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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 Nov 16. 2021

11월과 거리

궤도

11월과 거리


누구에게나 안전한 거리가 있다.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될 수 없는 적당한 나만의 거리가 있다.

각자가 지닌 기준으로 측정된 똑같은 거리라도 나에게는 감동이 타인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거리말이다.



멀고 가까운 정도를 나타날 때 우리는 거리를 사용한다. 지도에서 거리는 물리적인 수치이지만 사람과 사이의 거리는 마음의 수치로 나타난다. 표준화된 기준이 없다보니, 감정이 담긴 언어가 거리를 가늠하게 해 주거나, 표정과 몸짓 등 비언어적인 요소가 거리의 정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코로나 감염병 시대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타인과 나의 안전한 거리를 2m로 설정하고 이를 지켜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거리를 최소한으로 생각하고 나와 타인의 거리를 유지했다. 

안전한 거리두기가 감염병 예방의 최선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큰 몫을 했다. 거리가 주는 묘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때론 타인과의 불미스런으로 일을 발생시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이는 유효한 거리로 설정 되어왔다.



그러나 집단과 조직이 우선시 되는 사회적인 관습과 문화속에서 우리의 방역은 비교적 좋은 성적표를 받았지만,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사회 심리적 거리두기의 성공은 아직 미지수다.



우리가 방역에 실패한 국가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방역 자체의 문제보다 방역보다 우선시 되는 가치를 논하는 그 과정 자체인 경우가 많았다. 한국 사회는 한 개인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조직이나 공동체가 감당할 수 없어 보였다. 문제 해결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국가가 수용하는 우선의 가치가 방역에 실패한 선진국과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단의 존재가 개인의 존재보다 우선하고, 집단을 흔들 수 있는 문제는 개인이 감내하기에는 많이 버거워 보인다. 코로나 감염보다 사회적으로 받아야 할 규탄이 더 두렵다는 한 지인의 말은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닌 것이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요상한 거리두기를 한다. 때론 가까운 친구앞에서 더 가까운 친구를 드러내 놓고 자랑하기도 하고,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행동하기도 하며 어느 누구도 다가올 수 없도록 문을 닫기도 한다. 


문이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찾기에 필수적인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폐쇄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치이기에 양면적이기까지 하다. 


아무리 가까워도 문이 닫혀 있다면 여전히 거리는 좁혀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거리를 걷는다. 가을이란 말이 무색하게 겨울은 가을의 문턱에서 선을 넘기 일쑤였다. 겨울로 덮혀버린 날씨도 부지기수였다. 추운날씨로 겨울이 코 앞에 와 있음을 직감하지만, 우리에겐 11월은 가을이다. 

선을 넘어와 준 겨울 덕분에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교무실로 두 아이가 찾아왔다. 

자신의 눈에 타인의 행동이 거슬린다고 했다.

이미 커질대로 커진 눈덩이 같은 문제를 두고 나는 

한 치의 양보없는 디스전에 가까운 고통을 발산했다. 

자신이 지닌 최소한의 경계를 누차 이야기 했지만 상대방이 허락없이 넘어 왔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경계는 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경계는 더욱더 넘어서야 경계를 인지할 수 있다. 

아이들은 서로의 경계를 무던히 넘어서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넘지 않는 경계는 무의미하다. 

경계를 넘어설 때 경계는 비로소 확장된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머리를 누르고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 동안 교실에서 관찰한 두 아이의 말과 행동을 언급했다.


우리가 걸어 온 궤도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일은 꽤나 쉬운 일이 된다.


매번 같은 곳을 지나온 것 같지만 우리는 조금씩 다른 궤도를 그리며 시간을 기록한다.


수 많은 궤도가 때로는 교차점을 만들기도 하고 교차 이후에 한 없이 멀어지기도 했던 궤도들이 나와 타인이 거리를 보여주는 좋은 흔적이 된다.


난 그 궤도를 아이들과 생각하며 흔적 그 이상의 의미를 따라갔다.

우린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그대로 두고 2주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어떤함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견디기 힘든 부분이라면, 결국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젠 서로 나아가고자 방향이 달라졌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욱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전히 거리가 우리에게 질문하지만 우리는 답을 찾는 과정 중에 있다. 


11월의 가을이 가르쳐 준 거리 덕분에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지 않다. 

시리도록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11월의 거리를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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