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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 Oct 14. 2021

10월과 침묵

위드코로나


모든 나라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순서와 경중의 차이가 나라다마 다르지만 위기를 정확하게 피해간 곳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2년째 이어지는 지루하고 긴 싸움 덕분에 바이러스는 질병 뿐 아니라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바이러스는 인종, 국적, 계층, 종교, 성별을 구별 짓지 않지만 피해는 취약계층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사람들은 특정 집단과 바이러스를 동일시하며 공격했다. 불평등은 차별이나 혐오와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를 맺는데 혐오와 차별은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었다. K방역으로 이름을 알린 한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소위 말하는 취약계층은 여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코로나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주의, 배타주의, 차별과 혐오는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글로벌 감염병으로 인한 재해로 몸 하나 추수리기에도 여력이 없는데 여기 저기 묵혀 두었던 문제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그야말로 팬더믹에 팬더믹을 더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코로나 감염의 잠재적 위험이 오래 침묵을 지키며 모른척 했던 지난 문제들을 직면하게 했다. 그렇다면 차별과 혐오로 번진 문제만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었을까? 그건 아니다. 기후 변화로 야기된 생태계의 총체적인 혼란과 기후 위기로 야기되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같은 맥락의 문제도 역시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 왔다. 


우리가 서로에게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선뜻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문제는 켜켜이 쌓여갔지만 우리에게 답을 손에 쥐어 주는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해결책이 쉬이 보이지 않는다. 보건과 방역의 측면에서만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가기가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 문제들은 단순하게 하나의 원인을 제거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불평등이 단순히 빈부격차로만 해석되지 않는것처럼 각각의 문제가 계층, 차별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필요성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절실함 앞에 서 있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미래세대를 위한 연대 그리고 더욱 촘촘한 연결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시대적 요구와 필요 가운데 교육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기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에 더욱 적극적일수록 상응하는 결과에 더욱 기대하겠지만, 눈앞의 효과는 더디 나타나니 교육이 누군가에겐 당장 만족스럽지 못한 해결책으로 보일수 있다. 욕망이 강할수록, 시간이 촉박할수록, 스트레스가 계속 밀려올수록, 마음의 평화가 없을수록 우리가 교육에 더욱 시선을 옮겨야 할때다.


그렇다면, 이 혼란의 시대, 불안의 시대에 우리의 초점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이 옳을까? 


반기문 사무총장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람에 대한 투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는 것이다. 내가 교육현장에서 바라본 세계시민교육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세계시민교육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946년 유네스코 창립 이래 지속해 온 평화교육, 인권교육, 역사교과서 개편 등의 사업을 통합한 국제이해교육의 연장선이라고 이해한다면 더 쉬울것이다.


우리는 연결된 시대를 살아 가고 있지만, 어디에도 이와 상응하는 의식 수준과 체계는 없다. 자유로이 넘나드는건 바이러스 뿐이고 우리들의 의식과 수준은 어느 국경앞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영토분쟁과 민족주의로 얼룩진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실제 문제이기도 하다.


팬더믹으로 야기된 사회 곳곳의 문제들은 전 지구적 대응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범지구적 문화 교류와 소통은 더욱더 깊숙히 우리의 삶에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에게 문제를 바라볼 힘이 생겼고, 위기를 통한 해결에 대한 깊이 역시 더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희망을 쏘아 올리며 교육의 현장에서부터 그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2019년부터 아이들과 세계시민교육에 관한 내용을 함께 쌓아가고 있다. 방대한 범위와 막대한 정보 앞에 때론 엄두도 날 것 같지 않았던 세계시민교육이 방향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아가 우리의 책임과 역할을 고민하고 회복을 위한 지속가능한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단순한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니라, 인지하고 행동하며 학습을 통해 지속성의 문화로 치환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가치를 위한 가치 교육이 아닌 머리와 손이 연결되는 교육을 꿈꾸며 색을 입혀가는 중이다. 


“말은 적게 침묵은 많이”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방법을 고민하고 돌아본 적이 있다. 이슈를 다룰수록 강조점을 수차례 반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아는만큼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은 적게 하더라도 침묵을 많이 하고 침묵의 결과가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균형 잃은 침묵이 아닌, 적절한 효과를 드러낼 수 있는 침묵이 필요하다는 염려도 함께 하게 되었다.


말을 배우는데는 몇 년 걸리지 않지만 침묵하는 데에는 평생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행동하는 침묵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이다. 홍수같은 많은 양의 지식과 컨텐츠로 소비되는 교육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침묵의 모습으로 소극적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지라도 여전히 행동하고 움직이는 잠재력이 우리의 미래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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