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성문은 고민이 깊어졌다. 민환에게 윤수가 다중인격자라는 걸 말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만약 윤수가 정말로 다중인격자라면 아이들을 죽인 살해범이라는 걸 시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아들이 연쇄살인범이다?
성문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윤수 말대로 정말로 합작품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만행이 돌고 돌아 수많은 사람들을 파괴시키고, 결국 내 아들을 괴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괴물을 내 손으로 잡아야 한다.
성문은 자신 없었다. 민환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제 기찬이만 남았다는 것. 그래서 대화를 하기 위해 집 앞으로 민환을 불렀다. 하지만 성문은 담배만 뻐끔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할 거야 이제? 윤수를 계속 감시만 하고 있을 거야?”
정막을 깨고 민환이 말했다. 성문은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불을 붙였다.
“함정을 파야지. 함정을 파서 윤수가 무슨 일을 꾸미는 건지 확인해야겠어.”
“어떻게?”
“기찬이를 이용하자. 아이들을 죽인 범인이 윤수든, 린이든, 어쨌든 마지막으로 남은 기찬이를 죽이려 할 테니까. 나는 윤수가 눈치채지 못하게 집에 있을게. 네가 기찬이한테 가서 이것 좀 물어봐줘.”
성문은 수첩에 있는 종이 한 장을 뜯었다. 기찬이에게 몇 가지 물어볼 질문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 적힌 것들만 물어보면 돼?”
“일단은.”
“알았어. 이따 기찬이 만난 후에 전화할게.”
“그래.”
민환은 질문지를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자 윤수는 아직도 다락방에서 자고 있었다. 성문은 안방으로 들어가 옷장 서랍을 열었다. 검은색 비닐봉지가 나왔다. 윤수가 구형석을 죽일 때 입었던 옷과 모종삽이 들어있는 봉투였다. 성문은 그것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식탁 위에 올려둔 뒤 의자에 앉았다. 윤수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약 1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다락방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윤수 일어났어?”
성문은 다락방을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지윤수. 일어났으면 내려와.”
“아빠가 올라와요.”
“뭐?”
“할 말 있으면 아빠가 올라오라고요.”
성문은 윤수의 태도에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꾹꾹 눌렀다. 의자에서 일어나자.
“아니, 제가 내려갈게요.”
이내 의도적으로 쿵. 쿵. 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윤수가 거실을 가로질러 식탁의자에 앉을 때까지 성문은 눈을 떼지 않고 쳐다봤다.
“너 이게 뭔지 알아?”
성문이 비닐봉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게 뭔데요?”
윤수는 나른한 얼굴로 물었다.
“어제, 네가 입고 있었던 옷이야.”
“그래서요?”
“어제 있었던 일 기억 안 나?”
“안 나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는데.”
성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구형석 죽은 거 알지?”
“걔가 죽었어요?”
윤수는 놀라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얼굴은 전혀 그게 아니었다.
“그래,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채 죽었다고 하더구나.”
성문이 비닐봉지 안에서 모종삽을 꺼냈다. 윤수는 가만히 그 삽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 삽으로 형석이를 죽인 거지?”
“네.”
순순히 대답해 성문은 흠칫했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고 물었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아빠는 왜 연서 아줌마한테 그런 짓을 했어요?”
“뭐?”
“말해 봐요. 제가 한 짓이 궁금하다면, 아빠부터 솔직해져야죠. 왜 아줌마를 발가벗기고 성추행한 거예요?”
“…….”
성문은 가만히 윤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얼굴에 티를 내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는 윤수를 심문하는 자리이고 당황해서는 안 된다.
“그때는 아빠가 너무나 어리석었다.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지. 연서에게 평생 사죄하면서 살 거야.”
“글쎄요, 그게 사죄가 될까요?”
“형석이는 왜 죽였냐니까?”
짐짓 성문의 음성이 올라갔다.
“아빠와 반대로 사죄를 안 해서요. 그래서 죽였어요.”
“그것도 린이 시킨 짓이야?”
“네. 린이 형석이를 죽여 달라고 했어요.”
“핑계 아니야? 네가 린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죽인 거잖아.”
성문이 말했다. 윤수는 이곳에 전학 오기 전에도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괴롭히면 곧장 나서서 막았다.
아니나 다를까 윤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성문은 윤수가 자극을 받았다는 것을 캐치했다. 더 압박했다.
“성태랑 상태도 똑같아. 린이 실종되자 네 스스로 무능하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죽였어. 맞지?”
“아닌데, 어쩌죠?”
성문은 윤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윤수도 마찬가지였다. 성문은 헷갈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가 내 아들이 맞나 싶었다. 지난번부터 느꼈지만, 다혜와 린 말고도 꼭 또 하나의 인격이 있는 것 같았다.
“좋아. 네 말대로 린이 시켜서 한 짓이라고 치자. 그럼 그 뜻은 너는 린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거야. 그렇지?”
윤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어제 아빠가 한 대학병원에 갔다. 채연서를 화장해 주려고 했는데, 병원에서 해부용 도구로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근데 그것도 모자라 연서가 돌연 사라졌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어제 자리를 비웠던 거야. 네가 린과 대화가 가능하다면 이것도 당연히 아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맞니?
윤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모른다면 아빠가 설명해 주마. 어제 그 병원에서 린을 본 전문의가 있었다. 린이 자기 엄마가 해부가 되고 있으니까 구해달라고 했대.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채연서를 영안실에서 빼냈다고 하더구나. 린이 너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니? 네가 정말로 실종된 린과 대화를 한다면 모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떠냐?”
