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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윤수의 증상

by 송아론

민환은 믿을 수 없었다. 온몸에 혈흔을 묻힌 채 주방에 서 있는 윤수를 보고 비현실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음식물 따위를 묻힌 거라고 생각했다. 깍두기나 김칫국물 혹은 케첩 같은...


하지만 코끝을 강타하는 피비린내는 민환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했다.


“선생님 저녁 안 드셨죠?


윤수는 히죽 웃으며 밥솥 뚜껑을 열었다. 밥그릇에 공기 밥 두 그릇을 푸더니 국을 데웠다. 하지만 밥솥에는 밥이 없었고, 냄비에도 국이 없었다. 오늘 아침에 윤수가 이상 증상을 보이며 모두 먹어치운 뒤였다. 그런데 윤수는 태연하게 밥이 있고 국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냉장고에서도 반찬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민환은 그런 윤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수야... 어떻게 된 거야... 그 옷은 뭐고...?”


“아, 이거요? 어때요? 아버지와 선생님의 합작품인데.”


“합작품?”


“네.”


“누굴 때리거나 그런 건 아니지...?”


윤수가 민환을 쏘아봤다.


“선생님.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그런 건 구형석 같은 쓰레기나 하는 짓이죠.”


“그럼.. 왜 옷에 피가 묻어 있는 거야. 응?”


“그걸 꼭 말해야 알겠어요? 추리 좀 해봐요.”


“...하아”


민환은 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사이 윤수는 반찬을 손으로 짚어먹기 시작했다. 민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윤수야.... 제발....”


“추리가 안 되는 거 같으니까 말해줄게요. 구형석 이거 그 새끼 피예요.”


“형석이를...? 왜?”


민환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윤수가 고개를 절레절레거렸다.


“이유까지 말해줘야 하는 거예요? 담임이라는 사람이 몰라도 그렇게 몰라서야.”


“설마, 형석이가 린을 때려서 그런 거야...?”


“그렇다면, 어쩌실 건데요? 왜요? 아쉬워요? 린이 그렇게 맞을 때는 본체도 안 하더니?”


“너... 정말 지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그때였다.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민환은 거실 커튼을 치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구급차와 경찰차가 마을로 진입하는 게 보였다.


“너, 여기 꼼작 말고 있어.”


민환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구급차가 선 곳을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낭떠러지 아래에 마을 주민이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민환은 그 인파 사이를 헤치고 들어갔다. 들것에 누군가가 실려 나오고 있었다. 민환은 시신을 덮개로 가리기 전에 그 얼굴을 봤다. 망신창이였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몸을 보고 간신이 성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렇다고 아이로 치면 체격이 있는, 누가 봐도 형석이었다.


“최 씨는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


“가게로 전화해도 받지를 않더이다. 그래서 이장님이 직접 시내로 갔소.”


“그 여 편 내는 아가 죽었는데도 뭐 하는 겁니까.”


민환은 납득할 수 없었다. 터덜터덜 윤수의 집으로 걸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윤수는 거실에 반듯하게 누운 채로 자고 있었다.


***


민환은 성문에게 벌어진 이야기를 모두 했다. 성문은 눈앞이 캄캄했다. 모두 민환이 구형석을 보러 교도소에 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예약도 하지 않고 찾아간 바람에 면회도 하지 못했다.


“증거... 윤수가 구형석을 죽였다는 증거.. 있어?”


성문이 말했다. 민환이 왼쪽으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성문은 천천히 그쪽으로 걸었다.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피범벅이 된 윤수의 옷가지가 타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성문은 심호흡을 하며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빠르게 윤수의 옷을 펼쳐보았다. 흙더미와 혈흔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리고 발끝에 걸린 쇳덩이.


성문이 고개를 내리자 모종삽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성문은 증거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삽을 짚었다. 분명히 농사를 지을 때 썼던 삽이었고, 머리 부분에 혈흔이 범벅이었다.


