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주차장. 성문은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댄 뒤 시동을 껐다. 운전석에 앉은 채로 앞을 바라봤다. ‘ㄷ’ 자로 된 건물은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과 견줘도 부족함이 없는 외관을 자랑했다. 한눈에 봐도 국가보조금을 제대로 지원받고 있는 듯했다. 병원장이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방대학병원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또 뒤가 구린 병원일수록 검·경과도 유착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사고가 나도 유야무야 지나가는 것이다.
이런 병원에 무연고 사망자 처리기간을 지키지 않았다고 항의 한들 꿈적이나 할까?
성문은 병원이 눈도 깜빡이지 않을 거라는 걸 예감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붙을 붙였다. 잠시 머리를 정리했다.
최연서가 실습실에서 사라졌단 것은 곧 이미 해부가 됐다는 뜻이다. 경찰이 카데바를 찾고 있다고 하니, 아마 병원도 과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를 숨기기 위해서는 사라졌다고 둘러대는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신사적으로 최연서를 달라고 하면 병원이 순순히 응할까?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해도 콧방귀나 뀌지 않으면 다행이다. 언론에 알린다고 협박해도 막힐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현재 시간도 없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으로 인해 병원과 씨름할 여유가 없다. 결국에는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는 건데, 어떻게 해야 할까?
성문은 역시 그 방법밖에 없다며 담배를 짓이겼다. 결국 신사적으로 행동해서는 소용없다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상대보다 더 안하무인이 되어야 한다.
성문은 조수석에 있는 비닐봉지를 헤집었다. 미리 사온 소주병을 까고는 입안에 머금은 뒤 창문을 열고 내뱉었다. 그 행위를 세 번 반복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소주를 양손에 적신 뒤 얼굴과 목에 발랐다. 옷에도 소주를 적셨다. 누가 봐도 취객인 것처럼 온몸에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게 만들었다. 성문은 옷소매로 알코올 냄새를 맡은 뒤 이 정도면 됐다며 소주병을 뒷좌석에 내던졌다.
병원 관계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더 빨리 로비로 향했다. 성큼성큼 걸어가 문 앞에 있는 화분을 번쩍 들어 올려 바닥에 집어던졌다. 퍼엉- 소리와 함께 화분이 깨지며 흙더미가 쏟아졌다. 사람들이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사이코 같은 새끼들! 누가 마음대로 시신을 해부하래!”
성문은 로비 한가운데서 소리쳤다.
“빨리 시신 가져와! 빨리!!”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성문과 멀리 떨어졌다. 성문은 철근 의자를 들어 접수처 간호사들에게 던졌다. 물론 맞출 생각은 없었다. 의자가 날아오자 간호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뭐 해, 새끼들아...! 빨리 해부한 시신 가져오라고!”
“당신 누구야?!”
보안요원이 달려들었다. 성문은 그의 오른팔을 잡고는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팔을 뒤로 꺾은 뒤 완벽하게 제압했다.
“해부된 내 친구 시신 안 가져오면 이 새끼 죽여 버린다!”
보안요원은 속수무책이었다. 술에 취한 취객이라고 할 수 없는 완력이었다.
“미안합니다. 잠시만 이러고 있어 주세요.”
성문은 보안요원 귀에 대고 말했다. 동시에 엘리베이터 쪽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 친구 데리고 오라고!”
성문은 보완요원의 손을 풀고는 다시 의자를 들어 병원 관계들에게 집어던질 태세를 했다.
“지성문 씨? 맞습니까?”
“자, 잠시만요. 우리 이야기 좀 들으십시오!”
성문이 눈에 힘을 주며 입을 뗐다.
“뭘 들어? 시신이 사라졌다며. 그것도 기증도 하지 않은 시신을 너네 좆대로 해부를 해?!”
성문이 박 교수를 향해 의자를 던지려 할 때였다. 뒤에서 보안요원이 의자를 낚아챘다. 그는 의자를 바닥에 버리고는 성문을 뒤에서 제압했다.
“병원장! 병원장 데리고 와!”
“병원장은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박 교수가 말했다.
“그럼 다른 사람 불러!”
“병원장님 어제 죽었어요! 제발 그만하세요!”
혜리가 말했다. 성문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병원장이 죽다니 왜? 성문은 더는 반항하지 않은 채 그들을 바라봤다.
***
제1 회의실.
성문은 병원 관계자들과 함께 회의실로 이동했다. 박 교수, 혜리, 영안실 관리자, 그리고 채연서를 직접 인계한 문 차장이 자리에 있었다. 보안요원은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성문 뒤에 서 있었다.
“술 드시고 온 거요?”
박 교수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정신은 말짱하니 걱정 마시죠.”
“전직 형사가, 병원에서 이래도 되는 겁니까?”
문 차장이 말했다. 찢어진 눈과 바짝 마른 몸을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이래도 되냐는 건 내가 할 소리야. 당신들. 강력계 형사가 왜 강력계인지 모르나 본데, 이참에 알려 드릴까?”
성문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보안요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문 차장은 짐짓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카데바의 가족인 줄 알았는데, 형사라는 소리를 듣고는 뜨끔했다.
성문이 주먹을 쥐고 입을 뗐다.
“당신들 어떻게 채연서를 데리고 온 지부터 말해. 무연고 사망자는 시신 보존기간이 2주라는 거 몰라?”
