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제 아이가 카데바를 가지고 행방불명이 된 마지막 장면입니다.”
성문은 화면을 유심히 쳐다봤다. 전문의가 멍하니 서 있더니 채연서의 시신을 운반구에 옮기고 있었다. 성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맨발로 홀린 듯이 서 있다가 움직이는 게 꼭 윤수가 새벽에 바깥으로 나갈 때와 비슷했다.
“잠시만, 다시 뒤로 돌려보시겠습니까.”
성문의 말에 영안실 관리자가 화면을 뒤로 돌렸다. 재생을 하자,
“정지. 지금 여기 말입니다. 따님이 누구랑 대화를 하는 거 같지 않습니까?”
뒷모습이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전문의는 분명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문의의 시선이 닿는 곳은 사각지대로 폐쇄회로 화면에 잡히지 않았다.
“네, 느낌으로는 누군가를 보는 거 같군요.”
“설령 있다고 해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박 교수가 물었지만 성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확신을 했다. 저 전문의는 지금 린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소녀에게 홀려 채연서를 어디론 가로 데려간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인이 보기에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성문은 그렇게 생각을 바꾸자 추리가 편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심령 따위를 인정하기 전에는 모든 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는데, 인정하고 나니 간단했다.
린은 지금 엄마가 타인의 손에 시신이 훼손되는 걸 막고자 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엄마를 범한 병원장을 죽이고, 전문의를 통해 시신을 병원 밖으로 꺼내고 있다.
그렇다면 린은 채연서를 어디에 두려고 하는 것일까?
그녀의 입장이라면 채연서를 화장하거나 수장시키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까? 땅에 묻으면 언제 다시 파헤쳐질지 모르니까.
성문은 애꿎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다 입을 뗐다.
“혹시 근처에 화장터나 강변이 있습니까?”
“1시간 거리에 화장터랑 태화강이 있기는 한데... 혼자서 시신을 가지고 가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혜리가 말했다. 성문이 생각해도 그랬다. 시신을 가지고 장거리를 이동하기란 불가능했다. 사체낭을 택시 트렁크에 실을 수도 없을뿐더러 뒷좌석에 짊어지고 탄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박 교수가 예상을 뒤엎는 말을 했다.
“딸이 제 차를 가지고 간 거 같습니다. 딸이 사라진 직후, 제 차도 없어졌으니까요.”
“그러면 두 개조로 나눠서 수색을 해보죠.”
성문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박 교수님 하고 학생 두 분이 화장터 근처를 수색해 보십시오. 저는 태화강을 수색해 보겠습니다. 교수님 차종이랑 차량 번호를 알려주시죠.”
성문은 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박 교수에게 건넸다. 박 교수는 차량 이름과 번호를 적었다. 무쏘였고 번호는 4728이었다.
“정말 제 딸이 화장터나 태화강에 있을 것 같습니까?”
“네. 없으면 남은 곳은 한 곳입니다.”
“어디입니까?”
“저희 마을이겠죠.”
박 교수와 혜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성문은 채연서가 다시 청산마을로 이동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곳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고 자란 곳이다. 이 세 곳 중 어느 한 곳이든 발견되기를 바랐다.
***
성문은 병원 주차장으로 이동해 차량에 탑승했다. 먼저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태화강으로 이동했다.
사실 태화강에서 채연서를 찾는다는 것도 무리수나 다름없었다. 태화강은 육지를 가르는 강줄기다. 동네 호수가 아니다. 그곳에서 채연서를 찾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의가 차를 가지고 갔다면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었다. 강을 볼 필요도 없이 차량부터 찾으면 되니까.
성문은 도로를 내달렸다. 터널 두 개를 지나고 30분간을 달리자 이윽고 태화강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 보이자 핸들을 틀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웬걸 물안개가 가득했다. 성문은 서행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낚시꾼들이 보였다. 그들은 물안개 속에서 낚싯대를 던져 놓고 간격을 유지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성문은 박 교수의 차가 보이지 않자 핸들을 돌렸다. 다시 강줄기 따라 태화강을 달렸다. 이번에도 강변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보이자 핸들을 꺾어 안으로 들어갔다. 또 물안개가 가득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낚시꾼들이었다. 그들은 3m 간격으로 낚싯대를 땅에 꽂아둔 채 앉아있었다. 지금 보니 낚시꾼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비슷했다. 빨간색 조끼와 고동색 벙거지 모자를 쓴 게 복사 붙여 넣기를 한 것 같았다.
박 교수의 차가 보이지 않자 성문은 이번에도 차를 돌렸다. 그렇게 두 차례 더 강변을 진입했다. 똑같은 풍경에 똑같은 낚시꾼. 성문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표지판을 보자 같은 곳을 돌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처음에는 4명이었던 낚시꾼들이 왜 진입할 때마다 1명씩 사라지고 있는 걸까?
