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혜는 밥을 먹는 와중에도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성문 옆에 앉아 꽃받침을 하고는 연신 싱글벙글거렸다. 윤수는 아버지가 식탁의자를 왜 3개를 사다 놓았는지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마치 다혜가 앉을 수 있도록 편히를 봐준 것처럼 보였다.
“왜 그래? 밥맛이 없어?”
“아, 아뇨.”
윤수는 다혜를 쳐다보고 있다가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성문에게는 다혜가 보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어째서 다시 나타 난 건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그녀의 생각이 궁금했다.
“오늘 밖에 나가지 마.”
다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윤수는 고개를 숙인 채 계란찜을 떠먹으며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너, 거기에 가면 일을 치르게 될 거야.”
“일?”
“일?”
윤수의 말에 성문이 똑같이 반문했다. 무슨 말이냐는 뜻이었다.
“아, 아니에요.”
윤수는 말을 넘긴 뒤 다시 성문을 쳐다보고 말했다.
“아빠, 어제 먹었던 약 아직 남아있죠.”
“그래, 있어.”
“그거 먹어도 이제 소용없을 걸.”
다혜가 말했다. 윤수가 의아해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때보다 내가 더 쌔졌거든. 그러니까 지금 먹는 약으로는 날 없앨 수 없어.”
‘헛소리 하지 마.’
“사실인 걸?”
윤수는 깜짝 놀랐다. 성문을 의식해 속으로 말했는데, 다혜가 그걸 듣고는 대답했다.
“윤수야. 너 왜 그래? 밥 먹다가 자꾸 움찔움찔거리고.”
“아녜요. 그냥 몸이 좋지 않은 거 같아서...”
성문은 윤수를 의심스럽다며 쳐다보았다.
결국 윤수는 밥을 반공기나 남긴 채 식사를 마쳤다. 성문이 식탁을 치우고는 윤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먹어. 한 달치는 있으니까 앞으로 꾸준히 먹는 게 좋을 거 같아.”
성문이 항정신용제를 윤수에게 건넸다. 윤수는 망설이다가 성문이 건넨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미지근한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다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
점심을 먹고 30분 후, 윤수는 성문과 함께 집을 나왔다. 굿을 하는 현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윤수는 약 때문이 졸음이 쏟아졌다. 정신이 몽롱하고 숨이 찼다.
“아빠 너무 졸린 데요.”
“약이 세서 그런가? 예전에도 약 먹으면 이랬어?”
“네, 항상 바로 잤던 거 같아요.”
“아빠가 오늘 도재학 박사님이랑 통화할 때 물어볼게. 조금만 참아.”
“네...”
윤수는 거의 반쯤 감다시피 한 눈으로 걸었다. 성문이 윤수를 부축하며 걸었다.
약 30분간 걸었을까? 이윽고 용언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수가 쏟아지는 거센 물줄기와 함께 무당이 절벽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휘황찬란한 신복과 3색(빨강, 노랑, 초록)으로 이루어진 꽃관을 쓴 채 제사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제사상에는 유골함 항아리가 가운데에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염소 머리. 양 옆에는 촛대와 과일이 올려져 있었다. 마치 용언 폭포의 노기를 가리 앉히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장의 말과 다른 게 마을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장도 없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바라지가 성문을 안내했다.
“마을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이 아이만 있으면 됩니다.”
바라지가 윤수를 데려가려 하자, 성문이 그를 제제했다.
“뭘 하려는 겁니까!”
“어허! 썩 오지 못할까!”
고개를 홱 돌리고 소리치는 무당이었다. 입술을 쌔 빨갛게 칠하고 눈 화장까지 진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심지어 목소리도 중성적이었다.
“금방 끝날 겁니다. 별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바라지가 잠들다 시피하는 윤수를 데려갔다. 제사상 앞에 윤수를 데려다 놓았다. 윤수는 누운 채로 잠에 들었다. 바라지가 성문다리 밑에 작은 원을 그리고는 말했다.
“이곳은 우리가 신과 교감을 하는 공간입니다. 당신은 절대로 이 밖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성문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무당이 단도를 들더니 윤수 손을 들어 올렸다.
“뭘 하려는...!”
성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무당은 단도로 윤수의 손을 베었다. 손가락을 타고 흥건한 피가 새어 나왔다. 무당은 그 피를 자기 얼굴에 마구잡이로 칠했다. 대형감흥부채를 펼치고 동자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세 명의 악사들이 꽹과리와 장구, 큰 북을 치기 시작했다. 굿판을 벌였다.
성문은 왜 윤수에게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왜 이장이 나를 속였는지부터 납득이 가지 않았다.
굿놀이가 지천을 흔들었다.
무당은 부채와 방울을 바닥에 놓더니 다시 단도를 집었다. 그물망에 갇혀있는 옻닭을 집고는 목을 땄다. 제사상에 위 유골함 항아리에 닭의 피를 쭉 차고는 닭 머리는 윤수에게, 몸통은 폭포 아래로 내던졌다.
갈색 토종닭도 목을 땄다. 유골함에 닭 피를 짜낸 뒤, 머리를 윤수에게 던지고 몸통을 폭포 아래로 던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하얀 토종닭도 같은 방법을 취했다.
성문은 괴이함에 말을 잃었다. 꽹과리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큰북이 심장을 울리고 장구소리가 머리를 뒤흔들었다.
