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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Oct 15. 2024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당장 오늘 일어날 일도 모르는 사람들의 인생 안내서

여행의 허무함을 깨닫는 순간은, 귀가 직후가 아니라 일정이 새로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이다.

비로소 일상으로의 복귀가 실감 나는 순간, 여행의 여운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일상의 단조로움과 여행의 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로 여행이 참 좋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하는 시간보다 여행하는 시간이 적으니 짧게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매일매일을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도 좋을 텐데.

일상에서 쉽게 여행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즐겨이 하는 방법으로는 영화 보기가 있다.

대리만족만큼 자주 즐길 수 있는 여흥이 있을까.

오늘 내가 본 영화는 바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82년을 살아온 할아버지도 잘 모르는 삶에 대하여 고민한 이야기들을 앉아서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어렸을 때 나를 설레게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할아버지의 영화는 다 커서도 찾아서 보게 된다.

동심을 자극하는 향수 같은 영화.


세계 2차 대전 발발 중 일본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원폭투하로 일본이 쑥대밭이 되었다.

마히토는 대폭발로 인해 병원에서 요양 중이던 엄마를 잃었다.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에 빠져있을 새 없이, 결정된 아빠의 재혼으로 도쿄를 떠나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다.

아빠의 새 부인은 바로 엄마의 동생, 이모다.

엄마의 빈자리를 금세 채우려는 새엄마에게 반감만 들뿐이다.

전학 가는 학교에 아들 기를 살리려는 아빠는 그 시절에 희귀했던 자동차로 학교 앞까지 마중을 해준다.

시골아이들도, 도시에서 전학 온 아이도 서로가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하물며 돈 많은 도련님의 시골행차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기싸움은 금세 몸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또래끼리의 금방 끝난 싸움이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던 마히토는 집에 가던 길, 돌멩이를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격한다.

피를 흘리며 귀가한 도련님을 가만히 둘 집안사람들이 아니다.

화가 난 아빠는 마히토에게 누가 그랬는지 묻지만, 아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좋아. 대신 내가 누가 그랬는지 완벽히 알아내겠어.

마히토는 본인이 원하던 결과를 얻었고,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히토가 시골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의 곁을 맴돌던 왜가리가 있었다.

이제껏 지붕 밑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던 왜가리는 마히토 주변을 찾아가며 엄마의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이미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새가 그렇게 질문하니 반문할 수 없었다.

새엄마의 임신 소식에도 마히토는 즐겁지 않다.

어느 날 새엄마가 시골집에 오래도록 존재했던 탑을 향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새엄마가 실종되었다.

탑으로 향하던 마히토에게 집안사람 키리코가 붙잡는다.

도련님 탑으로 가면 안 돼요. 위험해요.

탑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새엄마를 찾고 싶으면 탑으로 오라고.

엄마가 살아있는지 궁금하지 않냐며 마히토를 유혹한다.

엄마도, 새엄마도 찾고 싶었던 마히토는 탑으로 향한다.

현실세계에서 이 세계로의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세계 안에는 많은 새들이 존재했다.

펠리컨과 왜가리, 그들은 왕국을 이루어 살고 있다.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히마와 젊은 키리코가 마히토를 지켜준다.

그러다가 방안에 외로이 누워있는 새엄마를 발견한다.

마히토는 새엄마를 구해낼 수 있을까.

탑을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결코 짧지 않은 2시간 4분이 그렇게 순삭 되는 순간이다.


원폭투하로 세계 2차 대전은 종료되었지만, 일본 안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

원폭피해가 있었다는 정도만 유추해 볼 뿐이다.

지금도 세상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 전쟁 속에 사는 사람, 전쟁 소식을 뉴스로 듣는 사람.

그중 우리가 지켜봐야 할 부분은 바로 전쟁 속에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과연 전쟁을 원했을까?

우리 모두는 평안한 하루를 바라고 살고 있다.

전쟁은 겪으면서도 피해를 입지만, 그 후의 외상까지 동반하는 커다란 아픔과 슬픔이다.

원자폭격으로 인해 세계 2차 대전이 종료되었다.

전쟁의 결과는 상처만 불러온다.

소년 마히토는 엄마를 빼앗겼다.

먼 과거의 결혼 형태인 형사취수제로 인해 아빠에게 곧 부인이 생긴다.

아마도 새엄마를 인정하는 엄마의 모습에 개연성을 주기 위한 영화적 발상으로 보인다.

짧은 시간 안에 엄마의 인정을 받는 새엄마라는 존재에게 언니로서의 믿음과 사랑을 부여한다.

그러나 엄마를 잃은 마히토에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이모가 엄마가 되는 사실은 크게 와닿지 못한다.

엄마와 비슷하지만, 엄마가 아닌 새엄마가 생겨버린 마히토.

자신에게 자리했던 엄마의 빈자리는 스스로 채우는 것이다.

사랑받을 수 있는 마음이 들었을 때라야 온전히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엄마를 찾기 위한 길이었지만, 그 끝은 새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이었다.

마히토에게는 그렇게 가족의 빈자리가 채워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 이 영화 안에 들어 있을까.

다 보고 난 후에 확실히 느껴졌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그리지 말고,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내가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바로 현실을 살아가는 것.

지나온 것에 미련두지 말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루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오늘이 또 다른 이에게는 내일을 위한 바탕이 될 뿐이다.

나는 어떠한 오늘을 살았을까.

꿈을 위해 오늘을 소비하였는지, 내일을 위한 단지 기다림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하루였다.

소중한 하루다.

귀한 사람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떠하였는지 궁금하다.

귀하고 소중한 당신은 어떻게 살았는지.

할아버지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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