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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부 Apr 10. 2021

오후 5시 놀이터

Mad Hatter: 

"When you can't look on the bright side, I will sit with you in the dark."-Alice in Wonderland

모자 장수:

"당신이 밝은 곳을 볼 수 없을 때, 내가 어둠 속에서 당신과 함께 있을 거예요."



11월 중순 아이의 병원 방문을 하기로 돼있던 날이었다.

올해 초부터는 코로나 덕에 온라인 병원 방문을 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줌이 연결되지 않아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1월 나는 몸의 이상을 느끼고 병원에 갔다. 

12월 중순 종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와중에도 아이의 병원일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아픈 것은 아픈 거고, 아이 아픈 건 아픈 거니까. 


그런데 그날 설상가상으로 한참 바쁜 그 시간에 내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며칠 전 외부에 있는 센터에서 받은 코비드 테스트 결과를 내 병원에서는 아직 받지 못했다는 전화였다. 

다음날 조직검사를 위해 병원에 들어가려면 테스트 결과가 있어야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센터가 문 닫기 전에 가서 직접 서류를 받아와야만 했다. 아.. 미국 정말...


아이의 진료시간은 다가오는데 줌은 연결이 되지 않고, 

센터는 곧 문을 닫을 시간이고, 

나는 서류가 필요하고...

나는 바로 차에 타, 센터를 향하며 아이 병원에 전화를 해서 오늘만 전화로 진찰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전화진찰이 가능했고, 운전하는 내내 나는 아이의 의사와 이런저런 상담을 했다.


1시간가량의 통화 끝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의사는 나의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늘 이렇게 내 마음을 들어주려고 진료시간의 일부를 할애한다.


"나 내일 바이옵시 해요..."

사적인 얘길 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나는 그녀에게 내 상황을 말해버렸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이의 일을 통해 꽤나 단단해지는 훈련을 거듭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녀는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이렇게 exist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당신과 내가 이렇게 여기 존재해서 전화를 하고 있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존재하는 것이죠. 

우리 그것에 집중하기로 해요. 

그리고... 내가 내일 아침 8시부터 당신을 생각할게요. 

내일은 내가 당신을 생각할 겁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할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기대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반나절 정도 나를 생각할 거라는 그 말이 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사실 나는 한 달가량 이 일을 겪으면서 가족에게 화가 좀 나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화는 아니고... (종잡을 수없는 마음이라 정확한 표현을 할 수가 없지만) 

복잡한 마음이어서 언짢아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도 내가 어떤 건지 나조차도 모르는 어떤 위로를 가족들에게 기대만 했던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 상황을 심각하고 무겁게 여겨지는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별일 아닌 것처럼 가볍게 취급되기는 싫고

내 걱정을 해주기 바라지만,  그렇다고 너무 측은해하는 것도 싫고, 

내가 유세를 떠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 병을 희화하면서 내 자존심이 무너지고 있는 게 보일까 봐 숨기다가 그것을 몰라주는 남들에게 섭섭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 체 뭔가를 그들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몸이 아프면서 그렇게 약한 나를 보게 되었고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고 그래서 고집스러워지고 있었다.


내가 어둠 속에 있을 때 누군가 내 옆에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텐데 

나는 뭐가 그리 복잡했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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