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이코패스 겸 정신분열자 이수입니다. 아, 조현병이라고 부르지 않느냐고요? 글쎄요, 분열된 세상을 보자면, 그 속에 연명하고 있으니 정신분열이 더 어울려 보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하늘이 참 맑네요. 몇 달 전 저를 보고 짖었던 개를 죽였던 그런 유쾌한 날입니다. 옆집 아줌마는 제가 죽인 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더군요. 저는 그녀를 위로해 준답시고 말했어요.
“아줌마, 그 개 제가 죽였어요.”
아줌마는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군요. 아주 살벌한 눈빛이었어요. 저는 적어도 개를 죽일 때 그런 눈은 하지 않았거든요.
CCTV에 제가 개의 대가리를 발로 깐 장면이 찍혔고, 전 무죄를 받았답니다. 개가 먼저 제 다리를 물었거든요. 한방에 보내자.라는 생각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죠. 정당방위를 위해서는 한 방이면 충분합니다. 자질구레하게 여러 번 때릴 필요 없어요.
CCTV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절 찍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내가 또 어떤 튀는 행동을 할까 감시하고 있죠. 뒤통수가 따가운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에요. 한 번은 여자 뒤를 걷고 있는데 방범용 CCTV가 날 찍고 있어서 돌을 던져 렌즈를 깨트린 적이 있었죠. 그날 여자도 무사히 집에 갔고, 저도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답니다.
저를 곤란하게 만드는 건 개새끼나 CCTV 뿐만은 아니에요. 불 꺼진 방에 누워 있다 보면 창문을 통해 여러 개 눈들이 저를 훑어보곤 해요. 제가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나 훔쳐보는 것이죠. 햇빛이 통하지 않게 창문에 신문을 덕지덕지 붙인 것도 모자라, 벨벳으로 된 겨울용 커튼을 쳤는 데에도 그들은 제 생사生死가 궁금한가 봐요.
그런 불쾌한 기분을 느낄 때마다 저는 상쾌해지기 위해 흰 우유를 마신답니다. 두 눈을 감고 우유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 위장에 스며들 때면 정화되는 마음을 느끼죠.
제 나이는 20살. 혈액형은 AB. 키는 172cm로 순수한 티를 벗어나지 못했답니다. 좋아하는 것은 깨끗함. 때 묻지 않은 화이트 컬러를 좋아하고, 추악한 블랙은 경멸합니다. 실크처럼 매끄러운 감촉을 좋아하나, 흉 지고 거친 것들은 뜯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목소리가 어눌하고 어깨를 한껏 움츠린 사람은 동정하지만, 성량이 크고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사람은 경추부터 으스러트리고 싶죠.
부모님은 두 분 다 살아계시며 현재 냉동실에서 동면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16살 때니까, 약 4년 전이 되겠군요. 그날 저는 전교회장에 뽑혔고, 부모님은 괴성과 고성을 지르며 서로의 추악함을 뽐내고 있었죠.
“엄마 아빠, 저 전교회장 됐어요.”
저는 싸우는 부모님 앞에서 미소를 지었답니다.
“아빠, 저 학생회장 됐다니까요. 엄마 기쁘지 않으세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머리가 도는 걸 느꼈어요. 아버지가 제 머리를 손바닥으로 후드려 팼거든요. 그때의 이수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답니다. 멀리멀리 저 우주 바깥으로 날아가고, 화이트칼라 이수가 나타나 부모님을 다물게 했습니다.
칼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물이 이리 달콤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죠. 물론 부모님도 무척 아름다웠어요. 난자된 된 모습이 그들의 정신처럼 난해 하긴 했으나, 이처럼 고요하고 정적일 수 없었죠.
7월 26일. 그러니까 그날은 혁명의 날입니다. 체 게바라가 쿠바의 혁명을 위해 무장투쟁을 시작한 날과 같죠. 다만 저와 체 게바라가 다른 점은, 그는 약 5개월 동안 전쟁을 치렀지만, 전 단 하루 만에 혁명을 완성시켰다는 겁니다.