무당은 제사상 아래에 있는 청색 도자기를 들더니 윤수의 몸에 투명한 액체를 쏟아부었다.
바라지가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무당에게 건넸다. 무당은 그 횃불을 윤수의 몸에 가져다 댔다.
“지금, 뭐하는!”
성문은 깜짝 놀라 발을 띠었다가 멈췄다. 윤수를 태우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무당은 횃불로 윤수의 몸을 훑기만 할 뿐 불이 붙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닭 머리에 횃불을 붙이자 닭 머리가 활활 타올랐다. 성문은 그 장면을 보며, 세개의 닭 머리가 윤수를 중심으로 삼각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당은 횃불이 꺼지자 이번에는 제사상 위에 있는 유골함을 들었다. 소주잔 잔에 닭피를 따르더니 한잔 마신 후, 다시 잔에 닭피를 따랐다. 바라지가 그 잔을 성문에게 건넸다.
“마시세요.”
성문은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턱을 들어 올려 닭 피를 마셨다. 그리고 무당이 억지로 윤수의 입을 벌려 닭 피를 들이켜게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잔이 아니라, 항아리를 통째로 쏟아붓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어허-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바라지가 성문을 막아 세웠다.
“아니, 지금 이걸 보고만 있으라는 겁니까?!”
“애가 깨어나면 끝날테니 기다리세요.”
그때였다.
“끄아악-”
무당이 소리치며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그의 검지 손가락 한마디가 잘린 채였다. 잠깐 윤수에게 시선을 뗀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윤수가 일어서 있었다. 퉤! 하고 무당의 손가락을 제삿상에 뱉었다.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다 끝났습니다!”
무당이 윤수에게 엎드려 싹싹 빌었다.
“뭐를?”
“제가 당신의 넋을 기렸으니 그만 하십시오!”
윤수는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로 무당을 내려다봤다. 성문은 이게 무슨 조화인지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면 마지막 재물을 저 녀석으로 해도 될까?”
윤수가 성문을 가리켰다. 무당이 성문을 한번 쳐다보더니 입을 뗐다.
“이 이아이의 아버지인데 괜찮겠습니까?”
“그래서 하는 거야.”
무당은 결심 했다는 듯 입을 앙다물었다. 성문에게 다가가 입을 뗐다.
“당신이 죽어야 마을의 악재가 사라진다는데, 폭포 아래로 뛰어들거요?”
성문은 혼란스러웠다. 폭포에 뛰어들라니 얼토당토 한 소리였다.
“지금 누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까? 우리 아들이 왜 저런 겁니까?”
“당신 아들이 아냐! 신령님이시지!”
무당이 호통을 쳤다.
“빨리 결정 하시오. 죽을 거요, 말 거요? 당신이 안 죽으면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거야!”
“대체 누가 사람들을 죽인다는 말입니까!”
“아저씨, 몰라서 그래요?”
성문은 화들짝 놀랐다. 린의 목소리였다.
“아저씨, 윤수가 안 알려 줬어요?”
윤수가 한발 한발 다가오며 말했다.
“우리 엄마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죽기 싫어요? 아저씨?”
성문은 뒤로 주춤거리다, 바라지가 쳐 놓은 선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린이 성문의 발밑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 끝났네. 죽기 싫으면 죽지 마세요. 아저씨 말고도 죽어야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어 푹 쓰러지는 윤수였다.
“윤수야!”
성문이 앞으로 달려갔다. 윤수가 쓰러지자 무당도 기운을 다했는지 정신을 잃었다.
***
성문은 윤수를 엎고 집으로 데려왔다. 다행히 맥박이 뛰고 있었고 잠에 든 듯했다. 성문은 윤수를 안방에 눕힌 뒤 바로 수화기를 들어 이장에게 전화를 했다.
“성문이가.”
“선생님 어떻게 된 겁니까! 왜 무속인이 윤수한테 이러는 거예요?”
“미안하다. 내도 어쩔 수 없었다. 그 무당이 마을을 둘러보더니 니 아가 문제가 있다고 카더라.”
윤수에게 문제가 있다?
성문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굿을 할 때 윤수에게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지 똑똑히 봤기 때문이었다.
-아는 괜찮나? 다친 덴 없고?”
“지금 자고 있습니다.”
-굿은 잘 됐꼬? 뭐 잘못된 건 없제?”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집에 누가 온 거 같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놀랐을 텐데 푹 쉬고 내일 이야기하자.
“예.”
성문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현관문을 열었다. 바라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녀님께서 아버님에게 이 말을 꼭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 말이죠?”
“오늘 굿은 실패했습니다. 원혼이 너무 강하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원혼을 말하는 겁니까?”
“최근에 한 여자아이가 실종됐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요?”
“선녀님이 말씀하시길, 그 자아이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마을에 낀 마가 사라진다고 하네요.”
“저희도 찾고 싶습니다만, 폭포에 빠진 아이가 도무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물속에 수장된 것도 아닌 텐데 말이죠.”
“물이 아니라, 뭍입니다.”
“네?”
“선녀님 말씀으로는 그 아이가 뭍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꼭 잘 찾아서 장례를 치러주십시오.”
바라지가 성문에게 목례를 하고 뒤돌아섰다.
‘물이 아니라 뭍이라니?’
성문은 고개를 돌려 자고 있는 윤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