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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Oct 06. 2024

부산 사람의 충남 아산 도고 적응기

도고를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

주변 환기를 하고 싶어 졌다.

인별그램을 보다가 취향살이라는 독특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도고 취향살이 글쓰기 편.

약 2주간의 숙소제공, 식비별도.

이색적이다.

내가 이제껏 해보지 않은 도전을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여행을 위한 부산역행이 설레었다.

그렇게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어색하고 낯설었던 자기소개시간을 기억한다.

나의 이름은 천둥벌거숭숭이.

당당히 내가 쓰는 글을 공개하고 나의 취향을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근사했다.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다른 사람의 취향이 궁금했다.

그렇게 다른 장소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글쓰기라는 취향 하나만 보고 모인 도고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예상외의 일은 첫날부터 계속되었다.

식비별도는 밥을 계속 사 먹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비를 두둑이 챙겨 왔던 나는 사람들이 가방 속에서 하나둘 꺼내는 반찬통을 보고 당황한다.

밥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사람들.

요리실력에 자신이 없는 나는 그저 당황하고 송구스럽다.

당황했던 것도 잠시,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당신들이 요리를 하면 나는 청소기를 돌리겠소.

채소 다듬기를 마치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쓴 그릇을 정리하겠소.

옆에서 보조를 하니 음식이 뚝딱 완성된다.

도고에서 만들어 먹었던 요리기록

평소에도 밥을 이렇게 잘 차려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먹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다 먹었으니 말이다.

아침에는 미숫가루와 함께 할 때도 있었고, 견과류,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고구마, 반숙계란을 먹을 때도 있었다.

많은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먹었다.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었지만, 도고에서 집으로 복귀한 후 체중을 재었을 때 3kg이 빠져있었다.

체중감량의 비결은 아마도 수면부족이리라.

평소에 자주 먹던 액상과당과 과자를 멀리한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만, 하루에 잠을 4시간 이하로만 잤으니까.

그렇게 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침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니 정말 하루가 길었다.

부지런히 일어나 제일을 열심히 하는 닭울음소리를 들었고, 뜨는 해를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었다.

도고의 하늘은 정말 맑고 푸르다

정겨운 시골풍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지붕이 배경이 되고 높고 청명한 하늘과 황금빛 평야는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도고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다.

낮의 푸르름이 좋고, 해가 뜨고 질 때의 아름다운 색감변화. 그리고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고장에도 별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는 일은 드물다.

유성을 보고 소원빌기도 하고,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혼자 글을 쓰고 테이블에 앉아있으면 하나둘 사람들이 기상하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나의 심심함을 깨워줄 반가운 사람들이다.

밝게 인사를 하면 어색한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나만이 볼 수 있는 얼굴이다.

사람들이 나오면 맑은 볕을 이야기하고 빨래를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볕이 좋을 때는 당연히 빨래를 해야 하는 것이다.

햇볕소독만큼 기분 좋은 집안일이 또 있을까.

세탁물 밀리는 일 하나 없이 깨끗한 2주간의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5층 숙소의 가장 큰 메리트는 옥상이다

숙소에서 내가 맡은 일은 바로 빨래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개는 일은 주로 내 몫이었다.

정해진 역할은 없었지만 자연스레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을 한 것 같다.

세탁기 안에서 한껏 구겨진 세탁물을 탁탁 털어 건조대 위에 건다.

네 것 내 것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 된 세탁물.

우리의 삶이 그러하다.

다른 장소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

처음 섞일 때는 어색하지만, 두 번 세 번 그 이상이 되면 당연한 일이 된다.

그렇게 함께가 되는가 보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여기 도고에서 얻어가는 중이다.

타인의 이상형을 듣기에 알맞은 청취료는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와플이면 충분하다

여자 숙소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본인의 이상형을 글로 적어보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누군가 물어볼 때 대충 생각해서 내뱉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나의 이상형은 누구인가.

언젠가는 단추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다정한 사람을 좋아한다.

단정하고 다정한 사람.

이상형 적기는 꽤나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

외모, 성격, 습관, 가치관, 환경.

사람들은 깔끔하고, 배려심을 가진, 배움을 가까이하는, 한 사람의 최선을 바라봐 줄 수 있는, 화목한 가정과 바른 친구들을 가진 사람을 선호했다.