체 게바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혁명은 무르익어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떨어트려야 하는 것이다.”
저는 부모님의 목을 손쉽게 떨어트렸습니다.
***
저녁에는 제가 특별히 치르는 의식이 있습니다. 가위를 들고 큰 방 하나. 작은 방 두 개. 거실과 욕실, 베란다를 모두 확인합니다. 저녁만 되면 자꾸만 빈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거든요. 모두 저를 괴롭히려고 하는 짓입니다. 스트레스성 불면증을 겪게 만들어 저를 미쳐버리게 만들려는 것이죠.
저는 녀석들에게 지기 싫어 웬만하면 한번 누우면 일어나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하루는 초저녁부터 시끄럽게 굴어 결국 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줬죠. 가위로 분홍색 토끼 인형의 목을 잘라버린 겁니다. 그날 녀석들은 겁을 먹었는지 하루 종일 조용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저녁마다 의식을 치릅니다. 집안 곳곳에 있는 인형들의 목을 1cm씩 자르고 잠에 듭니다. 아예 처음부터 성대를 자르는 게 편하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재미없잖아요. 저에게 도전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죠.
히틀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성理性을 제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공포와 힘이다!”
저는 시끄럽게 구는 인형들에게 공포와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세상에는 왜 이렇게 멍청한 종자들이 넘쳐나는지 모르겠어요. 멍청한 종자들 때문에 거만한 종자들이 더 활발해지고 있죠. 그러니까 거만한 종자들이 멍청한 종자들을 사육하는 게 아니라, 멍청한 종자들이 거만한 종자들이 더 거만해지도록 육성을 하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한동안 자살 사이트를 운영했답니다. 멍청한 종자들의 씨를 말려버리기 위해서요. 그들은 거만한 종자들에게 당하기만 하고, 복수나 대항 따위는 꿈도 못 꾸니 죽여 버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였죠.
몇 명을 죽였는지 묻지 말아 주세요. 이야기하면 가슴 아프니까요. 제가 아쉬운 건, 더 많이 더 멍청한 종자들을 땅에 묻지 못했다는 거예요. 사이버수사대가 아이피를 추적해 결국 사이트를 폐쇄시켰거든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들의 마지막 숨결이 느껴진답니다. 모텔에서 번개탄을 피운 뒤 기침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 모습을. 갈 때마저도 벌레처럼 꿈틀거리다, 몸에 경직이 오면서 번데기가 된 그들을. 저는 문밖에서 그들이 모두 안식을 찾을 때까지 유일하게 기다려준 구원자입니다. 껍질을 까고 필사적으로 새 삶을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에게도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은 메시아죠.
지금도 그때가 그리워요. 멍청한 종자들을 더 많이 죽였다면 거만한 종자들의 활동력이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세상은 좀 더 나아졌을 테고 저같이 자식이 부모를 깍둑 썰게 만드는 패륜 종자도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자살 사이트 얘기는 여기까지 할게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저는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 소개하고 싶어요. 모두 아실 거예요. 판도라가 제우스에게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받았는데, 그녀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상자 뚜껑을 열었다는 것을요. 상자 안에는 각종 질병과 시기, 질투, 증오, 욕심, 가난이 들어있었고 세상은 금세 혼탁해지고 말았죠. 판도라는 놀라 급히 상자 뚜껑을 닫았는데, 그때 남은 게 바로 ‘희망’이랍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사이트 ‘판도라의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온갖 고난과 역경에 피해를 입은 분들이 이곳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요. 그러니 거만한 종자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분들,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은 분들, 날개를 달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분들, 주저 말고 제 사이트에 방문해 주세요. 심연 깊숙이 뿌리내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어둠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