“지윤수!”


성문은 옷과 모종삽을 내던진 뒤 곧바로 다락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민환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쓴웃음으로 소주를 들이켰다.


“일어나 지윤수! 네가 형석이 죽였어? 빨리 말해!”


성문은 윤수의 멱살을 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일어나! 새끼야! 네가 지금 발 뻗고 잘 때야!”


윤수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기절한 것처럼 반응이 없었다.


“시발! 이게 말이 돼?”


성문은 거실로 내려와 쉴 없이 움직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내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고? 왜? 도대체 왜!”


성문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포효했다.


민환이 실실거리며 입을 뗐다.


“윤수가 그러는데 합작품이라고 그러더라.”


“합작품?”


“그래. 너와 나의 합작품.”


성문은 강렬한 눈빛으로 민환을 쳐다보다 이내 빛을 잃고 맥없이 주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민환이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뗐다.


“사실 어제 술 먹다가 새벽에 윤수가 바깥에 있는 걸 봤어. 막 누구랑 대화를 하더라? 이상해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어. 그리고 우리 집 창가에 서서 날 노려보더라고. 처음에 꿈인가 했는데....”


“꿈 아냐.”


성문이 민화의 말을 잘랐다.


“윤수가 자다가 몽유병 환자처럼 바깥에 나간 적 여러 번 있었어. 나도 직접 본 적 있고.”


“그치? 왜 그런 거야? 언제부터 윤수가 이상해 진거야? 응?”


“린이 실종된 시점부터.”


“그럼 린이 실종되면서부터 윤수가 애들을 죽이기 시작한 거야?”


“…….”


“말해봐. 성태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 누가 밀었다며. 그것도 윤수가 그런 거야? 상태는? 스스로 자살했다며? 그것도 사실 윤수가 죽인 거 아냐?”


‘몰라!’


성문은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나도 모른다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무너져 버린 퍼즐 조각이 다시 맞춰지고 있었다.


민환이 모든 걸 포기한 듯 입을 열었다.


“어떡할 거야? 네가 형사니까 좋은 방법을 제시해 봐. 난 모르겠어...”


민환이 소주를 들이켜려 하자 성문이 말했다.


“덮어두자.”


“뭐?”


“잠시... 잠시만 덮어두자. 윤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그 답을 풀 때까지만...”


“이제 기찬이만 남았어.”


성문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다음 타깃은 기찬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윤수 잘 보고 있을 게. 너도 도와줘. 일단 린의 행방부터 알아내야 할 거 같아. 채연서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하고.”


민환은 그러고 보니 채연서에 대한 행방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타인의 괴로움에 대한 공감 언제나 그때뿐이었고, 당장 자신에게 덮친 일들이 더 크게 다가올 뿐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민환은 성문의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채연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그대로 돌아갔다. 얼마간 걷자, 멀리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성문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윤수를 감시하느라 한숨도 못 잤는지 얼굴이 퀭해 보였다. 민환은 어제 먹었던 술 때문에 속이 쓰렸다.


“왔어?”


성문이 민환을 보고 말했다.


“한숨도 못 잔 거야?”


“그래. 넌. 속은 어때?”


“괜찮아. 이제 익숙해서.”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민환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자 성문이 불을 붙여 주었다. 민환은 담배를 내뿜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평생 원수처럼 생각했던 놈과 동병상련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민환은 담배를 피우던 중, 성문의 차가 보이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입을 뗐다.


“차는?”


“어제 강물에 빠졌어.”


“왜?”


성문은 그제야 대학병원에 가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병원에서 채연서를 카데바로 썼던 일.

폐쇄 회로에서 한 전문의가 괴상한 행동을 하는 걸 목격했던 일.

병원장이 채연서를 범했다가 목이 뜯겨 잘려나간 일.

전문의가 채연서를 가지고 병원을 빠져나간 일.