“처음 듣네요. 그 이야기는.”
윤수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성문은 다음 공격을 했다.
“그럼 이 말도 처음 듣겠구나. 전문의가 그러길 린이 그랬다고 하더구나. 자길 구해달라고.”
윤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성문은 비닐봉지에 있는 윤수의 옷가지를 꺼내며 말했다.
“이상하지 않니? 린은 너에게 구형석을 죽이라고 시켰다는데, 왜 린은 또 자기를 구해달라고 말하고 있을까? 거기에 있는 린과 여기에 있는 린은 다른 존재인 거냐?”
윤수는 침묵을 지켰다.
“말해봐라. 린이 어째서 그 전문의에게 자길 구해달라고 한 건지. 너에게 부탁하면 되는 일이잖아. 굳이 전문의에게 부탁할 필요가 있을까?”
“......”
성문은 말을 마친 뒤 한참 동안 윤수를 쳐다봤다. 이내, 윤수가 풋- 하고 코웃음을 쳤다.
“같잖네 진짜.”
“...뭐?”
“같잖아서 말이 안 나와.”
성문은 윤수의 언어에 동요하지 않으려 애썼다. 윤수가 웃음기를 싹 지우며 입을 뗐다.
“지금 보니까, 죽여할 사람은 기찬이가 아니라 아저씨야.”
성문은 미간을 좁혔다.
“아저씨. 내가 우리 엄마 왜 죽였는지 알아요? 동네 사람들한테 엄마가 노리개가 되는 것도 싫었지만, 아저씨처럼 이제야 모든 걸 뉘우친 것처럼 구는 게 역겨워서예요.”
“.......”
“20년을 넘게 아무 생각 없이 살고는 이제야 사과하겠다고요?”
윤수가 검지를 들어 성문을 가슴을 짓눌렀다.
“누가 사과받아준대요? 아저씨는 사과할 자격도 없고, 용서받을 자격도 없어요. 그냥 뒤져야 하는 사람이지.”
성문은 목소리의 정체가 누군지 확실히 알았다. 틀림없는 린이었다.
“...연서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무슨 말을 들어도 백번이고 천 번이고 감내 하마.”
“감내는 무슨. 그냥 뒤지시라고요. 윤수 힘들게 하지 말고.”
“.......”
성문은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용언 폭포에서 굿을 할 때도 무속인이 말했다. 용언 폭포에 뛰어들어 죽으라고. 그래야 마을에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성문이 뛰어내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자, 그때도 린이 윤수의 몸에 빙의해 말했다.
***
“아저씨. 죽기 싫으면 죽지 마세요. 아저씨 말고도 죽어야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
지금 보니 정말 그대로 되고 있었다. 내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은 것일까? 윤수는 다중인격자가 아니라, 정말로 린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럼 린은 왜 전문의에게 구해달라고 한 걸까?
성문은 머리가 복잡했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있자, 윤수가 말했다.
“오늘 오후 다섯 시.”
“뭐?”
윤수가 이어 말했다.
“기찬이는 예정대로 린을 만날 거고, 린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죽을 거예요.”
갑자기 다른 인격으로 말하는 윤수였다. 성문이 다급하게 물었다.
“오늘 오후 다섯 시? 어디서 만난다는 거니?”
“......”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데?”
“뭐가요, 아빠?”
“방금 네가. 기찬이를 오후 다섯 시에 만난다고...”
“네...?”
“...?”
성문은 윤수가 또 변했다는 걸 직감했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던 그 윤수가 아니었다.
“....이건 뭐예요? 제 옷 아니에요?”
윤수가 피범벅이 된 옷가지를 보며 말했다.
“윤수야. 혹시 기억나? 네가 어제 구형석을 만났던 거?”
“형석이를요...? 제가 왜...?”
그러더니 아차 싶다며 말하는 윤수였다.
“네, 기억나요. 린이 구형석한테 가보라고...”
“정말 린이 그렇게 말했어?”
“네, 그런데...”
윤수가 기억을 더듬으며 입을 뗐다.
“그때 다혜도 있었어요. 다혜가 저보고 절대로 구형석한테 가지 말라고...”
성문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 타이밍에 또 다혜가 나오냐는 뜻이었다.
“다혜가 구형석한테 가지 말라고 했다고? 왜?”
성문은 침착함을 잃으며 물었다.
“모르겠어요... 가면 안 된다고... 네가 가는 순간 구형석이 죽는다고...”
“왜 죽는다는 거니? 그리고 넌 왜 다혜 말을 듣지 않은 거야?”
“린에게 사과를 해야 하니까요. 아이들이 모두 린에게 제대로 사과를 하지 못했으니까 구형석도 사과를 해야 하니까...”
“그래서, 어제 찾아갔다는 거야?”
“네, 다혜가 끝까지 방해했지만요.”
성문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래전에 죽은 쌍둥이 다혜가 왜 계속 윤수에게 보이는 것이며, 아까 전 나와 대화하던 또 다른 윤수의 인격은 무엇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머리 아프시죠? 아빠?”
“뭐?”
“지금 윤수가 왜 그러는지 정리가 안 되시잖아요. 제가 알려드릴까요?”
성문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윤수를 쳐다봤다. 방금까지 대화하던 윤수는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인격인 다혜가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