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전란은 일어난다
넷플릭스 볼만한 영화 전란
가을 날씨가 변덕스럽다.
유난히 눈부시던 아침의 햇살에 눈이 시렸다.
밥을 먹고 일정을 수행하던 중에 바라본 하늘에는 어느새 구름이 한가득이다.
어느 새부터 진해진 습기에 언제 흐려졌나 생각할 새도 없이 비가 내린다.
변덕스러운 가을날씨.
비가 오면 몸이 축 쳐진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영화를 찾아서 본다.
넷플릭스 오늘 시청 1위 영화 전란을 보게 되는 것은 순전히 날씨 탓이다.
역사 드라마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므로 시대적 배경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에 있었던 조선의 이야기로, 인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영화적 재미로 각색되었다는 사실에 유의하고 시청했다.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기 직전 작금의 조선은 안과 밖으로 어수선한 상태에 있었다.
명에 사대했던 조선에서는 점점 강성해져 가는 후금의 기세에 조선 조정에서도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조선 안에서는 정여립의 모반사건으로 민중들이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마주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양반 신분임에도 먹고살기 힘들어져 빚을 지고, 갚지 못하면 노비로 팔려가는 시대였다.
양반으로 자랐던 아이는 노비로 팔려간 어미의 신분으로 인해 노비로 신분이 바뀌어 버리고, 당시 잘 나가던 무관 양반댁에 매 맞는 노비로 팔려가게 된다.
영특했던 아이는 매를 덜 맞기 위해 주인댁 아들을 늦은 밤 훈련시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천영이다.
주인댁 아들 종려는 배움이 느렸지만 천성이 착한 아이였다.
노비인 천영을 친구로 삼으며 우애를 다져갔다.
무인으로서 과거에 급제하는 일은 힘들다.
7번의 낙방에 고심하던 때에 천영이 꾀를 낸다.
자신이 대신 시험을 보고 합격장을 안겨줄 터이니, 면천(천한 신분을 면제해 주는 것)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천영은 급제하여 당당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진 자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죄책감을 가진 종려는 천영을 보내주는 것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남한산성으로 거처를 옮긴 때가 있었다.
그런 선조를 수호하던 종려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다.
왕마저 궁을 떠나니, 궁 주변에 기거하던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어수선한 틈을 타, 종려 댁 노비들이 주인 부부에게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추노꾼에게 잡혀온 천영이 창고에 갇혀있던 때에 사건이 벌어진다.
노비들이 주인댁 모두를 죽이고 떠났을 때, 종려의 처와 아이만이 집에 남아 있었다.
매타작을 당하고 쓰러져있던 천영이 깨어나 창고에서 막 나왔을 때 종려의 처와 만나게 된다.
평소 노비에 대한 신분차이를 논했던 종려의 처는 천영에게 굉장히 적대적이었다.
도와주려던 천영의 손을 피해 솟아오르던 불구덩이에 몸을 던진 종려의 부인과 아이는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달아나던 천영을 본 추노꾼은 자신이 본 사실을 그대로 종려에게 고해버린다.
둘 사이에 깊어지는 오해는 복수심을 가지게 만든다.
역사적 배경으로 그리는 신분제를 뛰어넘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낸 영화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는 계속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인간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건 사고는 매일 일어나고 그 일을 수습하는 것이 인간사다.
작금의 한국의 모습이 과연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언제나 위정자는 존재했고, 그들로 인해 나라가 운영되었다.
역사는 이긴 자들의 기록에 의해 후대에 전해진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침범으로 인해 어지러워진 나라 안의 모습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은 어떠한가.
누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가.
이때에 개봉해 버린 영화가 전란이라니.
역사적 사건보다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초점이 된 영화다.
나는 이제껏 역사이야기가 담긴 드라마나 영상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한 사실을 담기보다는 재미를 추구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나의 생각이 조금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전란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역사의 진실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역사 자체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상기시키면서 다른 점이 있다면 찾아서 알아보는 사람이 되면 더 좋은 것 아닌가.
실제로 선조는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최선을 다 한 것이 아닐까.
그때는 몰랐던 것이 지금에서 보면 다 알 수 있는 것처럼.
매일매일 실수하고 깨닫는 것이 인간사이고,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평가하곤 한다.
비난을 위한 자료해석과 비판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일단 오랜만에 사극에서 만난 강동원이 반갑다.
천영이란 역할은 고집스럽고 민첩하며, 자신이 믿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 하는 경향이 있다.
종려는 남부럽지 않은 집안의 사랑받는 무인으로 장성한 사람이다.
다 가진 것이 당연함에도 노비와 친구를 맺을 수 있는 융통성을 가진 사람이다.
칼 끝에 분노가 없는 무인.
하지만 가족을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천영을 향한 분노뿐이었다.
옥체를 보전하기 위해 궁을 떠나는 왕을 바라보는 백성의 마음은 어떠할까.
버림받은 아이의 좌절감일까, 배신당한 이의 분노일까.
신처럼 따르던 왕이 궁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아이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시키는 대로 따르던 백성들이 자신에게 화내고 돌을 던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왕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자신은 신인가, 그냥 사람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의무를 다 하여야 한다.
당시의 선조는 백성들의 몸과 마음을 안정시킬 의무를 지키지 못했으니,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사람은 왕을 지키고, 다른 한 사람은 백성들을 지키며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일을 했던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에서 같은 분노가 피어오른다.
서로에 대한 배신감과 서로를 잘 앎으로 인한 이해와 미안함이 같이 피어오른다.
영화를 다만 역사 드라마로 보면 이 영화는 빵점이다.
단면적으로만 인물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람을 한 가지 방향으로만 바라보면 그를 다 알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흥미롭게 그려내는 것이 바로 영화의 묘미다.
부족한 역사적 지식은 보는 이가 찾아서 보면 된다.
전란의 역사적 배경이 언제인지,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의 뒤바뀐 정세.
왜 선조 다음에 둘째 아들인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는지, 임해군은 왜 왕이 되지 못했는지.
왜 광해군은 왕이 아닌 군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찾아보는 부지런함을 가져야 한다.
쏟아지는 영상들에서 올바른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보는 이의 책임이 되어버렸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나를 지켜내는 것은 오롯이 나 한 사람이다.
가난에 허덕이다가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해 버린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비로서의 일을 다 해내면서, 자신을 갈고닦고 실력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천영은 자신의 길을 찾고, 면천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했다.
바뀌어버린 세상에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소란한 상황에서 나온 영화 전란 자체가 재미있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사람은 늘 실수를 한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깨닫고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잘 보내야 하는 오늘이다.
재미있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란 영화의 한 줄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