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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 Jan 27. 2022

1월과 시간

열매

모든 크고 중요한 일들은 서서히 이루어진다. 아니, 굳이 그런 큰일들이 아니더라도 사과 열매나 포도 열매 하나가 맺히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지금 내게 열매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면,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먼저 꽃이 피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만개하고, 무르익어 열매가 맺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은 오디 열매 하나조차도 하루아침에 맺히지 않는 법인데, 사람의 마음에 열매가 맺혀서 그 열매를 거두는 일이 어떻게 빠르고 쉽게 될 수 있을까?, 설령 그 일이 쉽고 빠르게 될 것이라고 누군가 속삭일지라도, 나는 그런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다.



안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기다려야 함을. 모르는 이 없다. 공들이다는 것은 정성을 쏟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이 절대적인 양분임을 우리는 모두 안다.



1년동안 함께 교실에서 생활하던 한 친구는 최근 개인적인 이유로 학교를 잠시 쉬고 있다. 누구에게나 멈춤은 필요하지만, 오랫동안 신호를 보내며 이상징후를 내비치던 아이는 최종적으로 결심을 한 듯 보였다. 오랫동안 쥐고 있던 일들을 내려 놓으면 몸이 먼저 아프다. 아니 몸도 같이 아프다. 물리적인 과업이나 심리적인 방어를 지지하던 최전방의 에너지부터 서서히 소멸되기 시작하기에 여기저기에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내고 나면 다시 일어 설 용기도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교사들은 주로 방학 때 병원을 간다. 학기동안 긴장하고 내려 놓지 못한 많은 일들을 이상신호와 함께 숨죽이며 학기의 끝을 기다린다. 그런 나는 1월동안 경계없이 마음껏 생각하고 마음껏 게을러졌다. 시간을 통해 누리는 회복을 한정짓지 않았고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결승선 없이 달려오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보다 기쁜순간이 먼저 떠 오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공들임이 나의 것과 흡사 할 땐, 왠지 모르게 기쁜 것처럼 공동체 안에서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애가 느껴져서일지 모르겠다. 공들이고 오랜 기다림의 시간은 마법같은 선물을 가져다 준다. 그러니 좀 더 정성껏, 꾸준히, 아파도 견뎌내 보는거다. 흐르다 보면 그 마법같은 선물은 현실이 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2021년 한 해를 건강하게 살아내며 성숙해졌다. 그 어떤 부정성에도 내가 타당하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부정성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부정적인 것을 넘어서는 아주 쉽고도 간단한 일인 셈이다. 높은 성숙의 차원은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알아서 저절로 되는 성숙은 없다. 속상한 일을 겪었다면 그건 미성숙한 감정의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우리는 다시 움직여야 한다.    



비바람이 없어도 봄은 오고 여름은 가고~ 노랫말 처럼… 시간은 약이었을까?

1년의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 더 가까워졌을까? 우린 더 친밀해 졌을까?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 믿었던 아이들의 서늘한 뒷모습을 봐야 하는 것, 열심히 고개를 넘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던 것들을 떠 올려 보면 시간은 약이었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을 멍하니 바라본다고 시간을 약이 될 수 는 없다. 시리고 쓰려도 온 몸으로 시간을 살아내고 천천히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조금씩 생채기가 아물어 간다.

웅크려 가만히 있는 자에게 시간은 결코 약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린 2021년을 보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다. 우리가 시간을 약으로 쓸 수 있었던 이유가 상황과 환경에 눌리지 않고 그래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에겐 시간이 약이라 믿으며 오늘도 그 시간의 힘을 끌어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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