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2화 카데바(3)

by 송아론

지하 1층 영안실. 효진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입을 떼지 못했다. 영안실에 카데바를 안치시키려 할 때였다. 지수가 그 위로 뛰어들더니 카데바의 배속을 파고들었다.


“엄마, 나 안아줘.”


지수는 카데바 가슴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고양이 같은 흉내를 냈다.


“지수야! 너 왜 그래?!”


“엄마, 따뜻해? 응? 따뜻해?”


지수가 말했다. 그녀의 체중 때문에 카데바의 내장이 짓눌렸다. 결국 위와 담낭이 터져 소화된 음식물과 찌꺼기들이 녹색 액체로 흘러나왔다.


“지수야! 내려와 제발..!”


효진은 지수를 카데바에서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워 꿈쩍하지 않았다. 효진은 결국 영안실 관리실로 뛰어갔다. 상황을 보고하자 관리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영안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안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행각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바로 병원장, 조문호에게 뛰어갔다. 조문호는 다른 시설보다 유독 영안실을 끔찍이 아꼈다. 시신이 조금이라도 부패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또 그의 변태적 취향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조문호는 특히 젊은 여성이 시신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영안실에서 혼자 들어가기를 즐겨했다. 그에게 있어 영안실은 쾌락의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을 더럽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빨리 내려가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관리자의 말에 조문호는 병원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 뒤를 박교수도 함께했다.


***


지하 1층입니다.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조문호는 뱃살을 주체하지 못하며 허겁지겁 뛰었다. 이윽고 영안실 안에 들어서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펼쳐졌다. 관리자 말대로 박 교수 딸이 카데바 위에 올라탄 채였다.


“지수야 너...”


박 교수는 다리가 굳어 입만 끔뻑였다.


“뭐, 뭐, 뭐 해...! 당장 끌어내지 않고!”


조문호가 소리쳐서야 박 교수와 관리자가 지수에게 달려갔다.


두 사람은 지수의 양팔을 한쪽 씩 잡았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그녀였다. 얼굴에 피칠갑을 한 그녀가 얄상한 미소를 띠었다.


“아저씨, 우리 엄마 몸 보니까 좋았어요?”


“뭐?”


“이거 봐요. 우리 엄마 이렇게 됐는데도 좋아요?”


지수가 카데바의 심장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시선은 정확히 조문호를 향하고 있었다. 조문호는 자신의 지난 행각이 낱낱이 드러난 느낌을 받았다. 영안실에서 죽은 지 얼마 안 된 카데바의 시신을 본 뒤 황홀경에 빠졌던 나를 말이다.


그는 며칠 전 관리자가 퇴근을 하자, 홀로 열쇠를 가지고 채연서의 몸을 들여다봤다. 생전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부패된 흔적도 없었고 피부도 보드라웠다. 그는 바지를 벗고 채연서 위에 올라탔다. 냉동된 상태라 온몸이 저릿했지만, 살아있는 인간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쾌감이었다.


“아가씨, 춥지? 내가 곧 따뜻하게 해 줄게.”


조문호는 헤벌쭉 입을 벌리며 채연서 얼굴에 면상을 가까이했다.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행위를 마쳐서야 영안실을 나섰다.


조문호 동공에 지수의 얼굴이 가득 채워졌다.


“아저씨, 이리 와 봐요. 우리 엄마가 부르잖아요.”


지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으으...”


조문호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더니,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병원장님!”


관리자가 불렀지만 그는 이미 영안실을 달아난 뒤였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어가 빠르게 위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곧장 안으로 들어가 20층을 눌렀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기댄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등줄기에 돋아난 소름이 가시지 않았다. 귀밑으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딩동.


이내 20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한 발짝 오른발을 내밀자,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조문호는 중심을 잃었다. 뒤로 휘청거리며 아래로 떨어지던 엘리베이터 천장에 목이 짓눌렸다.


“으갸갸갹!”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목이 뜯긴 조문호였다. 그의 육체는 머리 없는 마네킹이 된 것처럼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모든 신경들이 고통을 느끼며 덜덜덜 거리더니 작동을 멈췄다.


그리고 그 시각, 영안실.


지수도 카데바 위에서 정신을 잃었다.


***


칠흑 같은 어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

속박되어 버린 육체.


지수는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신은 맑게 깨어 있는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정신 빼고는 모든 게 구속된 느낌이었다.