그런 채연서를 찾던 중에 차량에 시동이 걸리더니 나를 향해 돌진했던 일.

전문의가 채연서를 강가에 흘려보낸 일.


짧은 시간에 일어났던 모든 것들을 설명했다. 민환은 믿기지 않는다며 성문을 쳐다봤다.


“그럼 그 전문의가 연서를 강에 버렸다는 거야?”


“버렸다기보다 수장으로 장례를 치러준 거 같아.”


“말도 안 돼... 그럼 전문의가 본 린은 뭔데? 살아 있는 거야? 죽어 있는 거야?


“죽었을 확률이 더 커.”


“만약 살이 있다면? 그래서 마을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라면?”


민환은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아냐... 원혼이 되었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린이 윤수를 숙주로 삼아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그렇지?”


연가시는 곤충의 몸에 침투한다. 잠자리나 사마귀, 딱정벌레와 같은 곤충의 몸속에 들어가 영양분을 흡수한다. 상위 포식자에게 옮겨가기 위해 일부로 숙주를 조종해 잡아먹히기도 한다. 그리고 산란기가 되면 숙주를 조종해 익사시킨다.


린이 지금 윤수를 그렇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윤수는 자기가 린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그래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을 한 뒤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번에도 구형석을 죽인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어제 민환에게 잠시 덮어두자고 말했던 거였다.


하지만 지수가 한 말이 자꾸 억지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


“찾아달라고 했어요..”


“찾아달라고요?”


“그러니까 자기도 구해달라고... 자기가 있는 위치를 알려 줄 테니, 구해달라고 했어요. 맞아요. 그렇게 말했어요.”


***


병원에서 지수와 했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린이 자기를 구해달라고 했다?


린이 윤수를 숙주로 삼았다면,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윤수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답이었다. 그래서 성문은 민환이 집으로 돌아간 뒤 도재학 박사에게 연락했다. 윤수가 보는 환시에 대해 다시 상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절박했다.


오랫동안 연결음이 간 후, 도재학이 전화를 받았다.


“박사님 접니다.”


성문은 지체 없이 말했다.


-그래요. 밤늦게 전화하는 거 보니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군요.


“네, 급히 물어볼 게 있어서요.”


-말해 보세요.


“박사님이 지난번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윤수가 보는 환시가 곧 자기 자신이라고.”


-네. 내가 나를 보호하지 못하니까 만든 가상의 인물이라고 했죠.


“그런데 그 환시라는 걸,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볼 수도 있습니까?”


-윤수가 다른 환시도 보나요?


성문은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윤수가 새벽만 되면 밖으로 나가 누군가와 대화를 합니다. 대상자는 얼마 전에 마을에서 실종된 여자아이이고요.”


-흠... 윤수가 그 아이랑 특별한 관계였나요?


“네. 친했습니다.”


도재학은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쉽게 설명해 드리죠. 형사님은 아내분이 죽은 후 아내가 눈으로 보인 적 있나요?


“없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은 노인들을 다릅니다. 배우자가 죽은 뒤에 자꾸 자기 앞에 나타난다고 하죠. 이것도 일종의 환시인데,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기력이 쇠퇴했기 때문이죠. 정신과 육체가 충격을 버텨낼 힘이 없다 보니까 그런 게 보이는 거예요. 육수도 똑같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 정신과 육체가 감당하지 못할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실종된 여자아이가 눈으로 보이는 거죠.


“그럼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제가 뭐라고 했어요? 환시가 자기 자신이라고 했죠? 그런데 윤수는 환시를 두 명이나 보고 있고요.


“네.”


-그럼 다중인격자가 되는 겁니다.


“다중인격자요..?


-다중인격자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형사님한테 이렇게 말할 겁니다. 환시가 말했다. 환시가 행동했다. 환시가 시킨 거다. 이런 언어를 씁니다. 그때가 되면 이미 늦은 거예요. 치료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성문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말은 곧 윤수는 이미 다중인격자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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