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퀴즈. 민수가 죽이겠다고 하는 사람은 누굴까요? 민수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민수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민수의 사연을 들어보며 누굴 죽어야 하는지 맞춰보는 것도 재밌을 겁니다. 단 그러려면 민수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겠죠.
일단 민수는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유명 학원 원장이고 아버지는 명문대 교수입니다. 아래로는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민수가 교육자인 부모님에게 항상 들은 말은 ‘공부해라’ 따위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일개 중산층 부모들이나 하는 말이니까요. 엘리트 부모들은 좀 더 격식이 있고 거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민수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수야, 가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으면 올라가렴. 아래는 하등 쓸모가 없어.”
그 덕에 민수는 올라가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매년마다 학급회장을 도맡았고 초등학생 때는 전교회장도 했습니다. 수학경시대회에서 금상도 타고, 중학교 때는 전교 1등도 했죠. 하지만 우리도 알듯 진짜 싸움은 고등학생 때부터 거든요. 거기서 진짜배기가 갈리기 마련이고, 민수는 미끄덩 넘어졌답니다. 과학고에서 처음으로 평균 90점을 받은 거죠.
민수는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 초조한 얼굴로 성적표를 보여줬습니다. 아버지는 성적표를 보자마자 낙담을 했죠.
“그렇게 잘난 체하더니. 결국 이 모양이구나.”
“잘난 척 한적 없는데요.”
“성적 이야기할 때마다 의기양양했던 게 잘난 체지 뭐냐.”
어머니도 성적표를 보더니 모래 씹는 표정으로 입을 뗐습니다.
“세상에... 평균이 7점이나 떨어 진거야?”
“다시 따라잡을 수 있어요...”
“애가 지금 뭐라는 거니? 따라잡을 점수를 왜 떨어트려? 비효율적이게.”
“오빠 원래 그런 거 몰라요?”
여동생이 이어 말했습니다.
“오빠 옛날부터 그랬잖아요. 우유부단하고 늘 될 대로 되라는 식.”
“그래. 연희야, 너 말 잘했다. 조민수. 너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교 1등 하면 만족하고 그랬지? 네 앞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엄마는 항상 그게 싫었어. 너 전국에 중학교가 몇 개인 줄 알아? 어림잡아도 3천300개야. 그중에서 상위 1%라고 해도 겨우 30등이라고. 그런데 지금 고등학교 올라가 보니까 어때? 바로 실력 탄로 나지? 상위 1%는커녕 10%도 못 들었잖아. 그런데 다시 따라잡을 수 있다고? 나 참 기가 막혀서.”
아버지가 얼굴을 찌푸리며 화제를 돌렸습니다.
“이 녀석 성적 얘기는 그만하고, 연희 너는 어떻게 됐어?”
“걱정 마세요 만점이니까. 만점이 아니면 실수로 번호 표기를 잘못한 정도?”
“표기 실수를 왜 하니. 엄마가 그런 것도 가르쳐줘야 해?”
“농담이에요, 엄마. 제가 진짜로 실수를 했겠어요?”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그런 농담하지 마.”
“됐고, 그만 나갑시다. 기분만 잡쳤네.”
아버지가 오늘 저녁은 끝났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여보. 괜히 오늘 외식하자고 해서.”
“당신 탓 아냐. 내가 진작 저 녀석 정신머리를 고쳤어야 했는데.”
여동생이 민수를 쳐다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가족끼리 오랜만에 한 외식인데, 왜 분위기를 깨냐는 것이었죠.
민수의 이야기는 이렇게 엘리트 집안에서 출발합니다. 민수의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바로 멍청한 종자와 거만한 종자의 ‘태생적 차이’ 때문입니다. 엘리트가 사는 세계와 보편적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간극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민수는 이 이후로 부모님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을까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취급’이라는 단어입니다. 취급은 사물에 쓰는 단어지 인간에게는 쓰지 않거든요. 그 말은 곧, 민수는 부모님에게 인간 취급을 당하게 되었다는 뜻이죠. 무슨 인간? 바로 우리와 같은 ‘보편적 인간’.
민수는 그 후로 성적을 다시 올릴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는 인간. 동네 뒷산은 몇 번이고 정상을 꿰찰 수 있지만 험준한 산맥은 중턱도 오르지 못하는 인간. 낮은 지상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며 평생 모은 돈으로 높은 곳에서 살기를 바라는 인간. ‘보편적 인간’으로 계급이 떨어진 겁니다.
엘리트계는 보편적 인간을 보고 잉여인간이라는 다른 말을 붙이기도 하나, 이건 보편적 인간들도 서로에게 쓰는 말이라 넘어가도록 하죠.
여기까지 읽었다면, 민수가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 이해가 될까요? 그렇다면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직 민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거든요. 엘리트계에서 낙오돼 보편적 인간이 된 민수의 인생 제2막이 시작될 참입니다.
그것은 바로 거만한 종자들이 보편적 인간에게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죠.