단순한 우연인가? 아니면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이번이 네 번째 진입. 마지막으로 남았던 낚시꾼도 사라진 채였다.
성문은 정신을 차리자며 눈에 힘을 줬다. 창문을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물안개로 인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도로로 나가기 위해 후진을 했다. 그 순간 성문은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마터면 강으로 추락할 뻔했다. 동시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앞으로만 서행했는데, 후진을 조금 했다고 강가라니.
결국 성문은 비상등을 켠 채 차에서 내렸다.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봤다. 약 스무 걸음 정도 걷고 뒤를 돌아보자,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건 깜빡이가 등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성문은 더 가다간 빛도 보이지 않겠다며 다시 차량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쿵, 하며 누군가가 성문의 차에 탑승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뒷바퀴가 세차게 회전하더니,
빠아아앙-
경적소리와 함께 차량이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 라이트가 성문의 시야를 가렸다. 성문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던졌다. 차량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 강가에 빠졌다.
성문은 놀란 얼굴로 강가로 뛰어갔다. 차량 보닛이 강에 처박혀 아래로 보글보글 잠기고 있었다.
“화를 면하셨네요.”
성문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에 웬 여자가 서 있었다.
“이걸로 죽은 걸로 치겠대요.”
성문은 여자가 폐쇄 회로 화면에서 본 그 전문의라는 걸 눈치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채연서는 어디 있어요?”
“수장됐어요. 저렇게.”
차량이 공기방울과 함께 완전히 강 속으로 잠식했다.
“이제 좋은 곳으로 갔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네요.”
“누가요? 린이요?”
지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성문은 그녀가 어떻게 린을 아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도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수가 말없이 몸을 돌리자 성문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당신 본 그 여자아이 실종된 아이입니다.”
“이름은 채린. 10살. 일주일 전에 폭포에서 떨어진 아이 맞죠?”
지수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어떻게 그걸...”
성문은 어떻게 알았는지 물으려 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며 입을 뗐다.
“지금 그 아이를 찾아야 합니다. 뭍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혹시 짐작이라도 가는 곳이 있습니까?”
지수는 성문을 흘깃 쳐다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하루라도 빨리 그 아이를 찾아야 합니다.”
이윽고 지수가 입을 열었다.
“물이 아니라 뭍. 땅속이 아니라 땅 위예요. 다리가 아니라 다리. 죽은 육체가 살아 움직이는 법은 없답니다.”
그 말과 함께 불현듯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민환은 어제저녁에 성문과 대화를 한 후,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채연서의 집에서 무속인이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새벽에 경찰서에 가 진술서를 쓴 뒤, 집으로 돌아가 눈을 붙였다. 잠이 오지 않아 몇 번이나 뒤척였다. 아내가 죽은 후로 생긴 불면증이었다.
민환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자, 거실로 나왔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소주를 병 채로 들이켰다. 동시에 박중구가 떠올랐다. 중구가 어린 시절부터 괴롭힘을 당해 상처가 있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하지만 매일 술에 절어 살다시피 한 그가 이해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미 몇십 년이나 지난 일을 가지고 저런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왜 저렇게 과거에 얽매여 사는지 답답했다. 청산마을로 이사 온 후 중구와 일체 말을 섞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술을 입에 달고 살아 자칫 잘못하다가는 나에게 화가 옮겨 붙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내가 죽고 난 뒤에 민환은 모든 게 이해가 갔다. 중구가 알코올 중독자처럼 살았던 것은 술이 없으면 도저히 이겨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환은 아내가 죽고 난 뒤에 단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이 없었다. 술이 당겨서 먹은 게 아니었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취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였다. 술에 기대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결국 민환은 오늘도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속 쓰라림을 느끼며 어두운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 의미 없는 시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보려는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민환은 그때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저 멀리 사람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민환은 잘못 봤나 싶어 창문 가까이 다가갔다. 눈을 게슴츠레 뜨며 시력을 모으자, 윤수가 느티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민환은 윤수가 왜 저기에 있는지 의아했다. 윤수는 앞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혼잣말인데 혼잣말을 하는 거 같지 않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민환은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했다가, 깜짝 놀라 상체를 수그렸다. 나도 모르게 나온 반사 신경이었다. 윤수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환은 앉은 채로 천천히 상체를 들어 느티나무 쪽을 바라봤다. 어느새 윤수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민환은 굳혔던 하체를 일으키며 한숨을 쉬었다. 순간 내가 취해서 잘못 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창문 가장자리에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윤수가 창문 옆에 선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