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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Sep 17. 2024

누구나 마음속에 싸움을 꿈꾸지 파이트클럽

명작이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라는 가을은 오지를 않고 더위의 기세만 더욱 맹렬해진다.

그럴수록 불쾌지수는 높아지고, 분쟁이 늘어만 간다.

내 분노는 늘 정당했던 것 같은데, 결론은 썩 개운하지 않다.

싸워서 남는 게 있을까.

그런 나의 의문에 완벽한 답을 내려준 영화가 있다.

바로 파이트클럽이다.

1999년작이지만, 나는 2008년 처음 보았다.

영화에 흥미를 가졌던 시기에 만났던 파이트클럽은 놀랍고 변태적이었으며, 몹시 흥미로웠다.

미친 자가 나오는 영화.

미친 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배우 에드워드 노튼이 내레이션을 맡고 영화의 끝까지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의 직업은 자동차 리콜 심사관이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사고가 난 차들을 살펴보고 리콜대상을 삼을지 말지를 조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차를 자주 겪어서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잠들지 못한 한밤을 이루곤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본인이 무엇을 할지 본인이 정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에게 묻고 대학을 가고, 졸업한 후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이케아 가구로 집안을 채우는 것이다.

소비를 위한 소비, 요리를 하지 않지만, 향신료로 가득한 냉장고와 이케아 카탈로그와 같은 모습의 집안 풍경.

지속되는 불면증으로 잠 못 드는 밤을 견디지 못한 그는 병원을 찾아 수면제를 처방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의사는 함부로 수면제를 처방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환암 환자들의 모임에 가면 자신의 고민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 알게 될 거라는 조언을 한다.

그렇게 방문한 고환암 환우들을 위한 모임 현장.

스테로이드 과다복용의 부작용으로 여성호르몬이 과다분비된 이혼남의 품에 안긴 그날.

낯선 이의 무조건적인 위로인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느끼는 편안함인지.

아무 고민, 걱정 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날부터 모임의 중독자가 되었다.

고환암, 결핵, 빈혈 등, 누구죽음이 예견된 삶이지만, 보다 죽음에 근접한 사람들 가까이 있는 것.

각자의 사연들이 가득한 곳.

아무 말 못 하고 있으면 더 동정받는 곳에서 주인공은 위로받으며 자신에게 꽤나 좋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라 싱어는 지독한 골초로 보인다.

담배를 피우며 폐결핵 환우 모임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다.

심지어 고환암 환우 모임까지.

고환도 없는 그녀가 이곳에 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날은 그녀를 붙잡고 물어보니 공짜 커피와 도넛을 먹을 수 있어서란다.

주인공에게는 이 모임이 절실하다.

그녀가 나타나고서부터는 다시 불면에 시달리는 중이다.


온전한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반반씩 가자고. 당신이 있으면 안 된다고.

거짓이 섞여 들면 안 된다고.

공평하게 숫자를 나누고 혹여나 다른 일이 생겨서 날짜 변경을 할 경우를 대비해 번호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타일러 더든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주인공과 똑같은 가방을 든 그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흥미로워한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일회용 친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는 수월하다.

비누제조업에 종사하는 타일러 더든은 꽤나 수입이 좋은가보다.

스포츠카를 타고 떠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본다.

비행을 마치고 귀가하던 어느 날, 거주하던 아파트 입구 길바닥에 떨어진 주인공의 양념통을 보게 된다.

주인공의 집이 불에 타다 못해 폭발해 버린 것이다.

누가 어떤 동기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모를 일이다.

갈 곳이 마땅히 없었던 그는 말라에게 전화했다가 이내 끊어버리고, 타일러 더든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다행히 그와 만나주었고, 오래지 않은 대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집에 가는 것을 허락한다.

타일러 더든은 이상하다.

갑자기 자신을 때려보라던지, 폐가 같은 집에 살면서 자신을 초대하는 모습조차도.

이상하지만 흥미롭고 편하다.

마치 또 다른 나를 만난 듯이.


그와 사는 생활은 마치 부부의 생활과 같다.

퇴근하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아침을 챙겨주고, 하루를 나눈다.

자신을 표출하기 위한 싸움을 하던 것을 주변 사람들이 보고 합류하기도 한다.

이렇게 파이트클럽이 만들어진다.

파이트클럽의 첫 번째 약속은 파이트클럽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 것.

하지만 쉽지 않지.

회원은 계속 늘어가고, 앙금이 없는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는 싸움에 다들 흥미가 동한다.

건강한 싸움에 악의가 깃들기 전까지는.

