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님아!”
기찬은 헐레벌떡 소리가 난 쪽으로 뛰었다. 언덕 위로 올라서자 아래로 떨어진 구형석이 보였다.
“행님! 괜찮아?
절뚝이며 일어서는 구형석이었다. 몸에 묻은 흙과 낙엽을 털어냈다.
“행님!”
기찬이 소리치는 데도 구형석은 대답이 없었다. 기찬을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불만이 가득 찬 얼굴이었다. 기찬은 그가 시야에서 사라져서야 몸을 돌렸다. 다시 윤수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내키지 않았다. 윤수에게 사과를 하는 건 좋지만 찜찜한 게 있었다.
성태와 상태가 죽은 후, 기찬은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꿈 내용은 똑같았다. 쌍둥이들이 쭈그려 앉아 훌쩍이고 있으면 기찬은 그들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위로했다. 위로하는 순간 쌍둥이가 고개를 돌려 기찬에게 달려들었다. 피범벅인 얼굴로 너도 똑같이 당해 보라는 식이었다. 기찬은 도망치면서 대체 누가 성태고 상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꿈이 반복되다 보니 이윽고 눈치챘다. 온몸이 젖은 아이가 동생 상태였고, 다리 한쪽이 없는 아이가 형 성태였다. 기찬은 이들처럼 나도 죽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었다. 그리고 그 불안의 종착점은 윤수네였다.
기찬은 아직도 또렷했다. 무속인이 윤수네 집을 한참 동안 쳐다보는 모습을. 기찬은 무속인과 눈이 마주치자 딴청을 피웠다.
“꼬마야. 너 이 집에 절대로 가면 안 된다. 알았나?”
무속인이 말했다. 무속인은 화장을 시퍼렇게 한 게 꼭 죽은 사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에게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겁먹은 채로 집으로 가자 아버지는 내일 당장 윤수에게 가서 사과하라며 혼냈다. 혼자 가기에는 두려워 구형석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사과를 거절했다.
‘윤수네 집에 가도 괜찮은 걸까?’
기찬은 무속인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동시에 윤수의 집과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짙어졌다. 병원에서 윤수를 본 이후 처음 대면하는 거였다. 그때 윤수는 수술한 내 머리를 헤집었다. 끔찍한 고통이었다. 바늘로 피부를 긁는 통증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실밥을 풀지 않은 채다. 얼굴을 보자마자 또 내 머리를 쥐어뜯는 건 아닐까? 린이 죽었다고 하면서.
기찬은 아찔했다. 윤수의 집이 보이자 의도적으로 걸음을 늦췄다. 그때였다. 윤수네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나왔다. 기찬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정체는 민환이었다. 그는 앞만 보며 뛰어가고 있었다. 다급하고 듯 보였다.
덜컥.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현관문이 닫힌 채였다. 기찬은 조심스레 윤수네 현관문 앞에 섰다. 두 눈을 감고 쉼 호흡을 한 뒤 입을 뗐다.
“지윤수 있나? 나다.”
아무런 기척이 없어 손으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재차 윤수를 부르려고 할 때였다.
기찬은 섬뜩한 기분이 들어 왼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윤수가 창문을 통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찬은 억지로 미소를 띠었다.
철컥, 드르르륵-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기찬이 현관문을 쳐다본 후, 다시 창문을 보자 사라진 윤수였다. 기찬은 열린 문을 통해 고개를 배꼼 내밀어 집 안을 들여다봤다.
“들어가도 되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윤수. 사과하러 왔다. 어디 있노...”
기찬은 개미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와.”
윤수는 거실 한가운데에 서 말했다.
“들어오래도?”
“아, 아니다. 내 그냥 사과만 하려고...”
기찬은 쭈뼛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제... 미안하다. 너 괴롭힌 거... 잘못했다. 용서해도...”
기찬은 힐끔 눈을 들었다. 윤수는 꼿꼿이 선채로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받았어.”
“응?”
“니, 사과받았다고.”
기찬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사과하려면 린에게도 해야겠지?”
“린...?”
기찬이 이어 말했다.
“린은 죽었잖아...? 어떻게 사과하라는 말인교..?”
“죽었어도 못할 건 없잖아?”
맞는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노..? 여서 사과하면 되나..?”
“아니.”
윤수가 이어 말했다.
“내일 린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거기서 정식으로 사과해.”
“린이 있는 곳..?”
기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린은 실종 상태가 아닌가?
“린 경찰이 찾은 기가? 언제 찾았노?”
“내일 오후 5시에 학교 정문으로 와.”
“학교...?”
기찬은 의아했다.
“학교는 와? 거기에 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안 오겠다는 거야?”
기찬은 침을 꿀꺽 삼킨 후 입을 뗐다.
“알았다... 린한테 사과하면 다 끝나는 거제...?”
“그래.”
기찬은 윤수와 내일 보기로 약속한 후 몸을 돌렸다. 윤수는 그런 기찬을 창가에 서서 바라봤다. 이내 몸을 돌리고는 거실에 있는 전신거울 앞에 섰다.
“린, 기찬이가 사과하겠대. 괜찮지?”
윤수는 자기 얼굴을 보며 말했다.
