 신발을 제자리에 놓았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신발을 다시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금 신발을 여기에 놓았다가 윤수가 눈치챌까 싶어서였다. 새벽에 보이지 않았던 신발이 아침에 덩그러니 나타난다면, 그를 쫓아갔다는 걸 시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성문은 화장실 문을 잠근 뒤, 신발에 물을 부어 솔로 닦았다. 신발을 빨았기 때문에 새벽에 신발이 없었던 것이라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신발을 베란다 한편에 둔 뒤, 이번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었다. 안방에 신발을 신고 누워서 온통 흙더미였다. 성문은 그에 대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쓸고 닦았다. 이불도 걸레로 샅샅이 닦았다. 그렇게 일련의 흔적들을 지후고 난 후, 성문은 다시 거실에 나와 다락방을 올려다보았다. 아침 10시인데도 윤수는 웬일로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 성문은 한숨 돌린 뒤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어느새 거실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윤수였다.
“일어났니.”
성문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말했다.
“린은요?”
“응?”
“린은 아직 소식 없어요?”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아직까지 못 찾은 거 같아.”
“그래요...?”
윤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성문이 그의 표정을 살피어 물었다.
“윤수야, 만약 린이 살아 있다면 갈 수 있는 곳이 있니?”
“글쎄요.”
“짚이는 장소도 없어?”
“네.”
어제 윤수가 린과 대화를 하던 걸 보고 물은 질문이었다. 이론상이라면 린은 죽은 게 틀림없다.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죽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수는 오늘 새벽에 그녀와 대화를 했다. 이 미스터리함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배고프지. 밥 먹을래?”
“아니요.”
“어제저녁도 안 먹었잖아.”
“배고프지 않아요.”
“그럼 배고플 때 말해. 아빠는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 가시는 데요?”
“쌍둥이네 집.”
“거긴 왜요?”
“물어볼 게 있어서.”
“알겠어요. 다녀오세요.”
윤수는 말을 마치고는 터벅터벅 다락 방위로 올라갔다. 성문은 그런 윤수를 쳐다본 뒤 신발장에서 다른 신발을 꺼내 바깥으로 나갔다.
***
성문은 마을 입구에 있는 쌍둥이 집으로 향했다. 마을 주변에는 경찰이 산재해 있었다. 모두 수색조였다. 린은 이틀째 행방불명이었고, 성태는 시신 수습이 다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면서 신체가 박살 나 곳곳에 흩어졌다.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찾아야만 했다. 부모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성문은 쌍둥이 집 앞에서 쉼 호흡을 한 뒤 현관문을 두드렸다.
“어머님. 계십니까?”
아무 대답이 없자, 다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쿵쿵.
“상태 어머님 계신가요? 저 윤수 아버지입니다.”
성문은 일부로 둘째 상태 이름을 말했다. 죽은 성태의 이름을 말해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인기척이 들리더니 철컥, 현관문이 열렸다. 성문을 맞이한 사람은 상태였다.
“부모님은 안 계시니?”
“엄마는 쓰러져서 병원에 가꼬 아빠는 엄마 간호하러 갔는데예.”
“그럼 집에 너 혼자야? 어른은 안 계셔?”
“할머니 계시는데, 자고 있어요.”
상태의 얼굴엔 생기가 없었다.
“아저씨는 윤수 형 아빠야.”
“들었어요. 형사라꼬. 아저씨 우리 햄 죽인 범인 잡아주시면 안 돼요? 죄송해요. 학교에서 윤수 햄 괴롭혀서요.”
상태는 금방이라도 울먹일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성문은 ‘범인’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지만 조급해하지 않았다. 상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을 뗐다.
“그래, 아저씨가 도와줄게. 혹시 아는 거라도 있어? 성태가 낭떠러지에 떨어진 이유를 알아?”
“네, 누가 민 게 틀림없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
“성태 햄이 떨어질 때 숲에 누가 있었어요.”
“누가?”
“몰라요, 저까지 밀려고 했어요.”
예고도 없이 눈물이 타오로는 상태였다. 성문은 잠 시 준 뒤 입을 뗐다.
“어떤 모습인지 못 봤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키는 큰지 작은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못 봤어요. 따라갔는데 금세 사라졌어요.”
“혹시 지금 이야기 다른 부모님이나 경찰한테 했니?”