성문은 이들을 초장에 기선제압하기로 했다. 여기서 기선제압이란,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걸 뜻했다. 주도권은 내가 질문을 하고 상대방이 대답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답 안 해?”
성문이 재차 묻자, 박 교수가 입을 뗐다.
“문 차장, 이야기하시오. 병원장님 말로는 당신이 카데바를 구해 왔다고 하던데, 어떻게 데리고 온 거요?”
“어떻게 데리고 오다니. 무연고 사망자는 특별한 절차 없이 그냥 인계받는 거 몰라서 물어?”
“소문이 사실이었군.”
“뭐야? 지금까지 몰랐다는 거야? 박 교수 나한테 덤탱이 씌우려는 거지?”
“당신이 관할하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아오?”
“나도 책임이 없어! 병원장님이 승인했으니까 데리고 온 거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슨 수로!”
“문 차장님 끝까지 회피하시네요.”
혜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민 차장님이랑 병원장님 변태적 성향으로 유명한 거 모르세요? 카데바를 절차 없이 데리고 오는 것도 그렇지만 이상한 짓거리도 한다면서요. 아니에요?”
“그... 그게 무슨...”
성문의 눈이 번뜩였다.
“...무슨 소리야? 설마 채연 서한테도 이상한 짓거리를 한 건 아니지?”
박 교수가 성문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 영안실 폐쇄 회로 티브이 봤는데, 병원장이 카데바에게 성행위를 한 게 찍혔소. 그리고 민 차장 당신도 똑같은 행위를 한 게 있고.”
“...뭐? 그게 왜..? 삭제를 안 했다고?”
“안 했습니다.”
영안실 관리자가 말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삭제를 했습니다. 병원장님의 명령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죽은 사람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워서...”
관리자가 고개를 숙였다. 문 차장은 목과 귀가 새빨개 진채로 입을 열었다.
“너 미쳤어? 삭제를 왜 안 해? 너도 공범인 거 몰라서 그래? 나 혼자 당할 거 같아?”
“미친놈!”
뻐억!
성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차장 턱에 주먹을 날렸다. 그는 칵!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성문은 멈추지 않고 문 차장 상체에 올라타 귀 싸대기를 날렸다.
“야 이 새끼야! 너 죽은 사람한테 그러고 싶어?!”
짝! 짝! 거리는 소리가 회의실 안을 울렸다. 모두 인상만을 쓸 뿐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보안요원도 마찬가지였다. 문 차장이 그만하라고 하면 할수록 성문은 강도를 더 세게 올렸다.
“왜? 괴로워? 너는 살아 있으니까 괴롭다는 말이라도 하지. 너 걔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아? 알 면은 절대 그런 짓 못...”
성문은 말을 맺지 못한 채 동작을 멈췄다. 채연서가 죽게 된 데에는 나도 책임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와 내가 무엇이 다른지 모순적이었다.
“헉... 헉... 미, 미안합니다. 그 여자에게도 미안하고...”
문 차장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성문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채연서에게 사과조차도 하지 못했다. 연서는 내가 두려운 존재라는 것만 인식한 채 세상을 떠났다. 오히려 더 증오스러운 사람은 이 자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그런데 내가 이 자를 벌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성문은 아찔했다. 마치 채연서가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스스로 죄를 뉘우쳤으니 이제 너는 깨끗한 사람이라 생각하냐고 조소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나도 다를 게 없지....”
성문은 혼잣말을 하며 문 차장에게 떨어졌다. 박 교수와 혜미는 그런 성문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성문은 사람들과 함께 영안실로 내려갔다. 폐쇄 회로 화면을 들여다본 후,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충격적인 장면이 연달아 연출되고 있었다. 첫 번째는 해부가 된 채연서였다. 그녀는 복부가 개방된 채로 누워있었다. 성문은 형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시신들을 봤지만, 이번만큼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 채연서가 죽어서 까지 욕보이게 만든 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두 번째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웬 여성 전문의가 개복된 채연서의 배 안에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저, 아이가 제 딸입니다.”
박 교수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따님이 라고요?”
“그렇습니다.”
성문은 폐쇄 회로 화면을 보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기 여념 없었다. 동시에 배속에 들어간 전문의가 입을 뻐금 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저때, 뭐라고 말한 겁니까?”
성문이 묻자, 혜미가 대답했다.
“엄마, 따뜻하냐고 말했어요. 마치 자기가 고인의 딸이라도 된 것처럼요.”
혜리는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며 팔뚝에 있는 소름을 털었다.
곧이어 화면에 박 교수와 함께 뚱뚱한 사람이 등장했다.
“저 사람이 병원장입니다.”
박 교수가 말했다. 화면은 카데바에 올라간 여성 전문의를 말리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병원장을 쳐다보며 또다시 뻐끔거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저건 뭐라고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아저씨, 우리 엄마 몸 보니까 좋았어요? 우리 엄마 이렇게 됐는데도 좋아요? 이런 말을 했어요...”
혜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허둥지둥 거리는 병원장이었다. 그가 폐쇄 회로 화면에서 사라지자 박 교수가 입을 뗐다.
“저 이후로, 병원장님이 엘리베이터에서 사고가 나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쉽게요?”
“네.”
관리실에 침묵이 돌았다. 성문은 폐쇄 회로 화면을 보면서 한 가지 확신을 하게 되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 그리고 병원에서 일어난 괴이한 일들. 이들 모두 내가 형사 생활을 하면서 접근했던 방식으로 수사를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