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이 맞습니다.

꾀병

by 손두부

하루 종일 이불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내놓을 것도 없이 다 토해냈는데도 계속 구역질이 났다.

사람들마다 각자가 생각하는 아픔의 레벨이 있는데 오늘 나의 증상은 예상 수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요건 며칠 짜리인가?’

나름 며칠간 아플 각오를 해본다.

내가 끙끙 거리는 동안 아픈 아이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요구할 뿐 그 흔한 “Are you OK?” 도 없다.

방안 침대에서 물 한 컵을 얻어마실 처지가 아님을 알기에, 베개와 이불을 끌고 나와서 거실 소파에 자리를 폈다. 집안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그곳에 있으면 누워서라도 어쨌든 지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하루 종일 고생을 한 후, 퇴근해 돌아온 남편과 함께 밤이나 되서야 집근처 세인트 쥬드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응급실 정문에서 발레 파킹을 했더니 휠체어가 마중을 나왔다.

어릴 적, 친구 병문안 차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환자복을 입고 있던 친구가 괜스레 멋있어 보여서 나도 맹장수술을 하고 싶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또는 (역시나 어릴 적) 남들은 다 쓴다는 안경이 쓰고 싶어서, 눈이 나빠질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시도해 본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맹장수술을 위해 입원한 적도, 시력이 1.5에서 내려간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지금 휠체어를 타고,

하루 종일 대기실에 있던 수많은 환자들을 제치고,

바로 의료진을 만난다니 이제야 어릴 적 내 꿈이 실현되는 것인가!


꿈 실현의 즐거움은 잠시.

진료를 받는 도중에 갑자기 손가락과 발가락이 꼬이기 시작했고 나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예상해오던 아픔의 레벨이 다시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겨우 검사에 들어간 상황이라 의료진이 나에게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간이침대로 기어올라갔다.

일률적인 기계음, 모든 병균을 다 죽여 버릴 것 같은 차가운 공기, 분주해 보이지만 스텝들의 신중한 움직임이 감은 두 눈 너머로 느껴졌다.

사실 몇달 전 아이의 발작으로 바로 이곳 응급실에 온적이 있었다.

그때 봤던 응급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멀리 바쁘게 지나가는게 보였다. 그 당시 아이를 잘 돌봐주었던 간호사 선생님도 보였다.

순간 나를 알아본 그 간호사 선생님은 놀라며 내게 다가와 말을 붙였다.

“This time, it is your turn, Mom.”


‘네네... 오늘은 제가 환자입니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새벽 3시.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었다.


그때 난 갑자기 마음이 평온함을 느꼈다.

이 시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고 허락받은 시간이다.

아픈 아이를 위해 약을 시간 맞춰 먹일 필요도,

약의 도스에 따라 아이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일지를 쓸 필요도,

밤에는 혼잣말을 하며 깨어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볼 필요도,

끊임없는 반복되는 소리를 들을 일도 없었다.

저 커튼 너머로 보이는 의료진들이 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 ‘호사’를 누리고 있는 거다!

그때부터 깨질듯했던 내 머리통이 화가 누그러진 헐크처럼 천천히 가라앉았고 뒤집히던 뱃속은 편안해졌고, 꼬였던 손가락 발가락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편안해진 숨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담요를 머리끝까지 올려 썼다.

‘이건 뭐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검사 결과 특이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위경련이 심하게 왔고 식도 근육이 경직되어 통증이 온 거고 그래서 신경안정제를 놔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의사 선생님은 퇴장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신경안정제를 놔주며 결국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는 말을 남기고 처방전을 전달해주었다.

주사를 맞고 30분 후,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제서야 내가 맨발이란 걸 알았다.

뭐 별일 아니라는 듯 스텝 한 명이 병원 마크가 찍힌 빨간색 양말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 빨간 양말을 훈장 수여받는 사람처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그 양말은 내게는 '안경'이자 '환자복'이었다.

빨간 양말을 신발 삼아 신고 새벽 텅 빈 파킹랏을 가로질러 차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집에 돌아와보니 소파 위에는 어제 하루 종일 나의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이불이 달팽이 껍데기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약기운으로 무뎌진 뱃속과 몽롱한 정신을 한 체 나는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얇은 껍데기 안에서 달팽이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반나절만 이불속에서 개츠비를 끌어안고 더 나를 위로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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