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두 명의 간호사는 상냥했고 숙련되어 보였다.
노련한 그 둘은 아이의 팔에 구멍을 내어 관을 삽입하고 MRI 기계 안에 꼼짝달싹 못하게 잘도 묶어놓았다.
나는 환자가 아니다.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부모로서 큰 책임을 질지언정, 아이가 겪게 되는 이런 당사자의 감정을 모두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당사자의 외로운 싸움에 나도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최대한 노력한다.
그런데 내가 환자가 아니라고 해서,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마주하고 있는 이 현실은 끊임없이 나에게 매질을 한다. 껍데기는 견고해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내 마음은 푸슬푸슬 터진 북어 살처럼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다.
하지만 내가 아프다고 해서 꼭 울어야 하거나, 슬픈 감정이 복받쳐야 하거나, 미간을 꾸긴 얼굴이 부모로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각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시간과 강도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른 법이니까.
언제든 그 자리에서 눈물이 바로 날 수도 있고, 무표정한 모습이었다가도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깼을 때 눈물이 와르르 날 수도 있는 거다.
물론 안 흘려도 그만이다.
그렇게 환자인 아이도, 보호자인 나도, 각자 다른 자리에서 같은 아픔을 느끼고있다.
그날 간호사는 소음을 막아줄 거라며 기계 속에 있는 아이와 옆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헤드셋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스캔하는 내내 기계가 내는 소리는 대단했고 헤드셋은 효과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굉음 속에 있었다.
검사는 순조롭게 끝났다.
나는 갑자기 아이와 병원 동지로서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이 느껴져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급 제안을 했다.
"아까 너무 힘들었지? 오늘 저녁은 우리 둘이 고기 먹으러 가자!"
하지만 아이는 내 외식 제안에는 반응이 없었고 뜬금없이 엘비스프레슬리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디즈니 만화영화 Lilo and Stich에 나오던 그의 노래가 인상적이었는지 한동안 듣고 있던 때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음악을 한참 듣더니 갑자기 아이가 말했다.
"헤드셋에서 Elvis presley 노래 나왔어"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 달 전쯤, 나는 환자가 되어 CT촬영을 위해 병원에 갔었다.
그날 나는 예전에 아이가 입었던 뒤가 터진 병원 가운을 똑같이 입게 되었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약물을 넣어야 한다고 해서, 나도 그때의 아이처럼 주삿바늘을 팔뚝에 연결해놓은 상태가 되었다.
MRI처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괴상하게 생긴 드럼통 안에 들어가려니 좀 긴장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불안한 표정으로 기계 안으로 들어갈 침상에 똑바로 누웠다.
근데 그때 천장에 붙어있는 바다 풍경 사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검사받으러 온 환자들을 위한 의료진들의 작은 배려인 듯했다.
나는 시선이 머무는 곳에 붙어있는 그 사진을 어쩔 수 없이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아마도 남태평양 어딘가에 있을 법한 해안가 사진이었다. 흔들리는 야자수는 평화로웠고 파도는 반짝이며 잔잔했다.
그때 옆에서 도와주시던 간호사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밖에 날씨가 참 좋지요. 그 사진처럼 말이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창이 있었고 창밖에는 팜트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날씨였다.
창밖을 보고있자니 나는 마음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동안 아이와 내가 비록 각자의 자리에서지만 같은 아픔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눕기 전에는 아무도 그 사진이 거기에 붙어있다는 것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아이가 그날 한 시간 동안 엘비스 노래를 듣고 있었을 때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듯이 말이다.
검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날 아이와 같이 차 안에서 들었던 CD를 틀었다.
엘비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I get so lonely, baby, I get so lonely, yeah I get so lonely I could die...
나는 너무 외로워, 너무 외로워서 죽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