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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Feb 08. 2024

22번째 중경삼림

새해맞이 감성충전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 영화들이 있다.

내게 중경삼림이 그러했다.

처음 봤을 땐 풋풋한 금성무와 양조위 보는 재미가, 익숙하게 귀에 익은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고, 감독이 의도한 사소한 연출, 배우가 표현하고자 했던 사소한 몸짓.

보면 볼수록 이 영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또 22번째 관람이 시작되었다.

경찰 223과 경찰 663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이다.

이별하고 사랑하고.

그 과정이 당사자에게는 특별할 뿐, 제삼자가 봤을 땐 흘려들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연인이라는 인간관계는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한 달 전 이별 한 경찰 223은 메이와 잘 가던 식당을 매일 들르고, 메이 주변 사람들에게 밤새 전화를 걸고, 그녀를 기다린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알면서도 기다린다.

괜한 기대를 하고 혼자 실망한다.

인간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

1994년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계속 산다.

이 것은 그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다.

이별의 기한. 자신이 정한 메이와의 이별 기한이다.

결국 그녀는 연락이 오지 않고 그는 유통기한에 맞춰 1994년 5월 1일의 통조림을 모조리 먹어 치워 버린다.

마음의 병을 몸의 병으로 몰아낸다.

숨 가쁘게 달리면 몸에 수분이 다 나온다. 그게 눈물이든 땀이든.

배출하면 그게 무엇인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처음 보는 여성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괜찮다. 그저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곤하게 자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봐주고, 하루종일 여기저기 걸어서 지친 그녀의 구두를 닦아주고 조용히 그녀의 곁을 떠나는 것. 그것이 그의 사랑인 것이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생일축하받은 그는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두 가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교차되는 연출도 참 좋다.

풋풋한 양조위 보는 재미도 있으니 시간을 내서 꼭 보면 좋을 것이다.

경찰 663은 스튜어디스 연인에게 편지 한 장으로 이별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편지를 바로 읽지 않는다. 자신의 사랑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으니까.

자주 가던 식당 종업원에게 그의 이별유예를 들키지만 상관없다.

그는 스스로 천천히 이별 중이니까.

그 사이 식당 종업원인 그녀의 사랑이 시작된다.

일상을 살아내는데만 바쁜 그는 사소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

아니 알아도 그냥 모른 척하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저절로 눈길이 가고 관찰하고 관심을 가진다.

어쩌면 범죄의 모습일지 몰라도 서로가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면 사랑이 된다는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예술적 허용으로 단지 흐린 눈으로 본다.

그녀가 듣던 이국적인 노래를 듣고 그녀가 선물한 옷을 입고 그녀를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이미 사랑이다.

결국 만나고 그들은 같이 관계를 이어가게 되겠지.

열린 결말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새해가 시작되면 으레 이 영화를 보곤 한다.

중경삼림 은 새로운 시작을 권하는 것 같다.

사랑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꼭 봐야 한다고 꼭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화 중 한편이라 기대를 하고 봤을 땐 그렇게 좋은가? 싶다가도 결국 계속 보고 또 추천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

새로운 좋은 영화들도 많이 나오지만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것은 이 영화가 가진 고유성이 한몫하는 것 같다.

언젠가 한 번 나도 이런 얄궂은 사랑이 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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