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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물건

2018년식 엑센트

by 하루한끼

2018년식 엑센트 차량을 가지고 있다.


만 7년이 지났는데 7000킬로 조금 넘었을 뿐,

집 근처 마트나 학원 픽업 정도로만 운행했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

어디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마트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크게 쓸 일이 없다.


몇 번 장거리를 가기도 했는데 손에 꼽을 정도라

차를 팔아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얼마 전 큰아이가 코로나 증상으로 너무 아파해서

병원 데리고 갈 때 잠시 운전했더니 팔지 말자는 잠정결론을 내렸다.

팔아도 얼마 되지도 않을 거 같아서...



차를 만나기 2달 전인 2018년 3월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좋지 못한 의미로)


결혼생활 반이상이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었고

어떤 식으로든 버텨오던 한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금이 가기 시작했던 날이기도 했다.


언제가 헤어질 때를 예상이라도 한 듯

차를 사야겠다 생각이 들었고

나의 의사를 알아챈 애들 아빠는 연금담보대출을 받아 나에게 차를 선물했다.


당시엔 사죄의 의미였을 텐데,

차는 내 곁에 남고 애들 아빠는 떠났다.


반짝반짝한 새 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와 있었지만

왠지 정이 가지 않았고 어색하기만 했다.


차를 혼자 몰고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다음에야 조금 나아졌다.

출발 전 비가 많이 내렸고

4시간 내내 운전하면서도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여행지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우두두 비가 많이 쏟아질 때

차로 황급히 피신을 했을 때

순간적으로 차가 어찌나 아늑하게 느껴지던지...


2018년 10월 어느 날, 여행길에서~


휴게소에서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 들고

비 오는 거 구경하며 마실 때도 내 차가 있어 잠시나마 기뻤고 행복했다.


작년에 첫 접촉사고가 났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던 거 생각하면

지금은 나도 모르게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 중 하나이다.


가끔 무생물인 물건들에 애착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래 쓰는 물건들일 수록 더 마음이 간다.


나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낡고 오래된 우리 집 외에

두 번째로 나에게 애착이 가는 건 차량이다.


이혼 후, 혼자서 아이들을 키울 때

집과 차가 없었으면 더 힘들고 마음이 아팠을 거 같다.


덕분에 급할 때, 응급으로 아플 때 얼마나 요긴했는지

돌이켜보니 사람에게 의지하지 못했던 외로운 싱글맘의 일상에서

의지했던 존재이긴 하다.


차를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세차도 거의 하지 않고.

(너무 더러울 땐 물티슈 몇 장으로 슝슝 닦는다.)

내부에는 물건의 거의 없다.

처음 출차되었을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 마음상태랑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일상에서 덧붙이기가 싫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싫고

복잡한 관계에 얽히고 싶지도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만 유지하는 것도 버겁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열정적으로 살면 좋겠다 생각이 들면서도

몸과 마음은 이미 굳어서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길 거부하는 거 같다.


이렇듯 감정을 도려낸 채 살아가고 있다 보니

글도 예전처럼 잘 써지지 않는다.


갑자기 주말에 차를 몰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몇 번 핸들을 쓰다듬은 후

삶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며 써본다.


차 안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했다.


너 행복해?

몰라. 그런데 불행하지는 않아

그럼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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