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은 쌀쌀하고 어두웠다. 특히 이곳은 더욱 어둠이 짙었다.
성문과 윤수는 린의 집 앞에 멈춰 섰다. 성문이 손전등으로 창호지 문을 비추자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보였다. 창문에도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아빠, 들어가도 괜찮은 거예요?”
윤수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 가보자.”
그런데 성문이 멈칫했다. 테이프를 한번 떼었다가 다시 붙인 흔적이 있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다.”
성문은 거침없이 테이프를 뜯어냈다. 창호지 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빠, 뒤에 서 있어.”
성문이 고개를 돌려 말한 뒤 다시 앞을 바라봤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지 형광등이 켜지지 않았다.
성문은 가장 먼저 채연서가 죽어 있던 자리를 손전등으로 비췄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은 채로 죽어 있던 연서. 방바닥에 부적 하나가 붙어 있었다.
“아빠, 저건 뭐예요?”
“아무래도 무속인들이 들어왔던 거 같구나.”
“왜요?”
“이 집에 안 좋은 기운이 있다고 생각나봐. 손전등 좀 비춰 볼래?”
“네.”
윤수가 부적에 손전등을 비추자, 성문이 품에서 수첩을 꺼내 부적을 똑같이 따라 그렸다. 부적은 한자가 아닌 직사각형과 삼각형, 정사각형들이 한데 어우러져 기형학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윤수가 부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가 아줌마가 죽은 자리인가 보죠?”
“그래 보이니?”
“네, 느낌이 그래요.”
“그래 맞아.”
성문은 부적을 다 그린 뒤 안 주머니에 수첩을 넣었다. 손전등을 들어 부엌에 비췄다. 싱크대 위에 있는 한 보자기를 발견했다. 채연서가 죽은 그날 사과를 하기 위해 싸던 도시락 보자기였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보자기를 놓고 나왔는데 그 물건이 싱크대 위에 있었다.
보자기는 매듭이 풀어져 있었는데, 성문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경찰들이 내용물 확인을 위해 보자기를 풀어 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창 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날 쌌던 김치 볶음과 소시지, 계란말이가 모두 비워져 있었다.
“먹었나 봐요.”
윤수가 뒤에서 말했다.
“뭐?”
“아줌마가 다 먹은 거 같다고요.”
성문은 무슨 소리냐며 윤수를 쳐다봤다.
“아빠가 도시락을 싸갔을 때, 아줌마는 이미 죽은 뒤였어. 그런데 어떻게 먹었다는 얘기야?”
“그거야 저도 모르죠.”
성문은 미간은 찌푸렸다. 난해한 이야기를 하는 윤수였다.
성문은 도시락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곳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방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구석구석 살폈지만 수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채연서가 죽었던 자리 빼고는 이상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성문이 한숨을 쉬며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윤수가 입을 뗐다.
“아빠, 물어볼 게 있어요.”
“응?”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아줌마가 어디로 간 거 같아요?”
“어디로 가다니?”
“죽은 뒤에 말이에요. 어디로 갔을 까요?”
성문은 채연서가 죽었을 때, 무연고 사망자 처리가 됐을 거라고 짐작했다. 사체를 인수할 가족이나 친척이 없어 행정기관에서 보존을 하다, 산골 하는 방식이었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그녀의 처분 방식이었다.
“그야 당연히 화장을...”
윤수가 성문의 말을 가로챘다.
“화장되지 않았어요.”
“뭐?”
“아줌마는 화장되지 않았다고요. 사람들이 또 이용을 하고 있지.”
“이용?”
성문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윤수를 바라봤다.
윤수가 성문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뗐다.
“아빠는 린 엄마가 살아 계실 때도 기회를 놓치더니 죽었을 때도 만회할 기회를 놓치시네요. 가죠.”
그 말과 함께 홱 뒤돌아서는 윤수였다. 성문은 윤수가 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또다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사람들이 이용을 한다?’
성문은 생각에 잠긴 채로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던 중, 그의 시야에 한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뒷간이었다.
집 안에는 화장실이 없어 뒷간이 따로 있었다.
“가보 시게요?”
윤수가 멈춰 선 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성문은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붙여지지 않은 뒷간을 쳐다봤다.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성큼성큼 뒷간을 향해 걸어갔다.
“열어보시면 안 되는데.”
성문은 윤수 말을 무시하고 뒷간 문을 활짝 열었다.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고는 놀라며 뒤로 넘어졌다. 성문의 머리 위로 수백 수천 마리의 파리들이 윙 거리며 날아갔다. 동시에 시체 얼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날파리들이 보였다. 시체는 목이 잘린 채로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몸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성문은 꽃관과 검지가 잘린 모습을 보고 무속인이란 것을 눈치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굿을 하던 그 사람이었다.
