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태양을 흔들자
싸늘해진 날씨에 감성을 충만하게 만드는 영화 추천작
그런 날이 있다.
갑자기 안 하던걸 해보고 싶은 하루.
밥이 똑 떨어져서 시켜 먹어야 하나, 해 먹어야 하나 고민이 들 때 냉장고에 남아있던 냉동 햄버거를 데워 오이고추 5개와 함께 개운하게 끼니를 채운 평화로운 오후.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제목.
우리, 태양을 흔들자.
나 자신을 흔들기도 어려운데 지구도 아니고 태양을 흔들려면 무얼 해야 하는 걸까.
다른 이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태양을 흔들면 나와 당신의 하루가 더 밝아질까?
링민은 20대 초반의 요독증 환자다.
요독증이란 신부전에 수반하는 질병의 명칭으로 오줌으로 배출되어야 하는 독이 몸에 쌓이는 병이다.
신장을 이식받으면 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일주일에 3번 혈액투석을 해야 삶을 연명할 수 있다.
먹는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음껏 마시지도 못한다.
갈증이 올 때 레몬의 신맛으로 입안이 건조한 것을 겨우 막아낼 뿐이다.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링민은 살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병환에 부모님은 고향으로 떠나고, 부동산 회사에서는 계약을 마음대로 파기하고 다른 곳으로의 이사를 종용한다.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를 위해 들러리를 자처하며 도왔지만, 돌아오는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그래도 링민은 더 살아내고 싶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홧김에 찍은 구혼영상을 올려버린다.
암환자들의 모임단체에 자신의 병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과 결혼하여 신장이식을 약속해 준다면 상대방의 가족들을 보살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기에 바로 후회해 버렸다.
1분 만에 올린 영상을 지워버렸는데, 누군가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아마도 링민의 영상을 본 사람이 있나 보다.
실수라고 답하려고 했는데 바로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
만난 장소도 하필 뷔페다.
요독증으로 엄격한 식이요법을 하고 있는 링민이 먹을 음식은 하나도 없다.
단정하지 못한 남자가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홧김에 올린 영상이라고 설명했지만 듣질 않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링민의 주위를 맴돈다.
스토커로 신고하지만, 장기매매범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이때 남자가 두고 간 서류를 읽게 된다.
이 남자의 이름은 뤼투다.
뤼투는 뇌종양 환자로 수술 후 완치를 했지만, 이번에 다시 재발했다고 한다.
결혼해서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신장을 받은 린민이 자신의 엄마를 보살펴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도 오롯이 지켜내지 못하는데, 링민은 화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뤼투는 그녀의 주위를 계속해서 맴돈다.
친구의 결혼식날.
준비했던 들러리 춤인사를 마치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여기서 만난 뤼투에게 다가가 말을 걸지만, 웨딩업체 측의 촬영기사 일을 하러 왔다고 한다.
못 미덥지만, 관계자 옷까지 입고 있으니 바로 돌아서 가버린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측 들러리와 신부 측 들러리가 남아서 회식자리를 가진다.
다소 껄끄러워 보이는 장면이 연출되자 뤼투가 참지 않고 바로 링민을 보호한다.
링민의 팔을 잡은 뤼투의 실수로 혈액투석을 위한 누공이 막혀버려 수술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미안함이 컸던 뤼투는 링민의 손발이 되어주기 시작한다.
이사를 돕고, 그녀의 집에 기거하며 그녀를 보살펴준다.
혼자 옷 벗기가 불편한 그녀를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불러 그녀를 씻겨준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녀를 위로한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감정도 깊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링민에게 신장 이식의 기회가 온 것이다.
하필 비가 내리는 오후다.
차가 막히고 평소에는 잘 잡히던 택시도 없다.
숨 가쁘게 달려간 병원에서 다른 한 명의 신장 이식을 원하는 사람이 같이 왔다.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는 뤼투에게 링민이 말한다.
