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1화 카데바(2)

by 송아론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카데바에서 흐르던 출혈이 멈췄다.


“너희들 모두 이 기증자에게 감사해라. 죽은 지 얼마 안 된 카데바를 해부하는 건 행운이니 말이다.”


박 교수는 카데바 앞으로가 상태를 확인했다. 병원장에게 어떻게 이 시신을 구했는지 물어볼 참이었다. 그도 지금까지 해부 수업을 출혈까지 나오는 카데바는 처음이었다.


“박지수, 앞으로. 하던 건 마저 끝내야지?”


“아... 네, 교수님.”


지수는 앞으로와 다시 메스를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망설여졌다. 지금까지 수술 참관을 하면서 출혈 장면은 질리도록 봤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시신의 출혈은 처음 봤기 때문일까? 아니면 메스로 그녀의 피부를 자를 때 느꼈던 감촉 때문일까. 지수는 마치 그녀에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일을 저지른 느낌이었다.


“뭐 하고 있나? 빨리 안 하고.”


박 교수가 말했다.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 지수는 오른쪽 흉부에서 복부로 이어지는 피부를 메스로 긋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리 바깥쪽으로 들어가 이윽고 카데바의 피부 껍데기를 갈랐다. 개복을 하자 새빨간 피가 와락 바닥에 쏟아졌다. 학생들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헐... 괜찮아 지수야..?”


효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지수의 다리와 신발에 피가 흠뻑 젖어 있었다.


“괜찮아. 교수님 다음엔 뭐 하면 돼요? 피부를 한 꺼풀 한 꺼풀 베껴서 근육을 확인할까요? 아니면 여기에 있는 내장들을 읊어볼까요?”


지수가 메스로 카데바의 장기들을 툭툭 치며 말했다. 뒤에 있는 학생들이 쟤 왜 저러냐며 소곤거렸다. 박 교수가 손가락으로 카데바의 폐를 가리켰다.


“왼쪽 폐에 용종이 3cm 있다는 가정을 하도록 하지. 본래는 내시경 수술이 적합하나, 너희들이 얼마나 정밀하게 용종을 제거할 수 있는지 확인을 해보도록 하겠다. 시작해.”


“네, 교수님.”


지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흉골 사이에 메스를 가져다 댔다. 폐조직 3cm를 떼어낸 뒤 집게손가락으로 들여 보였다. 그 모습이 괴기해 학생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다음 학생. 번갈아 가면서 용종을 제거해 보도록.”


“잠시만요, 교수님. 이거 자로 재보지 않으세요? 정확히 3cm가 맞는지 확인해 봐야죠.”


“야, 너 미쳤어? 왜 그래. 빨리 메스 넘겨.”


효진이 지수 뒤에서 작게 말했다. 지수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는 뒤에 있는 여학생에게 메스를 넘겼다. 그리고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 팔짱을 끼고는 뭐가 우스운지 싱글벙글거렸다.


그때, 사고가 일어났다.


“아악!”


여학생이 용종을 제거를 하려다 메스에 손을 베었다. 피가 수술 장갑을 뚫고 흘렀다.


“이리 와봐.”


박 교수가 여학생의 손가락 상태를 확인했다.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당장 가서 수술받아.”


“네.. 교수님.”


여학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뒤, 실습실을 박차고 나갔다.


“멍청한 년.”


지수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박 교수는 딸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던 중, 또다시 메스에 베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남학생이었다. 구멍이 뚫린 수술 장갑 사이로 시뻘건 선혈이 흘러내렸다. 툭툭 카데바의 창백한 얼굴에 떨어졌다.


“너희들 집중 안 해! 이게 뭐가 어렵다고!”


박 교수가 소리쳤다. 남학생이 들고 있던 메스를 낚아챘다. 그런데 또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박 교수가 메스에 베인 것이다.


“하여간 하나같이 다 멍청해요. 쯧쯧- ”


지수가 이죽거렸다. 박 교수는 자기 딸이 한 이야기를 정확히 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신도 상처가 깊어 보였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김효진. 네가 카데바 영안실에 안치시켜. 해부 수업은 다음에 하도록 한다.”


박 교수는 수업을 중단시켰다. 실습실을 나가며 힐끔 지수를 쳐다봤다. 지수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미소 지었다.


***


“이게 무슨 일이래.”


효진이 휴게실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해부 수업하면서 이랬던 적 한 번도 없었잖아. 그치?”


효진이 지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석류 음료를 빨고 있었다. 효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너는 그런 장면 보고도 그게 넘어가냐.”


“왜들 이렇게 멍청한 걸까.”


“뭐?”


“하나같이 다 설명을 해줘야 알아듣는 거냐구.”


“무슨 말이야 이년아. 너는 교수님 하고 애들 걱정도 안 되냐.”


지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효진을 바라봤다.


“그게 나랑 상관있는 일이야?”


“응?”


“그 멍청한 놈들이 다친 게 나랑 상관있어?”


“뭐야, 너 아까부터 왜 그래. 소름 끼치게.”


효진이 소름을 털 듯 손바닥으로 어깨를 쓸어내렸다. 지수는 다시 석류를 빨았다.


“아~ 또 실습실에 또 어떻게 가. 교수님이 나보고 카데바 영안실에 안치시키래.”


지수가 그 말을 듣자마자 휴게실을 나갔다.


“야! 너 어디가! 같이 해야지! 진짜 이러면 배신자다!”


“가자고. 카데바 안치하러.”


효진의 얼굴에 화색이 띠었다.