***
보편적 인간 세계에는 ‘일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이에나처럼 몰려다니며 나약한 인간들을 괴롭히게 취미이죠. 가진 것이 없어 가진 것들을 빼앗고, 알코올 섭취, 흡연, 도둑질 등등 끊임없이 비행을 저지릅니다. 이들의 특성은 육체적 힘을 과시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엘리트계 명문 고등학교에도 이런 일진들이 존재할까요?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엘리트계는 애당초 육체적 힘을 과시하는 야만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없이 자란 보편적 인간들만 할 수 있는 ‘행위’이니까요. 말이 인간이지, 그들은 그런 존재를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만한 종자로부터 태어나면서 보편적 인간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을 가졌거든요.
바로 지적능력으로 인한 고등생물의 우수함. 빈부격차로 이한 신분 나눔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에 이르러 신분제도가 파괴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순진한 발상입니다. 만약 인간은 평등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보편적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죠. 보편적 인간 세상에는 보편적 인간의 법칙이 있고, 엘리트계에는 엘리트계의 법칙이 존재한답니다. 그래서 똑같은 죄를 지어도 전혀 다른 형벌이 나오는 것이죠. 당신은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불합리한 게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본래부터 이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로 나눠져 있으니까요. 바로 엘리트계와 보편적 인간계. 저는 이것을 거만한 종자와 멍청한 종자로 나눈 것입니다.
플라톤은 인간 계급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성이 뛰어난 인간은 철학자가 되어야 하고, 의지가 탁월한 사람은 군인이 되며, 지혜가 뛰어난 아이는 순번제로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편적 인간은?
“욕정밖에 없는 일반인은 생산 계급이 좋다.”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곧 일벌레라는 뜻입니다.
민수는 그런 엘리트계에 태어난 아이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은 아이죠. 실제로 스파르타는 엘리트에게 집단생활을 시키며 군사교육을 실시했거든요. 그 덕에 소수정예 엘리트 군사로 아테네를 멸망시킨 것이랍니다.
하지만 민수는 이제 버려졌습니다. 부모에게, 그리고 또래 학생에게.
민수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과학 동아리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그를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최민수. 너 우리 동아리 가입조건이 평균 95점이라는 거 알지?”
“너 오늘부로 우리 동아리에서 제명됐어.”
“중학교 때 전교 1등이라고 잘난 척하더니 꼴좋네. 이제부터 너는 우리 성적을 측정하는 도구일 뿐이야.”
“혹은 우리가 밟고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스테이지라던가.”
“가서 엄마한테 젖 좀 더 달라고 해라. 모유수유가 머리 돌아가는 데는 최고니까.”
“아니면 아빠한테 왜 더 좋은 정자를 주지 못했냐고 항의하던가.”
아이들은 낄낄 거리며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민수는 그때 인간의 존엄을 말살당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기말고사 때 준비를 철저히 해 기필코 아이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겨우 평균 2점이 더 올랐을 뿐이었죠.
민수가 어머니에게 성적표를 보여주자, 그녀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입을 뗐습니다.
“너, 안 되겠다. 내일부터 2시간만 자고, 나머지는 다 공부로 할애에.”
“4시간 밖에 못 자는데, 1시간을 더 줄이라고요?”
“그래서 못하겠다는 거야?”
여동생이 거실 소파에서 휴대폰을 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오빠는 원래 바뀔 생각이 없는 사람이에요.”
어머니가 민수를 째려보며 입을 뗐습니다.
“그래. 너는 항상 뭐가 그렇게 당당해?”
“당당한 적 없었는데요.”
“지금 이게 92점 받은 사람의 태도야?”
가만히 신문을 보고 있던 아버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됐어, 여보. 조민수 너, 이번 모의고사 때 점수 제대로 안 나오면 전학 갈 준비 해.”
“네? 왜요?”
“왜긴 이 녀석아. 네 실력으로는 과학고는 어림 반품 어치도 없으니까,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시키려는 거지.”
어머니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뗐습니다.
“진짜 창피하네! 너희 반 학생 원래 다 엄마 학원 다녔던 거 알지? 그런데 네가 엄마 아들이라는 거 알고 다 학원 다른 데로 옮겼어. 너 그거 왜 그런 거 같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창피해서 그런 거야. 콧대만 높아서 자기 자식들이 같은 반 학생 학원에 의지하는 게 싫어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엄마한테 이런 창피를 줘? 다른 학원 간 자식들이 성적이 더 좋으면 어쩌자는 거야.”
“걔네들은 다른 학원 다녀도 될 만큼 원래 공부를 잘했던 모양이죠.”
“네가 멍청한 거겠지!”
꽥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였죠. 그녀는 민수에게 유명강사 과외도 붙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포기하겠다는 말까지 했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민수는 모의고사를 봤습니다. 결과는 최상위가 아닌 그저 그런 상위권이었죠. 그때부터 그는 가족에게 배척받고, 학교에서도 완전한 소외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인격적 모독이죠. 학생들은 민수를 보편적 인간처럼 대우했고, 민수는 생산자 계급이 되었습니다. 두뇌가 우수한 학생들은 자신들을 고등생물이라 생각했고, 민수는 하등생물처럼 대했죠. 그것은 마치 인간과 침팬지 DNA가 약 99% 일치하지만 인간이 침팬지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단 1%의 DNA 차이가 인간과 침팬지로 가른 것이죠.
고로 1%의 엘리트들은 보편적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침팬지이자 야만인이며 하등 종족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등 족종인지도 모르고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침팬지입니다.
이제 아시겠나요? 나, 당신,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것은 1%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99%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