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니가 왜 여 온 기가?”
구형석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윤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 하나. 제사 지내나?”
“형석아... 도망쳐.”
“뭐....?”
“도망치라고 빨리...”
구형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수가 여자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니 놀리나, 지금?”
“빨리 도망치라니깐!”
그 순간이었다. 모종삽이 구형석 얼굴로 날아왔다. 고개를 돌려 가까스로 공격을 피하자 삽 끝부분에 쇄골이 찍혔다.
“악..! 니 미칫나!”
“도망가, 빨리!”
구형석은 무슨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윤수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다리를 다쳐 힘을 끝까지 쓰지 못했다. 몸으로 버틴 윤수가 모종삽으로 구형석의 등을 찍었다.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계속해서 등을 찍었다.
“으아악!”
구형석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윤수를 밀치고 가까스로 바깥으로 나왔다. 도움을 요청하려 해도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쇠골과 등에서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형석아. 어디가 너랑 대화하러 왔는데.”
뒤에서 윤수가 말했다. 이번에는 여자 목소리가 아니라 본래 그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분위기가 달랐다.
“형석아. 린한테 사과할 생각 없어?”
구형석은 절뚝이며 힘껏 앞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다리에 입은 부상 때문에 빠른 걸음이 최선이었다. 뒤에서 다시 윤수가 말했다.
“형석아, 묻잖아. 사과할 생각 없냐고?”
“마, 니 돌았나!”
구형석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윤수가 정색을 했다.
“안 되겠네.”
성큼성큼 걸어와 구형석의 머리를 낚아챘다. 그러자 맥없이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 구형석이었다.
“린한테 가서 사과하자. 그럼 살 수 있어.”
“뭐라는 기가!”
구형석이 누운 채로 주먹을 날렸다. 그대로 윤수의 얼굴에 적중했다. 하지만 돌아간 윤수의 고개가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구제불능 같은 새끼.”
“빨리 도망쳐!”
“린이 특히 널 보고 싶어 했는데.”
“빨리 일어나래도!”
구형석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윤수가 두 개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기찬이는 린한테 가서 사과하기로 했는데. 너는 그럴 생각 없는 거지?”
구형석은 그 짧은 틈을 노렸다. 윤수의 멱살을 잡고는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 팔로 힘껏 윤수의 목을 조였다. 그대로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윤수가 모종삽으로 구형석의 옆구리를 찍었다.
“아악!!”
구형석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굴렀다.
“하여간 새끼가 말을 안 들어.”
윤수가 일어선 채로 말했다. 고통에 신음을 토하는 구형석의 입에 모종삽을 박았다. 쩍 소리와 함께 구형석이 장어처럼 펄떡였다. 윤수는 굳은 얼굴로 구형석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곳으로 질질 끌고 갔다.
***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성문은 운전대 잡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지수는 차량 뒷좌석에 누워 정신을 잃은 채였다. 성문은 백미러로 지수를 쳐다봤다. 그녀가 깨어나면 여러 가지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린의 존재 유무에 대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요량이었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그 아이가 정말 귀신이 되어 활동을 하는 게 맞는지 확실히 듣고 싶었다. 그래야 수사를 할 때 현실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오직 린에게만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린이 정말로 마을에 저주를 내린 거라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었다.
성문은 대학병원에 도착한 뒤, 지수를 안고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 관계자들을 불러 그녀의 신원을 확인시켜 주고 입원을 시켰다. 홀로 지수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자, 화장터에 다녀온 박 교수와 혜미가 다급히 병실 문을 열었다.
“지수야!”
“지수를 찾은 겁니까?”
“다친 곳은 없고 지금 자고 있는 중입니다.”
성문이 누워 있는 지수 앞에서 말했다. 박 교수는 딸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운 얼굴을 했다.
“태화강에 있었던 겁니까?”
“네. 강변에 무언가에 홀린 듯 서 있더군요.”
“지수가 데려간 그 여성분은요?”
“강물에 수장됐습니다.”
“네? 그럼 지수가 그분을 강에 버렸다는 거예요?”
혜미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얼굴로 물었다. 적법한 절차도 밟지 않은 시신을 카데바로 쓴 것도 모자라 유기까지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말 그대로 수장입니다. 장례를 치렀다 생각하고 있으니까, 병원에 책임을 물을 생각도 없습니다.”
