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20살부터 집과 직장을 반복하는 지루한 삶을 살았지만
마음속은 언제나 다른 세상에 있었다.
결혼 전에는 친정집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결혼 후에는 엄마로 아내로 제 자리를 지켜야 했다.
이혼 후에는 돈도 벌어야 하고 살림도 살아야 하고 애들도 챙겨야 한다.
매번 큰 변화를 꿈꾸기에는 제약이 많았고 이미 포기한 채 살아왔지만
내 아이들만은 자유롭게 날게 해주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모두 해보라고 한다.
대학 재학 중 휴학해서 1~2년은 금전적으로 모두 지원해 줄 테니
가고 싶은 나라에 가서 살아보라고,
어학연수든 디자인 아카데미든 여행이든 그 무엇이든 다녀오고
머리 색도 골고루 바꿔보고 입고 싶은 것도 마음껏 입어보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놀고 싶은 것도 다 놀아보라고
그렇게 자유롭게 세상을 살아라고 큰 아이에게 얘기했다.
왜 엄마는 나에게 자유를 강요하냐는 딸의 대답에 당황했다.
가고 싶은 나라가 없데 왜 계속 가라고 하냐고..
보내고 싶은 거냐고..
맞다. 그래. 엄마가 마음만 앞서서 아직 입시 중인 걸 깜빡했네. 두고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내 인생에 풀지 못한 숙제를 자식에게 강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공부도 꽤 잘해본 적이 있고
젊을 때 돈을 꽤 잘 벌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모든 건 때가 있고
그 시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는 것이 행복이다.
하지 못했을 때 그 아쉬움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가게 된다.
오늘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를 보았다.
불확실하고 막막하지만 길을 찾고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실은 가정형편 때문에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용기가 없었을 뿐.. 어쩌면 나에게 그럴싸한 핑계가 필요했을까..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끔 숨 막히고 답답한 이 직장을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안주해 버리는 나를 본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 삶을 후회한다거나 슬퍼해하지 않는다.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니까..
다만,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살아왔던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이
회색빛으로 스며들 때
알 수 없는 아린 감정이 들곤 한다.
집 마당에는 여러 그루 나무가 있다.
햇살이 가득 집을 비추고 있지만
나무 그늘 아래 벤치가 놓여있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차를 마신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집 밖으로 걸어 나온다.
금세 확 트인 바다가 보인다.
끝없이 산책하다 심장이 터지도로 뛰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모래사장에 앉아
눈을 감고 파도소리를 듣기도 하고
지나간 옛사랑과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출근시간도 없고 퇴근시간도 없는 일상
매번 식사 준비할 필요도 없고
챙겨야 할 사람도 없는..
그저 나 혼자만의 하루가
언제쯤 시작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아이들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어제저녁에는 직장 동기모임을 했다.
편하고 즐거웠다.
내일은 언니네 집들이 약속이 있다.
다음 주에는 교육동기모임과 싱글맘 모임이 있다.
그리고 둘째 녀석 기말고사라 수학공부 챙겨주고 있다.
그다음 주에는 고등학생친구들 모임이 있다.
12월 마지막 주에는 회식이 있을 예정이다.
하루 여유 있는 날은 지인의 가게에 잠시 들러 송년회를 할 계획이다.
고등친구들과 지인 빼고는 새로운 인연들이다.
여전히 나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수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조금 나아지겠지.
올 연말은 바쁘면서도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