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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 Sep 25. 2021

9월과 균형

뉴발란스


선생님 이 신발 아시죠? 


이 신발을 구매하기 위해 제가 얼마나 노력을 했냐면요. 끊임없이 이어진 17세 선엽이의 영웅담 비슷한 후기를 듣고 있노라면 본인이 신고 있는 신발 구매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애정을 쏟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신발을 보고 선엽이는 반가움을 표시했다. 나는 몇 해 전에 미국 아울렛에서 쉽게 구매했던 신발인데 선엽이의 눈에는 구하기 힘든 신발을 구해 본 사람으로서 느껴지는 동료애가 있었나보다.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20살이 넘게 차이나는 어린 제자와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걸 보면 신발을 좋아했던 지난 시간이 쓸모있게 느껴졌다.


2000년대 초반,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푸마가 스포츠 운동화의 전성기를 이끌던 시절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유행은 돌고 돌지만 지금 이 시대는 뚜렷한 강자없이 새로운 신흥 브랜드가 더해진 체재로 브랜드의 경쟁이 춘추전국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신발을 기능에만 초점을 두고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더 많은 브랜드와 다양한 디자인의 신발들이 매일 마켓에 쏟아지는 것을 보면 어느정도는 납득이 될 것이다.


절대강자 없는 시장에서 뉴발란스는 가장 오랜된 브랜드답게 매번 새로운 바람을 보여주었다. 뉴발란스는 1900년대 초 영국인 발명가 윌리엄 라일리(William J. Riley)의 손에서 탄생했다.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을 온 그는 집 마당에서 기르던 닭들을 보다 "저런 다리로 어떻게 몸을 지탱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닭발 모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세 갈래의 아치형 발톱이 완벽한 균형(발란스)을 이루고 있는 점을 관찰해 사람의 발 구조에 적용했다. 발에서 중요한 세 지점을 지지대 삼아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정형학적으로 치료 효과가 있는 신발을 만들었다. '불균형한 발에 새로운 균형을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제화사 이름을 '뉴발란스'라 지었다. 


1906년 '뉴발란스 아치'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뉴발란스는 스포츠 브랜드 중 가장 오래된 기업이기도 하다. 

외출이 거의 없는 코로나 시대의 우리 중고등학생들에게 신발은 자신의 존재를 보여 주는 소비재이기에 자연스레 아이들은 신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 사람은 누구나 이동할 때 신는 신발이기에 교사인 나와 학생인 아이들을 연결해 주는 공통분모가 되기도 한다. 우리학교에 다니는 17살 선엽이는 신발에 특히 관심이 많다. 관심은 실천과 맞닿아 드러날때 그 진정성이 보통 드러나는데, 소위 말하는 인터넷 광클릭을 통해 이 친구는 한정판 신발을 손에 넣었다.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신발장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엽이가 자신의 고생담을 랩처럼  늘어 놓았다. 


문득 한 학생이 남기고 간 스토리의 여운에 나는 잠시 머물렀다. 

한 브랜드가 오랜시간 사랑을 받고 그 존재감을 아직도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이루고 싶었던 뉴발란스는 무엇이었을까?

그 오랜시간의 비밀이 궁금했고, 그 궁금증을 요즘 고민하고 있는 학교와 다시 연결시켜 보았다.


요즘 우리 학교는 교육과정 2.0에 마음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출발하고도 부지런히 속도를 가해야 가까스로 안정적인 상태를 바라볼텐데, 영 그 시작이 쉽지 않다. 또한 좀처럼 건설적인 의견이 쌓이지 못하고 걱정과 염려가 뒤섞여 정체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은 내가 보지 못한 빈구석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다른 이의 생각에서 더 좋은 방향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쉽지 않은 시작이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균형이라는 낱말의 존재가 때로는 그 불균형이 주는 위태로움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처럼 우리가 현재 불균형을 인지하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의 불균형이 균형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니 속도는 달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균형의 의미가 우리안에서 더욱 곤고해지고 그 선명한 균형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달려 갈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이나 이름을 뜯어보다가 지난 5월에 방문 했던 북촌에 위치한 뉴발란스 그레이 하우스와 뉴발란스 그레이 프로젝트가 생각이 났다. 흰머리가 하나둘씩 늘어나는 50~70대를 겨냥하여 새로운 감각을 입혀주고 아들과 아버지의 코디를 매칭시켜 주는것이다. 색감, 바지길이와 옷의 소재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아들세대와 소통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여질 뿐 아니라 이미 소통의 능통한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뉴발란스의 아이코닉 감성과 클래식한 뉴발란스 제품을 주력으로 전시된 그레이 하우스는 매장이라기보다 하나의 전시회같은 모습이었다. 역시는 역시였는데,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기업도 깊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지 않으면 낡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변화가 나에게도 신선하고 도전적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이토록 사랑받는 브랜드라니, 어쩐지 한 학생의 애정을 듬뿍받은 신발의 이야기가 내가 어디에 초점을 두고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 10년이 지나도 난 여전히 균형이 잘 맞춰진 교육을 하는 교사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 나도 덩달아 깊어졌다.. 찰나 뉴발란스 신발이 가져다 준 고찰의 선물이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무거웠지만, 불균형 속에 더욱 더 빛이나는 새로운 균형이 교육과정 2.0에 잘 매칭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뉴발란스  

균형은 균형인데 새로운 균형!이라니 


상식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들이란 원래 진부하다. 

새삼스럽게 새로운 균형이라는 뉴발란스의 도전에 가장 큰 벽은 불균형이 아니라 균형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우리가 지키고 유지했던 지난날의 균형을 다시 흔들어야 우리는 새로운 균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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