성문은 내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사연이 있는 분이군요?”
박 교수의 물음에 성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지수가 침음을 흘리며 뒤척였다.
“지수야, 괜찮아? 정신 좀 들어?”
혜미가 말했다. 지수가 미간을 좁히며 눈을 떴다.
“혜미야... 아빠....”
흐릿했던 그녀의 동공이 서서히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 몸은 어떠냐.”
“...왜 다들 여기에 있는 거예요..?”
“기억 안 나? 너 뭐 했는지 알아?”
“나...? 실습실에서 카데바를 해부하고 있었는데...?”
혜미가 박 교수를 쳐다봤다. 지수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잠시, 따님과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성문이 박 교수에게 말했다.
지수는 그제야 자기 앞에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있는 걸 발견했다.
“누구세요 이분은?”
“형사님이시다. 막 깨어나 경황이 없을 텐데,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야. 묻는 말이 성심성의껏 대답하거라.”
박 교수는 그 말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 지수는 또 명령조로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발끈하려 했으나, 자기를 보고 한껏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혜미를 보고 한결 누그러졌다.
“물어보려는 게 뭐예요?”
지수는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성문은 대답 대신 품에서 사진을 꺼냈다. 린의 독사진이었다. 지수는 사진 속의 여자아이를 보고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혹시 이 아이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네... 봤어요... 분명 어제저녁에 제 옆에 있었는데.,,?”
그러고는 기억의 파노라마가 떠올랐는지 나머지 왼손으로도 입을 가렸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제가 왜 그런 짓을...?”
지수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성문은 그녀의 감정을 헤아릴 시간이 없어 다음 질문을 했다.
“왜 카데바를 들고 병원에서 나간 겁니까?”
“사진 속 이 아이가, 자기를 도와 달라고 했어요.”
“왜 당신에게 그런 말을 했죠?”
“몰라요... 그냥 갑자기 나타나 부탁했어요...”
“그 카데바가 이 아이 엄마인 건 알았습니까?”
“네? 엄마요?”
지수는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 카데바가 이 아이 엄마입니다.”
성문이 재차 말하자 지수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에 카데바를 버린 게 맞습니까?
“네... 강에 흘려보내달라고...”
“이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는 말이죠?”
“네...”
지수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부탁을 들어준 거지만 멋대로 시신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성문이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뗐다.
“시신을 강에 흘려보낸 건 잘한 일입니다. 아마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그 일을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지수가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문제는 이 아이입니다.”
“네?”
지수가 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에게 도움을 청한 여자 아이는 실종된 상태입니다.”
“실종이요?”
“네. 일주일 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죽은 결로 봐도 무방하죠.”
“말도 안 돼...”
지수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했다. 카데바를 차에 싣고 태화강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분명 소녀는 자신과 함께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핏기가 없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죽은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운전을 하면 뒷좌석에 있는 소녀와 대화까지 했다.
“넌 어디서 온 거니? 왜 이 카데바를 강에 흘려보내 달라고 하는 거야?”
“언니가 모르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언니한테는 해줄 수 없는 이야기야?”
“응. 믿기 어려운 것들이니까.”
지수는 백미러로 힐끔 사체낭을 안고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입이 두 갈래로 갈라진 언청이. 언뜻 봐도 소녀와 카데바 간에 무슨 사연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이상했다.
소녀가 아니라 내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왜 나는 맨발로 운전을 하고 있던 걸까? 왜 아무 생각 없이 카데바를 병원에서 빼돌린 걸까? 그것도 모자라 왜 소녀가 하라는 대로 강물에 카데바를 흘려보낸 걸까? 왜 그 소녀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한 걸까.
생각의 꼬리의 꼬리를 물다 보니 지수는 기억의 한 부분에 성문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혹시... 태화강에서 저와 이야기했던 사람이 형사님..?”
“기억이 다 납니까?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이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성문은 지수의 답변을 통해. 이제야 린의 존재를 확실히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린은 살아서도 초자연적인 능력을 구사했고, 죽어서도 그 능력으로 산 사람들을 홀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윤수가 말한 게 모두 진실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마을에 걸린 저주를 풀려면 한시라도 빨리 린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마지막으로 강변에서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하겠습니다.”
