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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Apr 03. 2024

내가 죽기 직전에 듣고 싶은 말은

영화 더웨일을 보고 난 후에 나는

의도치 않게 발이 묶여버렸다.

덕분에 언젠가는 해야지 하는 것들을 실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좋은 영화를 보고 감상문 쓰기가 있다.

오래도록 벼르던 그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더 웨일(2023년작)

오랜만에 만난 배우 브랜든 프레이저의 출연도 이 영화 선택에 한 몫했다.

모든 것에 빌드업이 있듯이 나도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 오늘에까지 이른 것처럼.

배우 자체의 기구한 삶이 그의 연기에 녹아들었듯이.

나도 곧 이 영화에 스며들게 되었다.


거구의 남성이 등장한다.

대학교 강사로 보이는 그는 비대면으로 강의를 한다.

그가 강의하는 과목은 문학인 듯하다.

학생들에게 솔직한 글쓰기를 강조한다.

자기가 쓴 글을 읽고 수정하고 수정하면 더 좋은 글이 나온다고 설파한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 자신의 거대한 몸을 공개하기를 꺼려하는가 보다.

간호사인 친구가 그의 집에 방문한다.

끼니를 준비해 주고 그의 안위를 걱정해 준다.

식욕을 주체 못 하는 그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재빠른 응급처치로 그를 위기에서 구한다.

서로는 그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 있다.

그러던 중 새 생명 선교회에서 한 사람이 그의 집에 방문한다.

그가 혼자 있을 때, 그가 숨이 가빠 괴로울 때, 그에게 도움이 된다.

그의 요청은 모비딕 에세이를 읽어주는 것이다.

죽을 것 같은 순간에 마지막으로 그가 듣고 싶었던 그 이야기.

그 모비딕 에세이는 그의 딸이 8학년 때 작성한 과제였다.

읽고 또 읽어서 외울 수준이다. 숨이 가빠 오면 늘 읽는 그 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애정 어린 글을 그는 참 좋아했다.

삶의 마지막을 느꼈던 그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딸을 그의 집으로 초대한다.

막무가내로 살던 딸에게 "네가 얼마나 놀라운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었어."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사랑을 찾아 비록 가족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외면했던 시간은 그에게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왔지만 괜찮다.

그녀가 하는 날카롭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들이 결국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그녀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자신도 그 마음에 구원을 얻었기에 외롭지 않은 그의 마지막이었다.


비만으로 거대한 남성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보이는 공간이 한정적이다.

오로지 그의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영화의 시간상으로 일주일간 벌어진 일이다.

그를 걱정하는 친구의 자발적인 방문, 그가 초대한 딸의 장, 자주 시키던 피자집의 피자배달부, 우연히 그의 집에 들른 새 생명 선교회 선교자, 딸의 사고로 초대된 전 부인.

총 6명의 인물들의 다채로운 감정들이 뒤섞이는 곳이다.

그 마음들이 하나같이 모순적이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면서 식욕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주인공 찰리.

종교적 신념을 결국 저버리지 못한 오빠를 보낸 동생은 죽은 오빠의 연인을 보살핀다. 그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매일 가져다준다. 마치 죽음을 선물하는 것처럼.

자라는 어린이로서 충분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소녀는 그 결핍을 모난 마음으로 분출한다.

그러면서 마치 부모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

젊음은 찬란하면서도 통제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마리화나에 중독된 젊은이는 선교활동을 하다가 가족에게 마약 한 것을 들키자 선교활동비를 들고 도망쳐버린다. 그리고 선교활동을 한다고 의미 없는 가정방문을 시도한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고 다른 동성의 연인과의 새로운 사랑을 위해 떠난 남편을 원망하면서 자신을 술로 학대하는 여인.

주인공인 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오늘만 살듯이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곧 죽을 것 같은 사람은 내일을 준비하고,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오늘만 살듯이 산다는 말은, 그들에겐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희망은 꿈이고 내일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된다.

빈 종이

아무것도 없는 백지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민을 하고,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해야 한다.

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냈지만, 그를 곧바로 따라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딸의 양육비를 보내고, 그녀가 그녀의 꿈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학자금이나 생활비를 준비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그 목표를 그가 가기 전에 이루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녀에게 그녀 존재의 이유를 알려주기 위해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녀로 인해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깨달은 그는 그 자체로 구원받은 것이다.

고래 스케치

영화는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

무엇이 옳고 그른 선택인지. 그 결과가 무조건 좋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도.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

하지만 모든 환경이 다 좋을 수는 없다.

최선이 될 수 없다면 차선책이라도 좋다.

모비딕의 흰 고래를 찾아보고 스케치해 보았다.

저렇게 순한 얼굴을 하고 에이해브 선장의 다리를 삼킨 모비딕을.

모두에게는 각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고, 그에게도 최선의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방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감정이 없는 고래에게 복수심을 갖는다는 것은 딸의 말대로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장에게는 그의 삶의 목표인 것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일을 살아내야만 하는 의미가 되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모비딕과 피쿼드 호

채색이 시작되면 그림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내가 그려내고자 했던 그림이 서서히 채워지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다.

생각하고 목표하고 계획했던 것을 실행하는 단계는 그 결과가 어떠할지라도 일단은 과정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단계라서 보다 더 재미있다.

내가 계획했던 것들을 수정하면서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드디어 결과물을 만날 시간이다.

주인공 찰리에게 결과물은 그녀의 딸이 아니었을까.

흐리고 습하기만 했던 그의 경. 주변의 시선에 눈치만 보던 그에게 딸은 존재자체로 그에게 햇살이었다.

하루종일 읽고 머릿속에 새겼던 그녀의 글처럼.

그가 학생들에게 했던 말들을 나도 새겨본다.

글을 쓸 때는 보다 솔직하게, 그리고 수정을 계속할 것.

한 번에 좋은 글을 썼다고 그 페이지를 종료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더 돌아보기를. 좋은 명언을 얻었다.

그리고 또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죽기 직전에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인정일까, 인사일까, 고백일까.

그래도 내가 평소에 들어도 제일 좋은 말이 아닐까.

야가 왜 이라노.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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