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는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성문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성문은 윤수를 힐끔 쳐다본 뒤 생각했다.
‘윤수가 다혜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소영은 일란성쌍둥이를 임신했다. 남자는 이름을 윤수라고 지었고, 여자는 다혜라고 지었다. 병원에서 출산을 할 때, 윤수가 먼저 세상에 나왔고 다혜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사산된 다혜를 끄집어냈다. 하마터면 소영까지 목숨을 잃을 뻔했다. 성문은 윤수라도 무사히 태어나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소영은 한동안 우울증에 빠졌다. 꿈속에서 다혜가 자신의 탯줄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의사가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마디로 의료사고라는 것이다. 성문은 소영을 위로했다. 그리고 의사에게 찾아가 자세한 소명을 부탁했다. 의사는 안경을 콧등에 얹으며 입을 뗐다.
“첫째가 나온 다음 둘째가 20분간 나오지 않았습니다. 보통 쌍둥이들이 몇 분 간격으로 나오는데, 20분간 나오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죠. 산모는 제왕절개를 원치 않았으나, 제가 진행을 하였습니다. 자칫하면 산모까지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제왕절개를 하고 보니 역시나 아이가 숨을 거둔 채였고, 아이를 꺼낸 뒤 산모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수술이 잘못됐다거나 의료사고가 있던 건 아닙니까?”
성문은 대놓고 의사에게 물었다.
“제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형사님?”
“아닙니다.”
“부인께서는 상심이 커 저를 믿지 못하실 테니 위로를 해 주시지요.”
의사는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마치 이런 일을 많이 겪어 익숙하다는 모습이었다. 성문은 의사가 한 말을 그대로 소영에게 전했다. 소영은 처음에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서서히 현실을 직시했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다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건 윤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윤수는 다혜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소영이 쌍둥이 동생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걸까?
“다 드셨어요?”
윤수가 말했다. 성문은 밥숟가락을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며 입을 뗐다.
“그래, 나갈 준비 하자꾸나.”
“네.”
윤수는 겉옷을 챙기려 다락방 위로 올라갔다. 성문도 식탁을 치운 뒤 겉옷을 입었다. 손전등 두 개를 챙긴 뒤 윤수와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그 순간 한기가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온도가 떨어져 입에서 입김이 퍼져 나왔다.
“생각보다 춥네. 옷 더 껴입고 갈래?”
“괜찮아요.”
“그럼 가자.”
성문은 윤수에게 손전등 하나를 쥐어준 뒤 발걸음을 뗐다. 야맹증이 있는 윤수의 걸음에 맞췄다. 윤수는 집에서 깨어난 뒤 한결같은 얼굴이었다.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성문은 힐끔 윤수를 쳐다본 뒤 넌지시 물었다.
“윤수야, 혹시 엄마가 너 어떻게 낳았는지 이야기한 적 있어?”
“네?”
윤수가 성문을 쳐다봤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었다. 성문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어 입을 열었다.
“사실 너 쌍둥이였어. 엄마가 그런 말 한적 없지?”
“쌍둥이요?”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저 말고 또 있었다고요?”
“그래. 원래는 여동생이 한 명 더 있었어.
윤수는 입을 떼지 못했다. 겨우 입을 열어 성문에게 물었다.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거예요?”
“엄마가 잊고 싶어 했거든. 그래서 아빠도 특별히 말하지 않은 거야.”
윤수는 엄마에게 그런 불행한 과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항상 소녀처럼 밝고 명랑해 태어날 때부터 그늘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엄마가 괴한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도 믿기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지금 그걸 말하는 이유가 뭐예요?”
윤수가 물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해야 할 일이요?”
“그래. 아빠는 눈도 뜨지 못하고 죽은 아이가 왜 네 앞에 나타난 건지 궁금하거든.”
윤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더니, 불현듯 한 아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다혜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성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죽은 네 쌍둥이 여동생. 이름이 다혜였어.”
윤수는 말도 안 된다며 걸음을 멈췄다. 성문이 그런 윤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걸음을 이끌었다.
“너도 충격이겠지만 아빠도 충격이야. 네가 병원에서 환시를 본다고 했을 때도, 아빠는 그게 다혜 일거라고 전혀 생각 못했어.”
윤수는 입을 떼지 못했다. 순간 주변시로 다혜가 풀숲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윤수는 흠칫 깜짝 놀랐다.
“왜 그래?”
“아니에요...”
이내 시선을 다시 제자리에 뒀다. 윤수는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떠올렸다. 다혜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야기 들었어. 너희 엄마가 살해당하셨다며?”
“나도, 똑같아.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
“그런데 난 항상 궁금했어. 우리 엄마가 대체 왜 죽은 건지.”
“근데, 널 보니까 이제 알겠어. 우리 엄마가 죽은 이유는 너희 엄마가 죽었기 때문이야.”
윤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불안과 공허, 외로움, 흔들림으로 인해 다혜가 탄생된 것이라고 여겼다. 다혜는 내 마음을 투영한 또 다른 ‘나’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모든 게 깨졌다.
다혜가 말했다.
“내가 말한 거 생각해 봤어? 우리 엄마가 죽은 이유가 너희 엄마가 죽었기 때문이라는 거?”
***
윤수는 그제야 다혜가 왜 내 앞에 나타났던 건지 참 의미를 알아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환시가 아니라 쌍둥이라는 것을. 숨을 거뒀지만 잊어지기는 싫다는 것을. 이게 내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나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병원에서 다혜를 환시로 취급했다. 약을 먹음으로써 그녀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 후로 다혜는 나타나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약이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다혜는 내가 고립되고 혼자일 때마다 나타났다. 어머니가 죽은 후 병원에서 외톨이가 되었을 때, 린이 죽은 후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있을 때, 다혜는 먼저 나에게 다가와 말동무가 되어주려 했다. 혼자 있는 쓸쓸함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것이 그 어떤 두려움보다도 고통스럽다는 걸 아니까.
'정말로 모든 걸 터놓고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
윤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다혜가 서 있던 풀숲을 쳐다봤다.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다혜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짙게 깔려 풀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윤수는 다시 앞을 바라보며 다짐을 했다. 다혜가 나타나면 더는 물리치지 않기로. 먼저 말을 걸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