***


두 사람은 복장을 갖춘 뒤 실습실에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한기가 전신을 덮쳤다.


“원래 이렇게 추었나.”


효진이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출혈도 우리가 닦아야 하는 거 아냐?”


그 말을 하던 중 효진의 눈이 커졌다. 선반은 물론 바닥에 흥건했던 피들이 감쪽같이 말끔했다.


“뭐야? 깨끗하네?”


그사이 지수는 카데바 앞에 섰다. 고개를 내밀고 개복한 장기를 내려다봤다. 효진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해. 빨리 천으로 덮고 나가자.”


“잠깐, 이것 좀 볼래?”


“또 뭐? 나 속도 매스껍단 말야.”


“잠깐이면 돼.”


효진은 하는 수 없이 지수가 가리킨 장기를 내려다봤다.


“뭘 보라는 건데?”


“소장 쪽, 봐봐.”


효진은 고개를 숙이고 카데바를 내려다보았다.


“소장이 왜?”


“안 보여?


“뭐가?”


“있잖아. 애기.”


그 순간 효진은 깜짝 놀라 손바닥으로 마스크를 쓴 입을 가렸다. 인간의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태아가 있었다.


“뭐, 뭐야, 진짜 태아야?”


“응. 귀엽지?”


“뭐?”


효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수가 검지로 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나 작네.”


효진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수는 얼굴에 미소를 한껏 띤 채 겨우 4주 된 태아를 만지며 즐거워했다.


***


박 교수는 손가락을 꿰맨 뒤 병원장실로 향했다. 이번에 구한 카데바에 대해 물어볼 참이었다. 노크를 하기 전에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우렁찬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아예, 김 의원님. 덕분에 저희가 지방병원인데도 불구하고, 지원 덕분에 연명하고 있습니다. 예예. 다 김 의원님 덕분이죠. 말로만 넘어가는 거 아니냐고요?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원금 받으면 제가 꼭 의원님 몫은 드리지 않았습니까. 언제 날 한번 잡아서 골프 한 번 치시죠.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아예, 물론이죠. 캐디도 제가 물 좋고 산 좋은 애로 선별해 놓을 테니까 그냥 몸만 오십시오, 몸만.”


똑 똑.


박 교수가 노크를 했다. 보아하니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리려면 또 30분 이상은 갈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병원장 조문호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아. 의원님 죄송한데, 손님이 온 거 같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예, 감사합니다. 예~”


달그락.


“에이, 말은 진짜 더럽게 많네.”


조문호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이죽였다. 문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누구야, 들어와.”


박 교수가 문을 열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 박 교수구만. 올해도 자네 덕에 지원금을 받을 거 같아. 자그마치 80억이야. 80억.”


조문호는 풍만한 배를 내놓으며 호방하게 웃었다. 박 교수가 자리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이번에 가져 온 카데바 말입니다.”


“아, 그거. 20대 여성이라고 하던데? 어때, 해볼 맛이 나던가?”


“20대는 아니고.. 40대입니다.”


“그래? 근데 이놈의 문 차장은 뭔 몸매가 대박이라고. 칭찬을 하는 거야.”


“20대 같은 모습이기는 합니다만...”


“오, 그래?”


눈을 번쩍이는 조문호였다.


“다름이 아니라... 그 카데바 죽은 지 얼마나 된 겁니까? 실습 중에 출혈이 너무 많아서 중단했습니다.”


“출혈? 글쎄, 문 차장 그 새끼가 변태 끼가 있잖아. 어디서 좋은 카데바 하나 발견했다고 사인해 달라고 해서 했지. 뭐.”


“그렇습니까? 그럼 문 차장한테 물어보면 되겠군요.”


“됐어. 뭘 또 물어보고 그래. 자네는 다 좋은데 그 집요함이 문제야. 카데바에 문제가 있으면 다른 카데바로 하면 되지, 뭘 또 그렇게 파고드려고 하나.”


그러곤 입맛을 다시며 이어 말하는 조문호였다.


“그건 그렇고, 그 여자 몸매가 정말 괜찮던가? 이거 젊은 여자 몸 만진 지 너무 오래돼서 느낌이 없어 느낌이.”


메스로 카데바를 해부하는 시늉을 하는 조문호였다.


“아,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나?”


“압니다.”


눈치를 본 조문호가 거구의 다리를 꼬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다른 카데바 구해줘?”


“네, 실습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그럼 영안실에 안치해 둬. 이거 책상에만 앉아 있으니 좀이 쑤셔서 말야. 나도 오랜만에 실력 좀 발휘해 봐야지.”


“해부하시려고 합니까?”


“자네가 안 쓴다며? 그럼 나라도 나서야지. 그게 기증자에 대한 예의 아니겠나.”


‘미친놈.’


박 교수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 돼지 새끼가 언제 사람 구실을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조문호가 살찐 손으로 박수를 치며 입을 뗐다.


“자, 그럼 할 말은 다 끝났지?”


“네.”


박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꾸뻑 허리를 숙일 때였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병원장님!”


다급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왜 또~”


조문호가 귀찮다는 듯 묻자, 남자가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영안실 가보셔야 할 거 습니다..”


“영안실은 왜?”


“지금 박 교수 딸이.”


그는 멈칫 박 교수를 보더니 이어 말했다.


“박 교수 딸이 카데바를 가지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뭐어?”


조문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박 교수도 미간을 좁혔다. 왜 내 딸이 카데바를 가지고 소란을 피우느냐는 말이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0화50화 카데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