귀에서는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오전인 모양이었다. 환자에게 병원 규칙을 준수하라는 간호사의 목소리. 화재 소식을 알리는 뉴스. 그리고 병문안을 온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수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지수는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특히 바로 옆에 있는 환자의 목소리가 너무나 거슬렸다. 그녀는 지치지도 않는지 시종일관 깔깔 거리며 정신 사납게 했다. 이야깃거리도 다양했다. 소싯적에는 남자가 줄을 설정도로 잘 나갔다고 하더니, 최근에는 남편 몰래 열 살 어린 남자랑 만나고 있다며 다른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젊을 때 즐기라고 했다. 또 기회가 있을 때 잘 활용해야 한다면서, 남편에게 바람피운 걸 걸려서 두들겨 맞았는데 이참에 위약금을 받아먹겠다면서 당신들도 영악해 지라는 소리를 해댔다. 설득력도 없고 자기모순적인 이야기였다. 지수는 목소리를 보아 여자가 아마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일 거라고 여겼다.


그리고 알았으니까 제발 좀 조용히 하라며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깔깔 거리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크게 들렸다.


그렇게 고통을 감내하며 얼마간 있었을까? 지수는 번쩍 눈을 뜨고는 혼란에 휩싸였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하무인 같은 여자 때문에 고통스러워 한 자신이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병실은 고요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수는 식물인간이 깨어나면 이런 느낌일까 하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내가 혹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운이 좋게 깨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때 옆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나 좀 도와줄래?”


지수는 하마 터며 소리를 지를 뻔했다. 창백하기 이를 때 없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술이 세로로 갈라져 있었다.


“언니, 우리 엄마 좀 도와줘.”


“내가..? 어떻게..?”


“따라와.”


여자아이는 몸을 돌리더니 병실 나가 병원 복도로 향했다. 지수는 담요를 걷어내고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따라갔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던 중 흠칫, 걸음을 멈췄다. 지금 보니 아이는 맨발에다가 흠뻑 젖었는지 치마폭 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지수는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자기도 맨발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괜찮아.”


여자 아이가 고개를 돌리곤 말했다. 마치 겁에 먹은 나를 위로하듯 나긋나긋 말했다. 여자아이는 비상구를 통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수는 계단 안전 바를 잡으며 여자아이를 따라갔다. 아이는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어깨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밟는다기 보다,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따라 어둠 속으로 내려가고 또 내려가자, 지하 1층에 도달했다. 지수는 여자아이가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영안실 앞에 다다랐을 때, 잊고 있었던 기억이 깨어났다.


“엄마, 나 안아줘.”


“엄마, 따뜻해? 응? 따뜻해?”


지수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 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자신이 영안실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생생하게 떠 올랐다.


“아저씨, 우리 엄마 몸 보니까 좋았어요?”


“이거 봐요. 우리 엄마 이렇게 됐는데도 좋아요?”


지수는 카데바의 심장을 들고 병원장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수는 몸을 덜덜 떨며 복도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카데바 위에 올라가 정신 나간 짓을 했던 행동이 숨통을 조여왔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가 방금 영안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마치 유체처럼 문도 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수는 떨리는 손으로 영안실 문을 열었다. 끼익- 문짝 쇳소리와 함께 솨아아악- 영안실이 펼쳐졌다. 영안실은 안개가 그득했다. 하지만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는 순간, 안개가 아니라 한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영안실은 냉동고라 마냥 내부가 꽁꽁 언 채였다.


“도와줘요.”


“여기에 있어요.”


“살려줘요 제발!”


지수는 기이한 소리에 움찔거렸다.


쾅! 쾅!


등 뒤에서 누군가가 냉동고를 주먹으로 쳤다.


지수는 혼란스러웠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현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지 헷갈렸다.


“뭐 해! 빨리 안 열고!”


“이쪽이에요!”


지수는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사람들의 소리가 바늘로 달팽이관을 찌르는 듯했다. 너무 괴로워 두 눈을 감고 있자,


“언니, 걱정 마.”


여자아이가 자신의 손을 잡았다. 지수는 아무런 맥박과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아이의 손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철커덕. 스르륵-


냉동고 하나가 잠금장치가 풀어지더니 시신이 나왔다. 지수는 시신의 정체를 보고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실습실에서 해부를 하던, 그리고 내가 그녀 배속에 들어갔던 바로 그 여성이었다.


“부탁해 언니. 될 수 있으면 멀리... 멀리...”


그 소리와 함께 사라진 여자아이였다. 지수는 고개를 돌려 카데바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오전에 지효와 함께 실습실에 갔을 때, 배속에 있던 작은 생명체도 떠올랐다.


이 카데바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여자다. 누군가가 멋대로 이 여자를 병원에 기증한 것이다.


지수는 확신했다. 카데바를 운반구에 옮겼다. 아무도 없는 사이 그녀를 이 병원에서 떨어트려 놓기로 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1화51화 카데바(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