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오늘도 잘 지냈습니다.
09화
캘리포니아 3월은 아직 우기.
수선집
by
손두부
May 29. 2020
“언니, 그 집은 가지 마.”
아는 동생에게 수선집을 물어봤더니 굳이 어떤 집을 콕 찍어 가지 말라고 한다.
동생의 말이 동네에 두 군데 수선집이 있는데 한 곳은 교통이 편리하고, 일하시는 분이 상냥하고 일도 잘하시는데 가격이 좀 비싼 곳이고, 다른 한집은 보세 옷가게 귀퉁이에 자리 잡은 수선집인데 아주머니 한분이 혼자서 꼼꼼하게 일 하시고 게다가 가격이 싸다는 거였다.
근데 바로 이곳, 일 잘하고 가격마저 좋은 이곳을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다.
이유는 가게가 자주 문을 닫고 겨우 만나도 퉁명스럽기 그지없어 자기기분까지 망친다는거다.
일은 꼼꼼하게 잘하고 가격마저 좋은데 도대체 얼마나 불친절하길래 이럴까? 얼마나 기분을 망치길래 알뜰한 동생이 이런 소릴 다할까 싶었다.
사실 아무 데나 가도 되는데 괜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별일도 아닌 수선집을 고르는 일이 갑자기 대단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중대사가 돼버렸다.
결국 이게 뭐라고 며칠을 미루다 친절하고 비싼 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운전을 하고 가다 신호에 걸려 잠시 서있는데 문득 그 보세집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이른 아침인데 웬일로 오픈 사인이 걸려있었고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하늘은 유독 낮게 내려앉아있었고 곧 비라고 내릴듯해 보였다. 때마침 떨어진 유턴 싸인에 나는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보세집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가게 안은 아직 불이 켜져있지 않아 컴컴했다. 나는 아이의 바지 3벌을 꼭 끌어안고 쭈뼛거리며 들어갔다.
“계세요…?”
가게 뒤편에 옷을 상자째 쌓아놓은 문 너머에서 말로만 듣던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눈으로 내 손에 들린 바지를 쓱 훑더니 입을 열었다.
“옷 수선하시게요?”
나는 상처 받기 싫어서 조심조심 말을 골라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수선할 것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지 앞 여미는 부분이 모두 단추로 되어있어서 지퍼로 바꾸고 싶다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왜요. 아이가 단추 잠그는 걸 힘들어해요?”
“ 아.. 네..” 나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아주머니는 바지 앞여밈 부분을 안과 밖으로 뒤적이더니 다시 말을 했다.
“우리 애는 schizophrenia (조현병)에요. 벌써 23살이죠.”
나는 너무 갑작스러운 그녀의 고백에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바지를 잘 접어놓고 그 위에 태그를 붙이며 나에게 물었다.
“아이의 병명이 뭐죠?”
“...Autism (자폐)이요.”
나는 병명이 뭐냐는 질문에 떨떠름하게 대답을 했다.
병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늘 영어로 대답하곤 하는데 이유는 여기가 미국이어서기도 하지만 아직도 ‘자폐’라는 그 단어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영어는 그 의미보다는 사운드가 먼저 내게 다가온다. 그것은 나의 나약한 마음을 할퀴지 못하고 나는 그 단어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와질수있다. 그녀도 그런 걸까?
“내일까지 해놓을게요.”
상할 대로 상해있는 눈빛의 그녀는 원래 자신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일그러진 얼굴에 힘을 주어 애써 미소를 만들며 말했다.
“날이 추워지고 있으니 이 바지들이 곧 필요하겠네요. 내일 찾으러 와요.”
사실 그리 급한 건 아니었지만 빨리 해주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 감사하다는 인사를 꾸벅하고 문을
나섰다.
그순간 나의 뒤통수에 대고 그녀가 불현듯 한마디 던진다.
“힘내요 엄마”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아까 그 창고 안으로 아이의 옷을 들고 들어가 버린 후였다.
그녀는 아까부터 이 말을 하려고 뜸을 들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문을 열고 나와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녀가 왜 종종 가게를 비우는지,
왜 불친절해왔는지 이유를 알아내서 한숨이 나온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동지의식을 느껴서 한숨이 나온 것도 아니다.
그녀의 친절과 내게 던진 위로의 말 때문에 한숨이 나온 것도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 위로의 말을 못 하고 문을 나서서 한숨이 나온 것도 아니다.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keyword
수선
드로잉
공감에세이
Brunch Book
오늘도 잘 지냈습니다.
07
1월의 시작은 묘지 투어와 함께.
08
2월 하트 브레이크 호텔 체크 인
09
캘리포니아 3월은 아직 우기.
10
잔인한 4월이 맞습니다.
11
5월은 어린이날도 있고 어른이 날도 있다.
오늘도 잘 지냈습니다.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16화)
11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손두부
직업
에세이스트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글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합니다. 일러스트도 하고 만화도 그립니다. 그리고 밥과 빨래도 최선을 다해서 합니다.
팔로워
29
제안하기
팔로우
이전 08화
2월 하트 브레이크 호텔 체크 인
잔인한 4월이 맞습니다.
다음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