사람은 주저하게 되는 세 가지 순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거짓말을 할 때, 두 번째는 도전이 두려울 때, 세 번째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때입니다. 여기서 오늘 제가 건드리고자 하는 주제는 세 번째입니다. 사람들은 치부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거든요. 끙끙 속앓이를 하면서도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괜히 말했다가 열등아 취급을 받을까 조심스러운 것이죠. 그래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부모님에게 선뜻 내 상황을 알리지 못하는 겁니다. 바로 그 순간 여러분들은 멍청한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거만한 종자들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이죠. 당신이 거만한 종자들이 활개 치도록 육성시키는 거예요. 이제 알겠죠? 제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새서 다시 치부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치부를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이 이야기를 해도 될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당신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마음대로 당신을 판단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제 치부를 당신에게 드러낼 거예요. 제 이야기를 듣고 당신도 말할 준비가 되셨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자, 다시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정신과 병원에서 의사에게 사이코패스이자 정신분열을 진단받은 이수라고 합니다. 현재 정신과 약을 하루에 10알 이상 복용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항경련제, 항정신용제, 항불안제, 항우울제를 먹고 있죠. 약을 먹어도 도저히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답니다. 기억에 남는 치료는 미술치료입니다. 그림으로 내 정체성을 표현하는 거였는데, 그때 상담사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구원자이자, 메시아이자, 부처이자, 알라이자, 창조자인데, 이걸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나요?”
“그걸 하나로 합쳐 보는 건 어때요?”
“선생님은 저랑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나요?”
“네?”
“선생님도 저랑 하나로 합쳐지는 걸 상상 못 하면서, 왜 저한테는 하나로 합치라고 강요하는 거예요?”
“그런 얘기가 아니라요 이수 씨.”
“말해 봐요. 선생님은 저랑 섹스할 수 있어요?”
어떠세요? 제 정신병력에 대해 이해가 되시나요? 위 상황과 같이 저는 있는 그대로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곡이 심하고 제 입맛에 맞게 편집을 하죠. 이때 저에게 생긴 새로운 병은 '편집증'입니다. 물론 저는 이 병명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가 하는 일은 제 안에 있는 이야기를 듣기보다, 제 겉에 있는 병력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이 외에도 저는 많은 상담소와 정신과 병원을 다녀봤지만, 하나같이 무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네 번째 정신과 병원이 그랬죠. 상담이 실망스럽기 그지없어 의사에게 말했어요.
“선생님. 정신건강에 관한 강의 해보시는 거 어떠세요?”
“왜요?”
“이론을 빠삭하게 알고 계신 거 같아서요. 귀에 쏙쏙 박히거든요.”
“이수 씨. 그럼 이수 씨가 왜 잘 때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네.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외상 후 스트레스로 환청을 듣는다. 이 얘기 아닌가요?”
“맞아요.”
“그럼, 그다음은요?”
“실제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니까, 이수 씨가 스스로 노력하셔야 합니다. 그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는 인지를 하셔야 해요.”
“개소리.”
“예?”
“네? 뭐가요?”
“방금 저한테 개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환청이에요, 의사 선생님. 진짜로 들린 게 아니라고요.”
“이수 씨. 역시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군요? 벌써 세 번이나 설명했는데.”
“개소리.”
“이수 씨.”
“개소리.”
잘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모두 환청이라니. 처음으로 살해 충동을 느낀 순간이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를 진짜 죽일 생각을 한건 아니랍니다. 어쨌건 그는 멍청하지만, 결정적으로 멍청한 종자들을 병원에 가두고 있거든요. 적어도 거만한 종자가 활개를 치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선처했답니다. 다만 아쉬운 건 그는 평생 헛똑똑이로 살다가 자기가 멍청한지도 깨닫지 못하고 죽겠죠.
제가 판도라의 상자 사이트를 만들게 된 건 모두 이 헛똑똑이들 때문이랍니다. 저라면 그들보다, 저 같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사이트를 만들자마자, 며칠 후 장문의 상담 요청 글이 왔답니다. 그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어요.
[10년 전 친오빠가 아파트 계단에서 성폭행한 일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도움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