성문은 잠시 시간을 둔 뒤 말을 이었다.
“그때 제가 지수 씨에게 이 아이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물이 아니라 뭍에 있다. 땅속이 아니라 땅 위다. 다리가 아니라 다리다. 죽은 육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법은 없다. 기억나십니까?”
“네... 기억나요...”
지수는 한 곳을 멍하니 응시하며 대답했다.
“그 말을 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시죠.”
“그건 저도 몰라요... 전 들은 대로 전한 거니까요...”
“그럼 그 아이가 지수 씨에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겁니까?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나요?”
지수는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그리고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냥 생각나는 데로 답변해 주세요. 괜찮습니다.”
퍼즐은 자신이 맞추면 되니 아무 조각이나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병원 한 구석을 멍하니 보며 이어 말했다.
“찾아달라고 했어요..”
“찾아달라고요?”
“네. 그러니까 자기도 구해달라고...”
성문은 처음으로 의아한 얼굴을 했다.
구해 달라...? 왜...?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고 있자, 지수가 말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있는 위치를 알려 줄 테니, 구해달라고 했어요. 맞아요. 그렇게 말했어요.”
성문은 퍼즐 조각을 든 채 더는 맞추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맞췄던 조각들이 모두 틀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왜 구해달라고 하는 건가? 그렇다는 건 누가 린에게 무슨 해코지를 했다는 뜻인가? 누가? 왜? 그 아이는 이미 실종된 상태가 아닌가. 그리고 마을에 저주를 내려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그녀가 구해달라니? 그게 논리적으로 맞는 말인가?
성문은 혼돈에 휩싸였다. 앞뒤가 맞지 않고 모순적이었다.
“이야기 고맙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성문은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병실을 박차고 나왔다. 박 교수와 혜미를 보고는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강에 시신을 버린 걸 함구해 달라고 했다. 박 교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은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일단 마을로 돌아가는 게 먼저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조수석에 앉은 채 머릿속을 정리했지만, 곧바로 어질러졌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민환에게 의견을 묻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택시가 마을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둠도 깊어졌다.
성문은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택시에서 내렸다. 구급차 한 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곧이어 여러 대의 경찰차도 마을 입구를 따라 내려왔다.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걸 느꼈다. 성문은 빠른 걸음으로 걷다, 뛰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불안감도 커졌다. 제발 우려하던 일만 생기지 말라고 빌며 열쇠로 현관문을 땄다. 문을 열자 민환이 고개를 숙인 채로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 있어? 마을에 경찰이 다녀갔던데.”
“어떡하냐 성문아...”
민환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성문은 신발을 벗고 민환에게 가까이 갔다. 그제야 식탁 위에 소주병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뭐야, 술 마신 거야? 윤수는?”
성문이 다락방을 올려다보자,
“자고 있어.”
민환이 대답했다.
“무슨 일인데?”
“형석이 말이야... 오늘... 죽었어...”
“뭐? 왜?”
성문의 동공이 커졌다.
“근데 너 왜 나한테 이야기 안 했어?”
민환이 화제를 돌렸다.
“무슨 이야기?”
“내 아내가 죽기 전에 중구네 집에 갔단 거...”
성문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걸릴 것이고 그전에 말하려 했지만 너무 타이밍이 빨랐다.
“그건....”
성문이 말끝을 흐리며 핑계를 대려고 하다, 사과를 했다.
“미안해. 나도 말하고 싶었는데...”
“그래.... 또 사정이 있는 거겠지... 자, 술 한 잔 할래?”
성문은 민환의 소주잔을 받았다. 민환은 잔에 소주를 다르고는 병째로 들이켰다.
“형석이는 왜 죽은 거야? 사인이 뭐야?”
“...그게 궁금해?”
민환이 대답이 없자, 다른 질문을 했다.
“윤수는? 오늘 한 번도 안 일어났어?”
“아니.”
“그럼?”
“형석이 죽이고 자는 거야.”
“...뭐?”
성문의 입이 멈췄다. 그는 모든 세포가 경직되는 느낌을 받았다. 민환은 다시 병째로 소주를 들이켜며 거세게 병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