“모든 건 네 결정에 맡길게. 나는 네가 편할 대로 했으면 좋겠어.”
“안 돼.”
뒤쪽에서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기찬이 학교에 데려가지 마. 그러면 걔 죽어.”
전신 거울로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다해가 보였다. 윤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한테 들었어. 니가 죽은 쌍둥이라며?”
“....”
“못 알아봐서 미안해. 그동안 많이 외로웠겠다. 채린이처럼.”
윤수는 다혜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런데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너를 막아야 할 거 같아서.”
“나를? 왜?”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걸 가만히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린을 방해하겠다는 말이야?”
“아니, 너를 막는 거야.”
윤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아무리 네가 친동생이라도 린을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린은 죽어서 이제 이 세상에 없어. 너도 잘 알지 않아?”
“아니, 몰라.”
“아니, 잘 알아.”
윤수는 가만히 다혜를 쳐다봤다. 히죽 입꼬리를 올리더니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너는 나에 대해서 잘 아는 거 같이 말하네?”
“늘 네 안에 있었으니까.”
“그러면 이제 사라져 줄래?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까.”
“싫어.”
“싫어?”
'덥석.'
윤수는 두 손으로 다혜의 목을 졸랐다.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어때? 이러니까 아무것도 못하겠지?”
윤수는 온 힘을 다해 다혜의 목을 쥐어짰다. 그대로 부러트릴 기세였다. 하지만 전신 거울로 보이는 윤수의 모습은 자기가 자기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말해봐... 날 어떻게 한다고...?”
윤수는 자기 목을 조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다혜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연기처럼 사라지자, 윤수는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졌다.
***
구형석은 다리를 절뚝이며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세차게 닫으며 엄한 화풀이를 했다. 발을 디디기 힘들 정도로 쩌릿한 게 단순히 접질린 게 아닌 모양이었다. 게다가 숨 쉴 때마다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구형석은 거실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 시내에서 옷가게를 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받지 않았다. 아마도 내 전화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다른 전화는 다 받으면서 어머니는 내가 전화하면 귀신같이 받지 않았다.
구형석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거실에 대짜로 뻗었다. 어머니와 멀어지기 시작한 건 그 일이 있은 직후였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과 채연서를 성폭행했다는 걸 들키면서부터였다. 어머니는 집에 있는 식기를 던지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니가 사람 새끼냐며 아버지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다. 구형석은 놀라 어머니를 말렸다. 그릇을 던지는 어머니의 팔을 잡자, 그녀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말했다.
“짐승만도 못한 새끼. 이거 안 놔?”
그건 틀림없이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니 새끼도 필요 없으니까 데리고 집을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버지는 발가벗은 채 죽고 말았다. 속옷은 린의 집에 버려둔 채였다.
충격이었다. 구형석은 알몸으로 죽은 아버지를 보며 사람이 이렇게도 추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장례식을 치르며, 어쩜 네 아버지는 죽는 것도 병신 같냐며 폭언을 했다. 구형석은 아버지의 죽음에, 어머니의 반응에, 혼란스러웠다.
어머니와 본격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어머니는 일체 자신에게 대화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미 출근한 뒤였고, 집안은 한적하기 이를 때 없었다. 여름인데도 이상하게 추울 때가 많았다.
구형석은 도시락도 자기가 스스로 쌌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온기가 가신 반찬들이 있었다. 상하기도 하고 곰팡이가 핀 것들도 있었다. 멀쩡한 것만 도시락 통에 옮겨 담고는 학교에 갔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언제나 혼자였고, 깜빡하고 잠에 들 때면 어머니는 어느새 퇴근을 하고 안방 문을 잠근 채였다. 저녁에는 배가 고파 부엌으로 가면, 어머니가 먹다 남은 국이 있었다.
그때마다 구형석은 밥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꼭 마당에서 키우는 개새끼 같다고. 어머니는 때 되면 밥만 주고는 일절 교감을 하지 않는 견주와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의 시선과 분노는 모두 학교에 있는 린에게 옮겼다. 괜히 린만 보면 화풀이를 했다. 우리 가족이 파탄 난 건 다 너희 엄마 때문이라는 왜곡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이토록 괴로운데, 전혀 감정이 드러내지 않는 린을 보면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방에서 혼자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녀석은 대체, 왜, 아무리 괴롭혀도 울기는커녕 아프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을까? 오히려 나를 왜 불쌍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걸까?
구형석은 그런 린의 눈빛을 죽이려 온갖 시도를 했다. 때리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하고, 골탕도 먹였다. 하지만 린의 눈빛을 단 한 번도 꺾지 못했다.
구형석은 누운 채로 린에게 주먹을 날린 걸 떠올렸다. 린을 괴롭히긴 했어도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때린 적은 처음이었다. 발작하는 린을 보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린이 용언폭포에 떨어져 죽었다. 폭포가 마르면 수많은 시신 중에 린도 거기에 있을까? 나도 떨어져서 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까?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똑. 똑. 똑.
정박으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구형석은 몸을 일으키며 고통에 인상을 썼다. 절뚝이며 현관문을 열었다.
“...뭐고?”
구형석은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앞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