“아니요, 엄마는 형이 죽었다는 얘기 듣자마자 쓰러졌꼬, 아빠가 따라가서 못했어요. 그래서 할매한테만 말했어요.”
“그럼 할머니만 알고 계시는 거니?”
성문은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상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예.”
“아니라고?”
“네, 할머니는 어차피 까먹을 겁니다. 치매니까.”
“그렇구나. 그럼 결국 아무도 모르는 거네?”
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은 상태의 어깨를 양손으로 살포시 얹고 쭈그려 앉아 눈을 맞추고 말했다.
“그럼, 상태야. 그 이야기 잠시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줄래? 아저씨만 알고 있어야 몰래 범인을 잡는데 필요할 거 같아서 그래.”
“엄마한테도 말하지 마요?”
“그래. 그럴 수 있어?”
상태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떡였다. 성문은 다시 무릎을 폈다. 동시에 거실에 나와 우두거니 서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입술을 한일자로 다문채로 성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할머니? 언제 일어났어?”
상태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 채 성문을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 상태랑 같은 학교 다니는 학생, 보호자입니다.”
“우리 아한테 접근하지 마소.”
“네?”
“이 아, 우리 집 4대 독자라. 내 없었으면 우리 아 납치하려고 그랬제?”
“아닙니다, 어르신.”
“내가 모를 거 같나? 우리 큰 아 몰래 데려가 죽여 놓고, 둘째 상준이 까지 죽이려꼬?”
상태를 안으며 입을 떼는 할머니였다.
“상준아, 걱정 마라. 엄마가 우리 상준이만큼은 꼭 지킬 끼다.”
“할매, 나 아빠 아이다. 아빠 병원 갔다 아이가. 난 상태다, 상태.”
손자를 자기 아들로 착각하는 할머니였다. 아마도 큰아들을 잃은 후 가슴에 묻은 뒤, 둘째를 옥이야 금이야 키운 모양이었다.
“상태야 아저씨 갈게. 혹시라도 범인 인상착의가 떠오르면 아저씨한테 말해줄 수 있지?”
“야...”
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할머니 잘 보살펴. 갈게.”
성문은 상태와 눈을 맞춰 인사를 한 뒤 현관문을 닫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태에게 신뢰감을 형성시킨 성문이었다. 상태는 성문이 정말로 범인을 잡아주길 바라는 듯했다. 성문은 수첩에 상태와 나눈 이야기를 요약해 적었다.
다음으로 갈 곳은 기찬이네였다. 쌍둥이네 집 위쪽으로 40m 올라가면 오른편에 있었다. 가장 묻고 싶은 게 많은 곳이었다.
성문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 3분도 채 되지 않아 기찬인네 집 앞에 섰다. 현관문을 두드리자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쇼!”
벌컥 현관문이 열리더니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나왔다. 기찬이 아빠 이만구였다. 그는 며칠 동안 씻지 않았는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누구쇼?”
“안녕하세요, 기찬이 아버님 되시죠? 저 기찬이 학교 친구 윤수 아빠입니다.”
“마을 와가 한 번도 인사 안 하드만, 이제 와서 떡 돌리러 온 건 아닐 테고, 용건이나 말해보이소.”
“혹시 아드님이랑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을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기찬이랑도... 윤수랑 싸우다 다친 걸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도 듣고 싶고...”
성문의 말을 자르는 이만구였다.
“전직 형사라 카더니 수사하겠다는 기가?”
“아닙니다. 기찬이가 윤수랑도 싸우다가 다친 걸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서....”
본래 성문의 목적은 기찬이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이만구라는 남자에게 많은 질문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남자를 직접 대면하고 보니 절대로 호락호락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찬이에게 볼일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만구가 힐끗 성문의 배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박중구가 그 배때기를 칼로 쑤신 거요?”
“예 맞습니다.”
“당신이 이 마을 오기 전만 해도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했는데. 뭐 잘못했길래 죽이려고 했을 끼고?”
“제가 여러모로 중구에게 잘 못한 게 많았습니다. 지금도 중구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들어오이소.”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말했다. 그가 큰 몸뚱이를 비켜서자 드디어 안으로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고맙습니다.”
성문은 고개를 숙인 뒤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벗었다. 거실에 올라서며 고개를 들 때였다. 성문은 앞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기찬이 땀을 뻘뻘 흘리며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