“지윤수! 너 알고 있었던 거야?”
성문이 다급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윤수는 어느새 쓰러진 채였다.
***
성문은 윤수를 엎고 집으로 뛰었다. 누가 무속인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사람이 저렇게 썩을 수는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황급히 집으로 들어와 윤수를 거실에 눕혔다. 수화기를 들어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떠 민환에게 전화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성문은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생각에 빠졌다. 경찰에게 알려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괜히 경찰에게 시체를 발견한 건 알렸다가, 린의 집에 무단으로 칩임 안 걸 알면 수사니, 진술서니 머리 아픈 일이 생길 게 뻔했다. 게다가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윤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다고 시신을 발견했는데 저렇게 방치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성문은 고민 끝에 수화기를 잡았다. 그래도 신고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화기를 들려고 하자, 전화벨이 울렸다. 성문은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민환이었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그였다.
***
똑똑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성문이 현관문을 열자 민환이 보였다.
“들어와.”
“윤수는?”
“자고 있어.”
성문이 다락방을 가리켰다.
“연서네서 시체가 발견됐다는 게 무슨 소리야?”
민환은 성문에게 용무가 있어 먼저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성문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윤수랑 채연서네 집에 갔는데 시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앉아서 이야기하자.”
성문이 민환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민환이 식탁 의자에 앉자 성문이 맞은편에 앉아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굿했던 거 알아?”
“알아. 내가 교장 선생님한테 추천해 준 사람이야.”
“뭐?”
예상 밖의 말이었다. 성문은 당연히 마을 이장이 무속인을 데리고 온 줄 알았다.
“내 아내가 옛날부터 점 보러 다니는 걸 좋아했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점을 보기도 했고, 여러 번 맞추기도 했고. 그리고 나도 몰랐는데 이 마을로 이사를 가기로 했을 때도 점을 한번 봤나 봐. 무속인이 절대로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대. 마을에 겁살(劫煞)이 껴있다고. 아내가 죽기 일주일 전에 나한테 그 말을 했고.”
민환이 찹찹한 얼굴을 했다. 무신론자에 미신을 믿지 않는 성문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 또한 납득할 수 없었다. 그건 굿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속인 말로는 윤수한테 흉살이 껴있다고 하던데?”
민환이 묻자 성문이 대답했다.
“굿을 하던 중에 윤수가 무속인 검지를 이빨로 뜯었어. 그리고 린 흉내를 냈고.”
“그게 무슨 말이야?”
성문은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 뒤 입을 뗐다.
“말한 대로야. 나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그게 다야. 윤수가 도중에 기절을 하면서 굿이 끝났어.”
“그런데 왜 연서네 집으로 간 거야? 시체가 발견됐다는 건 뭐고?”
“굿이 끝나고 바라지가 집에 찾아왔었어. 그리고 하는 말이 마을에 낀 마를 없애려면 실종된 린을 찾아야 한 대. 폭포에 빠져서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물이 아니라 뭍이라고 했고.”
“물이 아니라 뭍?”
“그래. 이 마을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윤수랑 연서네 가본 거야. 단서라도 있을까 해서.”
“그런데 왜 무당 시신이 발견된 거야?”
“나도 모르겠어. 내가 지금까지 봤던 살인사건이랑은 모든 결이 달라. 다 비현실적이야.”
성문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는 했어?”
“안 했어. 지금 윤수도 이상한 상태라 자리를 비우기도 불안해서.”
“내가 발견했다고 하고 조사받을 게. 그럼 돼?”
“그래 주면 고맙고.”
성문은 대답한 뒤 아차 싶다며 말했다.
“커피라도 한잔 줄까?”
“그래.”
성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포트에 물을 받았다. 물이 끓여지는 동안 자리에 앉아 입을 뗐다.
“나한테 하려고 했던 말은 뭐야?”
“연서 말이야. 나도 경황이 없어서 신경 쓰지 못했는데, 죽은 뒤에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
“무연고 사망자 처리된 걸로 알고 있는데. 가족이나 친척이 없으면 경찰이 그렇게 처리해. 나도 형사 시절에 몇 번 처리한 적 있고.”
“아니야.”
“아니라고?”
“그래. 망할 경찰들이 멋대로 해부용 도구로 보냈어.”
“무슨 말이야? 해부용 도구라니?”
“내가 오늘 경찰한테 연락했었어. 아무래도 연서 그냥 보내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직접 화장을 해주려고. 그런데 경찰들이 실습용 해부로 보내졌다고 하더라.”
성문은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연서가 살아 있는 동안 못할 짓을 한 건 마찬가지이라 면목이 없어서였다.
“그래서 해부가 됐어도 상관없으니까, 일단 시신부터 좀 다시 찾아 달라고 했는데,”
민환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고는 이어 말했다.
“실습실에서 채연서가 사라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