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눈을 뜨면 쌀부터 씻는다.
취사버튼을 누르고 도시락통을 정렬해 놓고 미리 구상한 메뉴로 요리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가 만든 밥을 먹고 자라 지겨울 법도 한데
큰 아이는 독학재수학원의 급식이 맛이 없다며 도시락 요청을 했다.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라면 좀 나았을 텐데,
편식도 있고 입도 짧은 편이라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럴 때마다 큰 아이가 컵라면 하나로 식사를 대신하겠다고 하니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큰아이의 점심과 저녁,
둘째의 저녁
그리고 나의 점심도시락
이렇게 매일 도시락 4개를 준비한다.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반복되는 메뉴지만 아이들이 커서 그런지 불평하지 않는다.
단품도시락 - 김밥, 유부초밥, 주먹밥, 오므라이스, 볶음밥, 김치볶음밥, 덮밥류, 샐러드도시락
반찬 3가지(김치, 진미채, 어묵볶음, 나물, 제육볶음, 갈비, 마라샹궈, 소불고기 등등)
나열하고 보니 많아 보이네..
요즘처럼 더운 날에 주방에서 한 시간 지지고 볶다 보면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샤워하고 출근준비하고 아이들 깨우고 챙기다 보면
2시간이 빛의 속도로 지나간다.
재수(반수?)하면서부터 큰아이가 많이 변했다.
열심히 해도 성적이 쉽사리 오르지 않아 여러 번 좌절도 겪은 듯하고
작년처럼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인 나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매일아침 알아서 일어나고 밤늦게 공부하고 오는 날이면,
동생을 불러서 같이 영어단어를 외우면서 간식도 먹고
잠시 유튜브도 보면서 잠이 든다.
나는 자주.. 습관처럼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고 얘기한다.
수능이든 입시든 그림이든 뭐든 노력해도 안 되는 신의 영역이 있으니
그것까지 스트레스받지 마라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후회 없이 하면 되는 거라고 말해준다.
수능 성적이 어느 기준 이상으로 나오면
올해는 선릉역 미술학원으로 특강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고시원 2달, 식비, 특강비까지 비용이 커서 큰 아이는 안 가겠다고 하지만
수능성적 보고 다시 얘기해 보자고 했다.
(사실 보내줄 계획이다.)
둘째는 방학 전, 기말고사를 끝내고 친구들과 PC방도 가고 노래방도 다녀왔다.
처음 있는 일이다.
본인 생각이 강하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라 친구들을 사귀지 않았다.
저 아이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겠나 한편으로 걱정이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게임을 너무 잘(?)해서 올해 들어 친구들이 많이 따르는 모양이다.
친구들이 보기엔 범접하기 힘든 등급(?) 상위 1%라고 한다.
(공부가 그러면 정말 좋을 텐데..)
성적도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국영수 성적이 그런대로 잘 나와서 한숨 돌렸다.
영어는 잘하지만 그래도 수학은 더 해야 한다.
뜬금없이 전산직 공무원이 되겠다고 하면서 수학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
작년에 공무원 신규교육을 다녀오 고난 뒤 아들에게..
내성적인 사람들은 공무원이 맞겠다고 했더니 그 말을 새겨들은 모양이다.
전자공학이든 컴공이든 수학은 필수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뭘 할지는 대학 가서 정해라고 말해주었다.
아들의 사춘기로 한때 참 많이도 울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그런가 싶어 자책감도 많았고
노력해도 반항이 점점 심해져서 잘 키울 자신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철이 들려면 반항도 하고 원망도 해야 하나 보다.
그게 수순이었던 걸까?
조금씩 말이 통하고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녀석을 보니 한시름 마음이 놓인다.
한동안 실컷 놀게 해 줬으니
오늘부터 조금씩 수학공부를 챙겨줘야겠다.
매일아침 도시락 4개의 미션이 끝나면
직장에서 바쁘면 바쁜 대로 여유 있으면 여유 있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퇴근하고 오면 아들 수학공부에 설거지까지, 그리고 잠깐의 휴식시간
그런 바쁜 일상으로 삶을 채워나간다.
몇 달 후 나의 일상은 또 많이 변할 거 같다.
그렇게 삶이 흘러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