타일러 더든은 점점 더 악동이 되어가고, 주인공은 제지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어느 날 수면제를 많이 먹었다며 걸려온 말라의 전화를 끊지 않고 수화기만 올려놓았던 주인공은, 타일러 더든이 말라와 통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느샌가 말라가 타일러 더든과 주인공이 사는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 자기의 삶에 들어오는 것이 싫었던 주인공은 말라를 밀어낸다.

말라는 화를 내면서 집을 나서고, 타일러 더든은 주인공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

파이트클럽은 날로 사람들이 늘어나고, 타일러 더든의 악동짓이 점점 더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함께하는 이 길의 끝은 어디인가.

파이트클럽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주인공의 집은 누가 폭파를 했고, 주인공과 말라는 어떤 관계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에 영화를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보고 또 보아도 재미있는 영화 파이트클럽.

까만 밤에도 환한 빛이 함께한다.

1999년작이다.

나는 2008년에 처음 만났다.

2008년 영화관 알바를 시작하게 되면서 영화에 더욱 흥미를 가졌던 때.

미친 자들이 그려내는 인생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정도라는 길을 걷는 것보다 비켜서 보면, 인생은 흥미로운 것이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재미있는지 판단할 겨를 없이 넘치는 물질과 알고리즘 속에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는 즐거움보다, 손 끝을 스치면 만날 수 있는 도파민 넘치게 하는 영상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유행하는 물건을 사고, 웃기고 재미있는 영상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는 사람들을 오타쿠, 마니아라고 부르며 거리를 두려 한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1999년도에 만들어진 영화를 2024년에 보는데도 위화감이 전혀 없다.

다만 다른 것은 이케아가 지금은 더 대중적이 되었다는 것이고, 작중 배우들이 나이를 많이 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나는 헬레나 본헴 카터의 연기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헬레나 본헴 카터의 미친 연기를 좋아한다.

내가 미쳤지만, 더 미쳐있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너를 좋아한다고 하는 말라 역할을 이렇게 멋있게 소화해 낼 배우가 또 있으랴.

코인 세탁소에서 세탁된 남의 옷을 가져다가 전당포에 팔아버리는 쿨함.

공짜 커피와 도넛을 위해 없는 고환까지 소환하여 고환암 환우 모임에 참석하는 대범함.

모든 장면이 다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곱씹어보니, 주인공이 만난 의사가 진짜 명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면증과 몽유병에 대한 처방법이 아픈 사람들의 모임에 가보라는 조언.

수면제 처방의 과용을 막기 위한 그의 생각인지,

어쩌면 주인공의 불면증을 가볍게 바라본 의사의 처방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을 의사는 알고 있었을까.

사람의 인생이 실제로도 이러하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건을 수습하다가 인생이 바뀌기도 하고.

매일매일이 똑같은 삶인데도 또 다르다.

요즘 사람들 마음에는 화가 많다.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늘 화가 있다.

늘 불씨를 마음에 두고 있다가, 작은 일에도 큰 화가 되기도 하고, 삭히기도 한다.

때로는 그 화가 표출되기도 하는데, 참았다가 터트리는 화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올바르게 화를 내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파이트클럽 안에서는 미움과 앙금 없이 오로지 자신을 표출하기 위한 싸움이 있었다.

단 둘만의 싸움.

상대가 항복의사를 보이면 싸움은 끝이 나고, 끝난 후에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안아주고 존중과 배려에 감사를 표현한다.

여기서 파이트클럽은 정당하고 건전해 보인다.

자기 안에 숨어있던 화를 여러 사람들에 의해 표출하기 전까지는.

비싼 외제차를 망가뜨리고, 가전제품 회사 물품 부수기.

정의로운 척 하지만, 법치국가에서 개인이 응징하는 것은 응당 옳지 않다.

그들로 인해서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자신의 화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지 못했던 주인공이 자신의 친구를 스스로 만들어냈던 이유도 자신이 온전히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대리만족이다.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는 시원한 결말을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있으니까.

파이트클럽의 결말 역시 아름다운 폭파장면.

그리고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미친 여자 말라까지.

사실은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 둘의 앞날은 환하게 빛나는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무섭고, 때로는 공감되고 부러웠다.

나를 내 맘대로 하게 두는 것.

그것이 내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명작은 영원하다.

이번이 거의 30번째 감상이다.

처음에는 타일러 더든의 장난이 흥미로웠고, 말라의 온전한 미친 짓이 사랑스러웠고, 배우의 연기력에 푹 빠졌다.

보고 또 볼 때 느끼는 연출진들의 노력, 세부적인 장면묘사.

이야기가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마다 더욱 놀랍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명확한 이유가 있는 영화다.

배경이 주로 어둡다.

그래서 밤잠이 오지 않는 날 생각나는 영화다.

화양연화만큼 재미있는 영화 파이트클럽.

 못 드는 밤에 보기 좋은 영화다.

잠을 잃은 당신에게 적극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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