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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eric Kim Nov 14. 2019

인생을 닮은 카미노 이야기

글을 마치며


Life is not the destination, but the journey.

인생에 대한 가장 보편적이고 진부한 표현.

'인생은 목적지가 아닌 여정에 있다'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고 써먹었을 이 말을, 우리 삶에 비추어 깊이 생각해본 경험은 문장처럼 그리 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가을 소풍날 추억이 떠오른다. 아주 작은 시골 학교의 소풍 행선지는 나이 든 아버지의 딱 한곡 제대로 외워서 부를 수 있던 철 지난 유행가처럼 늘 같았다. 학교를 출발한 꼬맹이들의 종종걸음으로 30분쯤 걸으면 도착하는 얕고 작은 계곡. 6년 내내 간 곳이라 고학년쯤 되면 눈 감고도 발길이 알아서 찾아갈 수 있던 그런 곳이었지만 갈 때마다 내 마음은 늘 설레었었다. 걷는 내내 친구들과 떠는 수다를 워밍업으로, 세상에서 가장 맛난 엄마표 김밥 한 줄에 기분 좋게 배가 채워지고 나면, 그날의 클라이맥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곡 물보다 많았던 바위틈 사이사이 혹은  작은 조약돌 아래에 조심스럽게 숨겨져 있던 선물이 적힌 종이를 찾아 나서는 길. 바로 보물찾기 시간이었다. 선물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바위를 들쳐보았을 때 '아이고 들켰다' 하며 두 손 들고 항복하는 리본 모양 종이 하나를 손에 넣는 것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고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날의 행복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다시 만났다. 길에서 마주한 경험들이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과 우리의 이야기가 쓰여진 보물 종이가 길 곳곳에 숨어있었다. 그 보물들을 찾아서 하나씩 펼쳐보니 그 안에는 세대와 인종을 넘어서, 인류의 삶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 숨 쉬고 있는 미덕(Virtue)의 가치들이 손을 들고 있었다.

'드디어 나를 찾아냈구나!' 하며.


사나운 날씨를 탓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던 힘은  같은 길을 걷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따뜻한 위로와 공감에서 나왔다.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에서 비바람 거세게 맞는 날이 있음을 알게 된 후 느낀 마음의 위안은 주저앉으려던 다리를 일으켰고.

나를 스치며 지나간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만들어낸 그들의 휴먼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영광을 누렸으며, 그들의 인생철학을 배웠다.

그리고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세상을 들여다볼 새로운 눈을 얻었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잠시 방향을 잃었다거나 어둠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면, 순례길을 걸어보면 어떨지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카미노 길에는 어두운 마음을 밝혀줄 가로등과 복잡해 보이는 길을 단순하게 정리해주는 방향등이 사랑의 빛을 발산하며 당신을 부른다.

어서 와서 길을 닮은 당신의 인생을 들여다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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