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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천둥벌거숭숭이
Jul 25. 2024
고맙고 미안한 나의 가족에게
넷플릭스 추천영화 땡큐 아임 쏘리
날씨가 몹시 변덕스럽다.
해가 쨍하다가 갑자기 구름이 삽시간에 몰려들고
하늘이 뚫린 듯이 비가 내리고 금방 더워진다.
태풍이 예견되어 있는 이번주는 더 덥겠지.
덕분에 올해 처음으로 쨍한 무지개를 보았다.
여러모로 하늘 볼 일이 많은 요즘이다.
간밤에 내린 강렬한 비는 이른 아침 무지개를 만드는 원동력
늘 걷던 거리도 새롭게 만드는 힘은 매일매일의 특별함에 있다.
이렇게 특별한 오늘.
해야 할 일들은 미루고 기력 충전 하기로 했다.
나에게 충전은 따로 없다.
그냥 쉬는 것.
쉬면서 할 수 있는 것에는 영화 보기가 있다.
몸은 쉬고 눈과 머리와 가슴으로 영화 보기.
Thank you I'm sorry.
고맙고 미안하다.
간결한 제목에 바로 사로잡혔다.
가볍게 시작한 영화에 이렇게 금방 빠져버리다니.
놀라운 영화다.
남자가 여자에게 잠시 시간을 갖자고 한다.
내일 친구와 떠난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여자의 표정에 충격이 담긴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소파 쪽으로 몸을 향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떠난다는 남편은 일어나지 않고, 늦잠 자는 중인 아이를 깨우러 간다.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고 확인차 들른 안방에서 남편은 움직임이 없다.
사람들을 불러 확인해 보니, 고통 없이 삶이 끝났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이별,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의 애도에도 부인은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다만 심리상담사인 남편의 엄마만이 그녀를 불안, 혹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녀에겐 아이와 뱃속의 아이 그리고 그 자신뿐이다.
그녀를 위해 남편의 부모가 집에 자주 찾아온다.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을 앞세워 표현하지 않는 여자에 대한 성급한 판단은 그녀 자체를 불완전하게 한다.
쌓여왔던 불만들이 폭력적으로 표출된 어느 날,
그녀와 만나지 않았던 그녀의 가족들에게 연락이 온다.
그녀의 언니.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다.
폭력적인 아빠와 당하기만 하던 엄마의 이혼에 혼자남을 아빠를 걱정해 아빠에게로 간 언니였다.
그게 미워서, 나를 선택하지 않은 언니가 미워서 인연을 끊다시피 해서 만나지 않았던 언니다.
그런 언니는 역시 아빠를 간간히 보살피고 있었고, 자신을 똥보다 못한 취급하는 남자친구에게 집을 내어주고 살고 있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서류상 가족보다는 피붙이가 낫겠지.
갑자기 찾아온 언니지만 아이와 나를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한다.
아이는 언니를 좋아한다.
솔직히 말해 언니보다 언니가 데려온 강아지를 좋아한다.
자기
가 좋아하는 강아지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갖고 싶어 지는 순간이다.
안정감을 찾던 순간.
믿음이 깊어지는 찰나에 일어난 사건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족이니까 괜찮았던 것들이 가족이라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일로 바뀌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한 영화였다.
임산부에게 이별을 말하는 남자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슬프지 않은 부인.
남자친구가 바람을 펴도 이해하는 여자친구, 엄마의 거짓말을 지켜준 언니의 거짓말.
솔직한 건 아이뿐이었다.
가족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엄마를 사랑하고, 낯선 강아지를 사랑하고, 엄마에게 냉담한 할머니를 사랑한다.
모두가 어린 시절을
경험한다.
순수한 감정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어릴 때의 사랑은 좀 더 컸을 때의 사랑과는 다르다.
아이는 자신이 준 사랑을 상대방이 돌려주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는다.
그저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뿐이다.
술만 먹으면 폭력적인 아빠와 그런 아빠를 두려워하는 엄마.
내가 괴로운 순간에 항상 나를 지켜주던 언니가 엄마아빠의 이혼으로 떠나버렸다.
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혼자인 아빠를 선택한 것이다.
나를 학대한 아빠보다 나를 버린 언니가 더 밉다.
그런 내가, 가족에게 버림받은 내가 가족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한 때 나를 사랑했던 남자도 함께 가진 아이를
품고 있는
나를 떠났다.
나를 외롭게 만드는 결과물에 더는 노력할 힘을 얻지 못한다.
그런 상처를 처치하고 다시 믿음을 가진 언니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애를 낳는 순간까지 고민이 계속된다.
영화의 내용은 계속 이상했지만, 모든 순간 공감됐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배신당한 기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인간의 마음은 매우 변덕스럽다.
어제 싫었던 것들이 아주 사소한 이유로 좋아질 수도 있고,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한 가지 일로 급격히 싫어질 수도 있다.
인간사이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소하고 소소하다.
타인과의 관계는 단절이 쉽다.
하지만 가족은 어렵다.
서류상으로도, 연결되어 있는 피의 네트워크는 그 연결고리가 단단하다.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폭력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극렬하게 싫고, 불현듯 보고 싶다.
그 관계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방법에는 설명이 필요치 않은 사이라는 것이다.
내가 왜 갑자기 기분이 나빴는지, 왜 보고 싶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지랄발광에도. 쟤는 원래 저랬으니까.
그냥 순응할 뿐이다.
갑자기 사라진 동생을 찾을 수 있는
사람
은 언니뿐이었다.
삶의 한 부분을 함께 한 사람이니까.
나의 치부를 다 알고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
가족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나의 흉터를 덮고 있는 그런 존재.
사진출처 :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존재한다.
모두가 아름답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각자가 가진 고유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상하지만 가족이다.
나는 한 때 가족이라는 이름의 허울을 폭력으로 생각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라, 가족이니까 받아들여라.
나를 감싸주지 않는 존재들에 내가 왜 관대해야 하는가.
그저 같이 사는 사람일 뿐인데, 그 이상의 것을 나에게 요구하는 것일까.
늘 전쟁이었다.
다 지나고 보니,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전쟁을 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잘라내고 대화하며 끊어낼 인간들은 단호히 끊어내고, 나에게 좋은 사람들은 기를 쓰고 붙잡았다.
그 모든 허무의 시간들을 겪어내고 난 후 지금에 이르렀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가정을 만들어 떠나가고 다시 나는 홀로 남았다.
결국 남는 것은 오롯이 나 혼자라는 사실이다.
간간히 연락을 나누는 가족과 겨우 안부인사만 나누는 사람들.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의 허무를 수용하게 되는 때가 온다.
지금의 내가 그러하다.
그러한 시점에서 만난 이 영화는 참 이상하고 재미있었다.
애증의 가족, 그리고 중간중간의 코믹요소.
모지리처럼 착한 언니.
나만 사랑해줬으면 했던 언니.
직업이 뭐냐고 물을 때 복권당첨이 되어서라고 수줍게 말하는 부러운 언니.
똥 같은 남자친구를 욕한다고 싫어했지만, 결국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착한 내 언니.
나의 가족.
서운한 감정을 배출하고 나니, 그저 순간에 최선을 다했던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나의 지랄발광도 기꺼이 받아주는 언니.
나도 그런 언니가 갖고 싶은 순간이다.
땡큐 아임 쏘리.
고맙고 미안한 우리 사이.
그래서 또 보고 싶은 사람.
나에게 당신이 그러한 존재다.
당신에게도 고맙고 미안한 존재가 있으신지.
keyword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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