이런 사람은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이 이상형 기록하기를 한 이유는 자신의 이상형에 스스로가 부합하는 가를 알아보기 위함에 있었다.

아주 냉철한 자아성찰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이상형은 바로 내가 되고 싶은 나 자신이었다.

이렇게 도고에서 매일매일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색다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니, 생각보다 어리숙하고, 솔직하고, 명료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제비서재에서 타자기치는 일은 정말 추천!

함께하는 시간도 좋지만, 혼자 하는 시간은 더 즐겁다.

완전한 개인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 그곳은 바로 제비서재다.

타자기 공방으로 운영되는 제비서재는 본인이 원하는 글을 편하게 쓸 수 있게 장소를 제공해 주는 곳이다.

타자기를 이용해도 되고, 종이에 직접 글을 써도 되고, 소파에 앉아 편하게 쉴 수도 있다.

웰컴티를 마시며 마음을 정화한다.

15분 배우는 타자기 사용법이 낯설고 어색하다.

익숙한 키보드 배열이 아닌 어색한 받침사용은 나의 손가락을 고장 나게 만든다.

그래도 좋다. 어렵게 쓰는 글에 한 글자씩 정성을 담는다.

그렇게 꾹꾹 눌러쓴 글은 어느새 나의 진심을 담아내고 있다.

참 좋은 시간이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그렇게 나에게 쓰는 편지, 곧 생일을 맞이하는 친구에게 쓰는 편지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는 이제부터 나의 고민이 될 것이다.

나의 마음을 너에게 보내니, 부담스럽지 않게 기쁨으로만 받아주면 좋겠어.

캠핑을 하는 이유는 불멍에 있고, 불멍은 내 마음에도 불꽃을 피운다

캠핑은 처음이다.

편한 장소를 좋아한다. 낯선 것에 대한 부담감이 굉장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늘 좋은 수확물이 있었다.

함께하는 기쁨을 맛본 후부터는 가자면 그냥 간다.

캠핑장에 도착하자 먹는 치킨이 맛있었다.

모닥불 피워놓고 그위에서 구워 먹는 마시멜로우와 비눗방울이 내 마음의 동심을 자극한다.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불꽃처럼 피어오른다.

급격히 쌀쌀해진 밤바람에도 모닥불 주위를 지키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술 한 모금 없이 분위기에 취해, 사람들의 이야기에 취해 진솔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불멍을 하면서 내 마음의 이물질까지 다 태워버렸다.

일상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캠핑을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주변을 환기시키면, 묵은 나를 깨끗이 씻어내는 것과도 같다.

도고에서의 마지막날 아침은 하늘마저 아쉬워 한다

유난히 축축하고 흐린 아침이었다.

이별하기 아쉬운 듯 아침햇살을 가리려는 하늘의 모습이 내 마음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해는 뜨고, 나는 떠날 채비를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세어보면 하나 부족한 11박 12일의 여정이었다.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에서의 일들을 단 하나도 잊지 못할 것이다.

매일매일이 달랐던 하늘과 맑은 밤하늘의 별, 눈 맞춤을 아끼지 않았던 마을사람들과 배려와 존중을 알았던 취향이 같았던 사람들.

새벽 기상으로 소중하게 쓰인 나의 시간들.

앞으로의 내 일상은 더 다채롭고 귀하게 사용할 것이다.

여기서 배우고 깨닫게 된 것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오는 시간이 지난하다.

다행히 차로 배웅을 해주신 덕분에 버스시간을 절약하고 지하철을 타고 천안아산역으로, SRT를 타고 다시 부산역으로, 부산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소란하다.


숙소 건물 5층이 가장 높은 곳이었던 도고에서의 일이 금세 까마득하게 여길 정도로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도로에 차들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각기 제 할 일을 하느라 고개 드는 일없이 바삐 길거리를 걷는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어색하다.

그래도 금세 적응하고 하루를 살아가겠지.

주변환기를 위해 찾았던 도고가 어느덧 고향처럼 그리운 장소가 되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곳.

또 만나고 싶은 사람들.

그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매일을 살아가야지.

귀한 사람이 있는 도고를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곁에도 귀한 사람, 소중한 추억이 함께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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