사람의 신장은 2개이기 때문에 경쟁자가 아니라고, 신장 이식을 받는다면 함께 받는 동료가 될 거라고 말해준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 바뀔지 모른다.
가족의 신장이식에 동의했지만, 막상 그 상황이 오니 갈등이 서는 것이다.
결국 신장이식을 받지 못하고 링민과 뤼투는 병원을 나서게 된다.
같이 온 신장 이식을 받고자 했던 사람은 가족에게 화를 낸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그러나 링민은 뤼투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고, 기다리면 된다고.
슬프지만 예쁘게 웃는 링민의 모습에 뤼투는 결심하게 된다.
쉽게 시작한 영화 시청이었다.
평소에 잘 보지 않았던 중국영화.
심지어 사랑이야기.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의 들러리를 준비하는 링민.
일주일에 3번 혈액투석을 해야 하는 링민은 일하기가 쉽지 않다.
오래된 친구 덕에 시장 관련 일을 하고, 그 친구의 결혼식 들러리를 서기 위해 춤까지 준비하는 중이다.
가족끼리도 알고 있는 사이라 이번에 엄마가 친구를 위해 만두를 만들어서 가져다주었다.
기뻐하는 친구였지만, 결국 만두를 가져가지 않았다.
그렇게 버려질 엄마의 마음이 안쓰럽고, 또 자기 자신이 가여워 남겨진 만두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링민의 마음은 아리기만 하다.
투석받기 위해 찢어지고 상처 난 팔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버겁다.
나는 이렇게 살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은 내가 사라지길 바라는 걸까.
부동산회사의 갑질에도 참으려고 했지만, 집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자신이 먹는 약을 치워달라고 했을 때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링민이 바란 것은 배려가 아니라 정당한 권리였다.
아파도 살아갈 권리.
하루하루가 힘겨울 때 링민의 곁을 지켜준 것은 뤼투였다.
뤼투 역시 뇌종양 환자로 언제 상태가 악화될지 예측이 불가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이미 한차례 큰 수술로 새 삶을 얻었지만, 27일간 의식 없이 누워있던 탓에 술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밤을 보내게 된 엄마가 자신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가 된 사실이 싫었다.
먼저 떠난 아빠의 병을 그대로 물려받은 자신이 엄마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순수함이 있었다.
남들이 볼 때는 바보 같은 그의 행동이 사실은 하루를 더 살아내기 위한 그의 간절함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링민과 뤼투의 엄마, 세상에 단 둘 뿐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나 자신을 알아준다면 그 사람은 삶을 잘 살아낸 것이다.
뇌의 반 이상을 잘라내면 지능이 떨어질까.
인간은 자신이 가진 뇌의 10%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모자라 보이는 행동이 다만 뇌의 용적률 때문이 아니라, 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낮추어 보지 않았을까.
온전한 나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면서, 나 또한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 순간이었다.
단정하지 못한 옷매무새와 자세,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모임장소, 자기 말만 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 대화자세.
채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뤼투를 판단했던 링민에 나를 빗대어 본다.
그러나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걸.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속단할 수 없다.
세상에 죽고 못 사는 사랑이란 과연 존재할까,라는 물음에 의연한 답을 내려준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
비어있는 서로의 삶을 같이 채워나가는 것.
힘들 때 곁에서 위로해 주는 것.
되게 사소한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 모두는 한 치 앞을 모르는 하루를 매일 살아가고 있다.
시한부의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그의 삶과 나의 삶에 과연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많은 사랑을 할 것.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삶이 아닌, 서로를 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자기가 할 일을 잘 해내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
생각 없이 고른 영화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흐린날은 태양이 잠들어서 흐린거니까, 태양을 흔들어 깨우면 날이 맑아질거야.
아이의 순수함을 잊지않는 어른이가 되고 싶다.
서늘해진 날씨에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영화를 당신과 나누고픈 어느 가을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